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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인문학의 동행 네 번째 <나의 산티아고>: 김기식 마을공동체 교육단 '사람과 마을' 대표 2016-07-14(목)  - 소극장

나의 산티아고 특별강연 01

 

0714 영화와 인문학의 동행 네 번째 - <나의 산티아고>

나와 함께 걷는 길: 길 안의 길, 길 밖의 길

* 강 연: 마을공동체 교육단 사람과 마을김기식 대표

* 장 소: 영화의전당 소극장

 


 

나의 산티아고 특별강연 02

 

주인공 하페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돈 것이 2001년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이 나온 것이 2006년입니다. 제가 산티아고를 간 것은 2009년도입니다. 저는 일상생활에서 산티아고가 굉장히 먼 옛날의 일로 기억되고 막상 오늘 일로 아내에게 기록을 물었더니 한 6년 정도의 세월밖에 경과를 안 했더군요. 그래서 다시는 돌아보지 못할 것 같았던 옛날 사진들을 꺼내보고, 책을 다시 읽지는 못하지만 사실을 부합할 수 있는 기록 정도로 돌이켜 보면서 오늘 몇 가지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오늘 영화가 여행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미술관 또는 박물관 순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역사 유적 순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영화가 끝나고 나서 영화에 대해 파생되는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특강들이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영화는 별도의 해설을 요하지 않는 길 위의 영화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여행이라는 것을 먼 길을 걷든 짧은 길을 걷든 10명이 걷든 혼자가 걷든 철저하게 혼자 수렴되고, 해석되며, 기억되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여행의 의미에 대해 인생과 비교할 수 있는 길의 의미에 대해서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 이야기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길은 질문입니다. 오늘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는 아마 여행의 횟수로 보거나 여행 장소의 다채로움으로 보자면 저보다 훨씬 풍부할 수 있고요, 또 다녀온 여행에 대한 기록들도 저보다 더 풍부할 것이라 보아집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행이라고 하는 것이 철저하게 같이 간다고 하더라도 훗날 되돌아보는 기억은 함께한 기억이라고 단언할 수 있지만 철저히 주관적으로 수용되고 주관적으로 해석되는 기억들입니다. 그래서 저도 산티아고의 길에 대해서 철저하게 일반화 시킬 수 없는 저에 대한 기억으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이 사진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마드리드의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었던 사진입니다. 이때까지 봐왔던 많은 아름다운 풍광 사진 중에서도 이 장면 하나가 오랫동안 순례길이 상징처럼 아직도 기억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여행이라는 용어가 라틴어로 고난과 고행이라는 뜻의 어원을 가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도대체 왜 가는 것일까라고 저한테 물어볼 수도 있고 여러분들께도 물어볼 수 있겠습니다. 안 가보신 분이 계신다면 도대체 왜 가려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유럽의 문화적 전통과는 달리 이 자리에 기독교거나 가톨릭교를 신앙으로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니라면 구태여 이 오랜 가톨릭의 순례길을 우리가 가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에 나왔던 주인공들의 면면처럼 개인의 상처일 수도 있고요,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들 욕망일 수도 있고요, 혹은 종교라고 하는 순례길이라고 하는 상징적인 대열에 합류해보고 싶은 기억으로 가져가고 싶은 기억들 아주 다양한 형태의 목적이 있다고 보아집니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더 낫고 더 나쁜 것이 없는 주관적으로 시간과 돈과 마음을 내야만이 갈 수 있는 하나의 선택 지점이라고 봐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산티아고 길을 어떻게 갔는가 하면 22살에 대학을 나와서 20년간 NGO라고 할까요, 사회단체에서 일을 해왔습니다. 20년 세월의 사회단체 생활이라는 것은 거의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빈곤하죠, 일은 많죠, 늘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싸워야 하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20년이나 흘러갑니다. 그 과정 속에 필연적으로 산티아고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마침 이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 결심의 순간은 아름다운 순간이 아니고 백수가 되는 길입니다. 그때도 마침 나의 아내가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서 쉬고 있던 순간과 맞아떨어진 겁니다. 그때 어디로 갈까? 그것은 순례길이 아니고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이면 좋겠다. 그것은 칠레일 수도 있고, 혹은 아프리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선택 지점에서 역사적 문화적으로 스페인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들이 같이 작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달 간 스페인에서 머물게 됩니다.

