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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행사

'팝콤톡톡 플러스'<마일스>: 양돈규 재즈카페 몽크 대표 2016-08-25(목)  - 소극장

<마일스> 강연 01


8/25  <마일스>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세계'


* 강  연: 양돈규 재즈카페 몽크 대표 

* 장  소: 영화의전당 소극장




<마일스> 강연 02


재즈가 한국에 들어온 지 오래되었지만 재즈에 대해 자세히 알고 계신 분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 것이 재즈란 무엇인가입니다. 17년 전, 어느 방송국 PD몽크에 오셨는데, 부산재즈클럽이라는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듣고 있는데 수준도 낮고 한심해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시비가 붙었었습니다. PD분이 재즈가 무엇이냐고 물으시기에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재즈도 모르는 사람들이 동호회를 하고 있냐고 이야기 하는겁니다. 그럼 역으로 재즈가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 말씀이 신커페이션(Sycopation)이 재즈 아니냐고 하시더라고요. 신커페이션은 재즈의 한 특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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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음악의 특징> 


재즈음악의 특징으로는 즉흥연주(Improvization), 스윙(Swing), 신커페이션(Sycopation), 스켓(Scat), 블루 노트(Blue note)가 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이 즉흥연주입니다. 즉흥연주라고 해서 애드리브 하듯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즉흥연주가 아닙니다. 재즈라는 것은 신중하고도 고의적인 음의 표현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불협화음의 사용입니다. 클래식에서 베토벤의 음악을 즉흥연주로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죠. 그렇지만 재즈에서는 그것이 가능 합니다. 악보대로가 아닌 연주자에게 독창성을 부여해서, 새로운 멜로디와 화성을 작곡하는 동시에 연주하는 것이 즉흥연주이기 때문입니다. 그 중 단연 핵심은 불협화음의 사용이고요. 음악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텐션 노트입니다. 화음이 있는데 도, , , 1, 3, 5도의 화음이 있으면 우리가 재즈에서는 1, 3, 5, 7도를 기본으로 하고, 9, 13도를 같이 치는 겁니다. , , 솔 화음이 이상한거죠. 그리고 코드를 서브하거나 코드를 늘이면 음악이 불안해 집니다. 그것을 다시 안정된 코드로 끝내는 것을 비하모니제이션이라고 합니다. 스윙이라는 것은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아지고 몸을 흔들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신커페이션은 당김음 입니다. 오프 더 비트와 비슷한 의미인데요,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가무를 즐기는 민족으로, 엇박과 당김음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습니다. 스캣의 경우는 의미 없는 의미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요, 블루 노트는 반음내린 3, 7도로 E 플랫과 B플랫을 씁니다. 이런 음이 들어가는 것을 블루 노트라고 하는데요, 오늘 영화에서도 대표적인 곡이 있었습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경관에게 얻어맞는 장면이 나옵니다. 얻어맞는 장면 직전에 찰리 파커를 기념하는 재즈 클럽 버드 랜드라는 곳입니다. ‘버드 랜드에서 연주하는 그 곡이 가장 블루 노트의 느낌이 나는 곡입니다. 그 곡이 바로 ‘Kind of Blue’ 라는 앨범에 수록 되어있는 ‘Blue&green’ 이라는 곡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재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클래식, 락앤롤, 팝송과 재즈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하면,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흑인이 만든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팔아먹기 위한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죠. 예술성을 지향하는 인간을 위한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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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역사 &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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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 교향악, 소나타 등이 있듯이 재즈도 다양합니다. 재즈의 역사는 100년이지만 10년마다 새로운 스타일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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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ditional Jazz (1900~1930)

1900년에 재즈가 태동 되었고, 1910년에는 New orleans Jazz의 루이 암스트롱, 젤리 롤 모튼이 있습니다. 젤리 롤 모튼이 나온이 나온 영화가 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전설> 이라는 영화에서 아주 건방진 흑인이 나오는데, 명함에 재즈 발명자라고 적혀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젤리 롤 모튼입니다. 1920년도에는 시카고에서 듀크 엘링튼, 1930년에는 Swing Jazz의 베니 굿먼, 글렌 밀러가 등장합니다. 이때까지의 재즈는 대중음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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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 Jazz (1940-1970)

