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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풀러 특별전’특별강연 : 김성욱 영화평론가 2015-12-05(토)  - 시네마테크

네이키드 키스 00



12/5 <네이키드 키스>

*강연: 김성욱 영화평론가

*장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이 날은 별도의 관객 및 진행자 질문 시간 없이 김성욱 평론가의 강연으로만 진행되었습니다.)

(전체 강연중 <네이키드 키스>에 관한 일부만 요약되어있습니다.)



1964년에 만들어진 <네이키드 키스>는 새뮤얼 풀러의 전쟁과 관련된 경험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고 있진 않아 보이지만 영화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네이키드 키스>라는 영화는 첫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네이키드 키스 01


갑자기 시작하자마자 두 남녀가 싸움 벌이게 되는데 두 남녀는 연인이었거나 혹은 포주였거나 둘의 관계가 처음에 명확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이 남자를 때리는 과정에 몸과 몸이 부딪히는 순간, 여자가 머리에 썼던 가발이 툭 떨어지게 됩니다. 민머리가 이렇게 드러나게 되죠. 저는 <네이키드 키스>라는 게 민머리 상태로 하는 키스인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이 장면은 모든 장면을 찍고 나서 마지막에 찍은 장면이지만 여자의 머리를 저렇게 완전히 밀어버리고 촬영한다는 것은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 내용 안에서 보자면 포주가 켈리라는 여자가 자신의 권위에 대항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처벌로서 머리를 빡빡 깎아버렸던 거였습니다. 영화에서 묘사되지는 않지만 설명되고는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새뮤얼 풀러는 이 장면을 찍을 때 여자 머리를 밀어버린 이 모습을 2차 대전의 전쟁 때 봤다고 이야기를 하죠.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보면 독일 장교와 사랑에 빠졌던 여자가 마을 사람들이 독일 장교랑 연애했다는 이유로 해방이 되고 나서,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여자의 머리를 완전히 빡빡 깎여 지하실에 가두어놓고 여자는 자신의 과거의 경험을 계속 내레이션 합니다. 그러면서 여자가 완전히 머리가 깎여있는 그 상태의 모습을 히로시마에 와서 여자들의 모습, 원폭 투하 후 머리가 빠진 여자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봤다고 내레이션을 합니다. 머리가 없거나 벗겨진 이러한 상태는 한편으로 보면 독일군과 잔 여자들의 머리를 잘랐던 경험 또는 그 모습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장면 봤을 때 직접적으로 그러한 부분들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나타나는 전쟁 경험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녀에 대한 처벌로 머리를 밀어버린 것뿐만 아니라, 두 남녀의 격돌이라는 점도 이 영화의 첫 장면부터 나타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은 충돌적인 것입니다. 남녀의 몸이 충돌하고 있고 남녀가 저렇게 몸으로 격하게 싸우는 순간은 실제로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네이키드 키스 02


이 영화에서는 켈리라는 여자가 몸의 완력으로 남자든 여자든 때리는 순간이 많이 나오고 이 순간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통쾌하다고 할 수도 있으며, 기성에 우리가 갖고 있던 통념을 넘어서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충격을 주는 요인들도 있습니다. 풀러의 영화는 이런 몸과 몸의 어떤 충돌이라고 하는 점 안에서 일어나는 순간들을 '액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액션이 남녀관계에서 벌어지게 되는데 풀러의 액션이라고 하는 것은 삶이라고 하는 것의 물리적인 에너지의 표출과 충돌로서 담아내는 것, 그런 의미에서 액션 영화를 찍은 감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삶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어떠한 부분들을 외부적인 물리적인 에너지의 어떤 표현 그것은 폭력이 되겠죠. 삶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끊임없는 움직임이고, 끊임없는 삶의 움직임이라는 건 그 안에 욕망, 공포라는 감각들을 다 동반합니다. 그러한 인간적인 에너지라고 하는 것들을 영화라는 것 안에서 표출해 나갑니다. 그런 사람을 새뮤얼 풀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네이키드 키스 03


<네이키드 키스>의 첫 장면이 어떤 과잉적인 에너지와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의 분출이 그대로 그냥 드러나는 순간으로 더군다나 그 장면을 핸드 헬드로 찍었기 때문에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먹으로 누군가를 때린다든가 사람과 상대의 갈등에 폭력을 행사해 나갈 때 그것을 통제 불가능한 지점까지 이르게 만들어 버리는 과잉적 에너지를 분출이라고 하는 것을 우린 '광기'라고 보통 이야기를 합니다. 또는 '광적'이라고 하죠. 이 광적인 광기라는 것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면 사회적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풀러의 경우는 어쨌든 그 스스로가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것으로 이야기하면 첫 번째가 전쟁이라는 경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수용소의 경험입니다. 수용소에서 끔찍한 시체를 봤다는 것. 그리고 이 시대, 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에 이르는 미국 사회에 불러일으켰던 정말 광적인 상태들이 있습니다. 인종주의라든가 메카시즘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이 모든 부분들이 마찬가지로 영화 안에서 과잉적 에너지의 분출로 나타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