 

산티아고 길 자체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정보와 이미지들이 인터넷에 있고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영화에 대한 정보, 산티아고 길 자체에 대한 정보를 이미 풍부하게 가지고 계시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나올만한 이야기는 피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산티아고 특별강연 03

 

프랑스 생 장 피에 드 포르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대략적으로 800km의 여정을 하게 됩니다. 이 길이 언제부터 순례길로 호명이 되고 특히 가톨릭 신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순례길이 되었는가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대략 9세기 무렵 스페인 어딘가에서 예수의 12제자 중 한사람인 야곱의 무덤이 발견이 되었다는 소식이 스페인 각지로 퍼진 것 같습니다. 그때가 9세기 무렵으로 10세기를 거치면서 이베리아 남단의 이슬람 무어인들이 다 차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교황청과 국내 왕족, 귀족, 가톨릭이 이른바 레콘키스타라고 하는 국토회복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의 전 가톨릭교도를 결집할 수 있는 상징적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야곱의 무덤이 됩니다. 기록에 의하면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가 순례의 황금시대였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국토회복운동이 끝나고 난 후 귀족들은 산티아고길로 조성되어있던 십자군 군단들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폐쇄하게 됩니다. 그때가 14세기 무렵으로 그때부터 이 순례길은 아주 오랫동안 잊힌 길로 남아있게 됩니다. 잊힌 길로 남아 있다고 해도 그런 정치적 의도와 외교적인 부분과 상관없이 이 길을 가고자 했던 가톨릭교도들은 있었을 것으로 봐집니다.

 

이 길이 어떻게 다시 현대에 재조명, 재각광을 받게 되었는가 하면 파울루 코엘료가 가 86년에 이 순례길을 걷고 나서 87년에 순례자라는 책을 발행하고 그 이후 재조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코엘료에 의하면 본인이 1986년에 이 길을 걸었을 때 한 해 동안 순례자가 몇 명 정도 되었을 것 같습니까? 조사는 안 해봤습니다만 대략적으로 6-70만 명이라고 잡아보면 86년 기준으로 당시에 순례자 협회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기록에 의하면 매일 400명이 아니고 한 해에 400명 정도였다고 이야기합니다. 한 해에 400명이라는 것은 산술적으로 하루에 한 명이라는 것이죠. 하루에 한 명이라고 하는 것은 5일을 걸어도 사람 한 명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86년도만 하더라도 순례자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 혹은 마을 마을들이 지금 걷는 만큼 있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86년도 전까지가 어떤 측면에서는 관광과 산업과 소비로서의 순례길이 아니고 어떤 측면에서는 정말로 영적인 느낌을 위해 순례를 하는 자들의 순례길 이었다고 봐집니다. 이 길이 결국은 다시 한 번 각광받는 것은 아마 유럽연합이 탄생하게 되면서 이 길이 각광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유럽연합 내에서는 이동의 자유가 비자로부터 해방이 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죠. 유럽연합의 탄생과 함께 유럽인들이 이 길을 다시 찾기 시작합니다. 유럽연합이 1993년에 탄생을 했고 그리고 10년 뒤 아시아에서, 일본 사람들이 대거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일본 사람이 거쳐 간 5년 뒤에는 누가 들어오는가 하면 한국 사람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제는 중국 사람들이 들어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2009년에 갔을 때 만났던 한국 사람은 단 한 명이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몇 년 사이에 종교적이든 일정한 여가와 시간 비용 속에서 선택이 가능한 부분이었든 상징적으로 그 대열에 합류하고자 했던 마음이었든 신을 찾든, 자기 의미를 부여하든 이 모든 산티아고의 모습은 10년 이래의 모습이라고 봐집니다. 서기 8세기로부터 1980년도 초반까지는 거의 잊힌 길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나의 산티아고 특별강연 04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이 영화에 나왔던 대사 중 떠날 준비가 되셨냐고 물어봤을 때 현실적으로 지금 이 시간에 선택할 수 있는 지점으로서 당장 떠날 수 있는 분이 얼마나 계실까요? 아주 어려운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 생각이 왜 들었는가 하면 어제 미국의 마이클 무어 감독이 <다음 침공은 어디?>라는 또 한 번 화제가 될 만한 다큐가 개봉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영화의 기본적인 개요를 보게 되면 무어가 펜타곤을 찾아가 당신의 충실한 전사가 되어서 다른 나라를 점령하겠다. 점령을 하되 세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총을 쏘지 않겠다. 두 번째 그 나라의 기름을 약탈하지 않겠다. 세 번째 미국에는 없는 아주 유용한 것을 들고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다른 나라를 침공하러 떠납니다. 떠나는 나라들이 주로 독일에서는 히틀러 시절의 과거와 대면하는 방식을 가져옵니다. 아이슬란드에 가서는 남녀평등에 대한 현재의 모습들을 미국에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가져옵니다. 프랑스에서는 학교 급식의 뛰어난 점을 들고 옵니다. 핀란드, 노르웨이 등 같은 유럽의 복지국가라고 하더라도 국가마다 있을 수 있는 특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가 유독 매혹 되었던 것은 이탈리아의 유급휴가제도였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만 유럽 쪽에 여름휴가 기간이 꽤 길다고 하는 것은 익히 알았고 꽤 길다는 유럽 국가들이 서로 견제되기 때문에 그런 복지들이나 휴가들이 굉장히 축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탈리아는 여전히 8주간의 휴가가 있는 겁니다. 13월이라고 하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한 달이 더 있어서 12월에는 똑같은 비중의 월급을 두 번이나 받는다고 합니다. 8주의 휴가라고 하는 것은 원래 3주에다가 수호성인이 태어난 달은 다 유급휴가입니다. 나라에서 정한 국경일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렇게 다 합치면 8주가 되는데요. 8주 자체가 한 사람이 연간 낼 수 있는 휴가라고 본다면 한 해의 노동과정 속에서 8주간의 유급휴가가가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가는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점심은 2시간이라고 합니다. 여름에 폭염주의보만 내릴 것이 아니고 1시간의 점심시간과 1시간의 낮잠을 잘 수 있는 그 권리를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허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을 해봅니다.