1940Bibop Jazz, 이때부터 대중음악이었던 재즈가 예술적 음악으로 변질을 합니다. 디질 길레스피, 찰리 파커가 등장하고, 1950Cool Jazz 시대로 드디어 마일즈 데이비스와 쳇 베이커다 나옵니다. 그리고 동시대 Hard Bop Jazz에서 마일즈 데이비스가 또 등장합니다. 그리고 1960년대는 Soul Jazz, Free Jazz, Bosa Nova, Modal Jazz의 시기로 Modal Jazz에서 마일즈 데이비스가 또다시 등장합니다. 이어 1970Jazz rock fusion에서 마일즈 데이비스가 또 등장합니다. 모던 재즈의 중요한 부분을 마일즈 데이비스가 처음 시도하면서 재즈를 이끌어 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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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Modern Jazz (1980-1970)

1980년 포스트 모던 재즈에는 윈턴 마살즈라는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20대 초반에 클래식 과 재즈 음반 그래미상을 모두 받은 분으로 현재 링컨 오케스트라의 단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재즈 본연의 모습으로 돌리기 위해 일렉트릭 사운드를 배제하고 순수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가지고 옛날 하드밥이나 엣날 재즈를 재현하였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Contemporary Jazz라고 해서 Hard bop을 중심으로 하는 Post Bop이나 Street ahead Jazz, 저는 현대에 와서 전통재즈를 하는 것에 대해 Modern main street Jazz라는 말을 씁니다. 그런 용어를 쓰는 사람은 미국 평론가 중에서 몇 명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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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데이비스 Miles Davis (1926-1992)


<마일스> 강연 04


재즈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트람피터, 밴드 리더 작곡가로서, 쿨재즈, 하드밥, 모덜 재즈, 재즈 락 퓨전이라는 재즈 역사상 4가지 다른 스타일을 시도한 효시입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고향이 어디인가 하면 올턴이라는 곳입니다. 9세 때 트럼펫을 잡았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미 어느 클럽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빌리 엑스타인을 만나게 되고 그 당시 최고 유명했던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등이 모여 있었습니다. 마침 트럼펫을 하는 사람이 아파서 연주를 못하게 되었을 때, 트럼펫을 잘 부는 고등학생 한명이 있는데 같이 연주를 하게 되었고, 팀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는 반대했고, 고등학교 졸업하고도 안 된다며 대학에 보냅니다. 줄리아드 음대에 들어가게 되지만, 재즈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고 클래식 이론만 가르치는 겁니다. 1년도 안 되어 자퇴를 하게 되고 디지 길레스피를 찾아가게 되고 1948년에는 챨리 파커 퀸텟으로 들어가 비밥의 기초를 닦게 됩니다. 비밥은 굉장히 빠르고 격렬하고 코드와 음계의 변화가 심하고, 난해한 음을 많이 쓰면서 우리가 듣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연주자에게는 더 고통입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마일스> 강연 05