 

아시다시피 순례길은 까미노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것만 하더라도 로마로 가는 길이 있죠. 예수의 성례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에서는 메카가 있죠. 티베트에서는 티베트 불교 교도와 라마 교인들이 라사를 찾아갑니다. 인도에서는 룸비니로 찾아가죠. 라마 교도는 특히나 칼라파타르를 오릅니다. 이들은 도달하게 될 장소의 목적이 없습니다. 어디로 간다라고 하는 것은 그 목적지는 성지가 아니라 내게의 성지로 가는 여행입니다. 많은 여행자들은 여유가 있었다면 3-4개 정도는 가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만 저는 아무 곳도 못 가봤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갈 수 있으면 좋지만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 이후로 먼 길에 대한 신비, 환상, 열망, 욕망은 거의 사라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녀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먼 길의 순례길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일상에도 순례길이 있습니다. 일상에 순례길이 있다는 것은 제가 아주 낭만적으로 포장을 해서 디자인을 해서 쓰는 표현이지 일상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도 평온하지도 않고 전쟁입니다. 전쟁 속에서 자기의 일상들을 평온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그것 때문에 길을 걷기도 하고, 길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헤아려 나가는 과정들이 일상의 순례라고 보아집니다. 늘 성공적이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서점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서적이 자기개발서입니다. 어떻게 사다리를 잘 탈 수 있으며, 탄 사다리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며 어떻게 친절하게 성공적으로 사다리에 오르고 유지할 것인지, 어떻게 인맥관리를 잘할 것인지 어떻게 상처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것인지 이런 개발서가 우리 도서 시장의 모든 인문, 정치, 사회, 경제, 자연과학의 시장들을 잠식해 버립니다. 그 많은 자기개발 도서의 보급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는 소리는 그다지 들리지 않습니다. 즉슨 자기 개발이 실패한 것이고,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적성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원래 우리가 선 자리 자체가 절대적인 행복이라는 것은 없지만 사회 시스템 자체가 끊임없는 경쟁 구도 하에 있다면 불안해서라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개발서를 보게 되겠죠. 이 일련의 과정들에 대한 느낌들은 제가 산티아고 이후로 점차 일상에서 가져가는 생각들입니다.