그러다 1948년 찰리 파커 퀸텟에서 탈퇴를 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천천히 불면서도 화음적이고 귀에 들어오는 음악을 만들겠다고 하며 Miles Davis Nonet이라는 9인조 밴드를 결성합니다. 그때 캐나다 피아니스트 길 애번스를 만나게 됩니다. 로얄 루스트라는 곳에서 공연을 하고 작은 레코드 회사에 계약이 돼서 녹음한 것이 버쓰 오브 드 쿨입니다. 당시에는 신선한 시도였지만 인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뜨고 나서 이 회사에서 레코드를 냈다는 겁니다. 제목을 뭘로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당시 밥이 핫한 음악이었기 때문에 버쓰 오브 쿨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재즈 학자들이 누가 이런 음악을 시작했는지 찾아보니 마일드 데이비스가 했다는 거죠. 좀 더 클래식한 화성을 차입하고 스무스하며, 서정적이고 멜로디 적인 음악을 한 것이 쿨 재즈이고 실제로 쿨 재즈는 마일즈 데이비스 보다 <본 투 비 블루>라는 영화에도 등장했던 쳇 베이커가 같은 사람이 LA를 중심으로 웨스트 코스트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쿨 스쿨 또는 이스트 코스트 하드 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1950년부터 54년까지 마일즈 데이비스는 마약에 빠지게 됩니다. 서부 영화 산업과 군수물자 쪽이 발달할 때였습니다. 파리에 재즈 투어를 갔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흑인 재즈리스트를 굉장히 존경하였습니다. 그 때 그 곳에서 줄리엣 그레코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사랑으로 실연에 빠지자 마약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부터 의미 없이 음악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때 어울렸던 사람들이 찰리 파커나 디지 같이 그런 빠른 것은 못하고 다들 단순하고 쉬운 연주에 흑인 블루스를 담은 연주를 했고 그것이 하드 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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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부터 마약을 끊고 본인의 팀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죤 콜트레인, 레드 갈런드, 폴 챔버즈, 필리 죠 죤스 대단한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시기에 콜롬비아가 굉장한 메이저 회사인데 계약이 되고, 이틀 동안 다섯 장의 앨범을 녹음하는 겁니다. 보통 여러 번 연주를 하고 제일 녹음 잘 된 것을 하는데 한 번에 모든 걸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성의 없는 앨범에 독자들은 흥분하고, 투표에서 마일드 데이비스가 넘버원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1957년부터 63년까지 마일즈 데이비스의 가장 중요한 앨범이 만들어 집니다. 길 애반스와 여러 가지 작업을 합니다. 특히 마일즈 어헤드라는 앨범에 보면 마일즈 데이비스 플러스 19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것은 총 20명이 같이 연주를 했다는 겁니다. 당시 사람들은 제3의 물결 이라고 표현했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재즈와 클래식이 융합이 된 것으로 나중에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카인드 오브 블루’. 이 음반이 재즈의 명반으로 400만장 팔렸다고 합니다. 재즈에서 거의 많이 팔렸다고 할 수 있고 미국 국보로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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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덜 재즈라는 것이 있습니다. 음계의 계단을 화성이나 모드의 배열에 기초한 재즈로 하나 또는 두 개의 음계를 사용해 즉흥연주하는 음악입니다. 이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So What’ 이라는 음악이 대표적인 곡으로, 곡의 진행이 D코드 16마디와 E플랫이 8마디 이 두 개의 코드로 진행됩니다. 이것은 도리안 모드로, 두 개의 코드로 자유롭게 진행 된다는 겁니다. 모드라는 것이 쉽게 말하면 도로 시작해서 도로 끝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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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강연 06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세컨드 그레이트 퀸텟을 만들어 활동합니다. 빌 에반스라 등 새로운 젊은 사람을 데리고 온 겁니다. 당시 웨인 쇼터가 31세 였고, 키보드 담당의 허비 행콕은 그 당시 23세였습니다. 론 카터가 26, 드럼을 쳤던 토니 윌리암스가 당시 17세였습니다. 이 멤버로 하드밥을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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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마비라는 여자와 세 번째 결혼을 합니다. 베티 마비는 모델 겸 싱어송라이터로, 이 여자 옆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연예인입니다. 제임스 브라운, 지미 핸드릭스, 슬라이 앤 패밀리 스톤 등 락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일즈 데이비스도 락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렉트릭 사운드를 도입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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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오사카 콘서트 홀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을 녹음하게 되었는데 이 연주를 끝으로 은퇴를 하고 5년간 잠적하게 됩니다. 1982‘We want miles’라는 앨범으로 그래미 상을 받고, 1991년에 퀸시 존스 회고 콘서트 후 928일 산타모니카에서 뇌출혈로 사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