 

나의 산티아고 특별강연 05

 

 

산티아고 길을 안내하는 지도에는 구간별 거리가 표시되어있습니다. 많을 때는 35km 정도, 적을 때는 24km 정도 걸었던 것 같습니다. 해뜨기 전에 출발해서 해질 무렵에 도착하는 통상의 순례입니다. 보통 출발하기 전에 안내서에는 절대 배낭을 10kg 이상 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절대적으로 어리석음을 저질렀죠. 노트북을 들고 갔던 겁니다. 버리지도 못하고 들고 다녔습니다. 10일 동안은 배낭의 무게를 잘 체감하지 못 합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500g, 100g, 50g 무게를 새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버릴 수 있을지.. 하나씩 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내 가방에 있는 것들이 9kg 이하로 내려가지 못합니다. 그 짐을 가지고 출발을 하죠. 외국 사람들은 스님들이 메는 행낭을 하나 메고 지팡이를 들고 아주 가벼운 모습으로 먼 길을 순례하는 분도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순례자의 모습으로서 외향을 본다면 그런 모습이 가장 가깝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볼까요. 독일에 있는 사람이 하페가 스페인에 가는 것과 프랑스 사람이 스페인에 가는 것과 한국사람, 일본사람이 스페인을 간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다른 차원의 지점들이 있습니다. 유럽인들은 완주에 목을 메달 지는 않습니다. 독일에서 어떤 휴가 때는 100km를 걷고 다시 집에 갑니다. 다음 휴가 때, 100km 걷고 이렇게 선택할 수 있는 지점들이 사실은 자유롭고 굉장히 많죠. 특별히 여유와 시간이 있지 않는 이상 우리들은 한번 갔을 때 끝장을 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갈 수 있는 환경을 내가 만들어 낼 수 있거나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은 이 길은 이것으로 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든 살든 800km를 가야하고 이것도 부족해서 30, 25일 만에 완주해 내었다고 자랑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산티아고 길은 완주가 목표가 아니라 그만두어도 좋은 길이 순례길입니다. 내가 왜 이것을 걷고 있을까 차라리 마드리드에서 미술관을 순례하는 것이 낫지. 그런 것들은 이 순례길의 의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나의 산티아고 특별강연 06

 

이것은 산티아고 길에서 찍는 도장들입니다. 산티아고 도장길이 시발점이 되어서 제주도 올레길에서도 스탬프가 등장하고, 지리산, 산복도로, 감천문화마을 등에도 등장합니다. 이 스탬프라는 것이 작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좀 더 깔끔하게 디자인할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한 번씩 생각해 봅니다. 스탬프의 모든 문양들은 그 지방 그 마을의 상징, 전승, 지금의 모습을 다 반영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국적인 문물이어서 제 눈에 신기하게 느껴졌을 부분도 있겠지만 굉장히 디자인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이제 여행을 시작합니다. 코엘료가 87년도 순례자에서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야고보가 그대와 함께하여 그대가 발견해야 할 유일한 것들. 두 번째,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걷지 말 것. 언제나 길의 법칙과 여부를 존중하며 걸어가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이 순례자의 항목에 나옵니다. 저는 이 순례자를 산티아고 떠난 후에 이 책이 나왔기 때문에 가기 전에 읽지는 못 했습니다. 지금 새삼 다시는 들춰볼 일이 없었던 이 순례자를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과연 여기에서 말하는 길의 법칙과 여부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가 발견해야 할 유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새삼 6-7년 세월이 흘러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단적으로 정형화해서 공식화해서 표현할 수 없는 나의 일상에서 점차적으로 확인되고 확신을 가지거나 의문을 가지면서도 내 생활에 묻어 나오는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하나의 일반화된 확신으로는 하기 힘듭니다. 순례길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물론 길입니다. 길 위에서도 순례길 위에서 죽은 이들을 먼저 마주치게 됩니다. 여기에는 이탈리아 사람도 있고 일본 사람도 있으며 스페인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오랫동안 질병을 앓아죽는 경우 보다 사고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티아고길은 어떤 축면에서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길 위에서 삶과 죽음을 함께 발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죽으려고 이 길을 걸은 것은 아니지만 혹시 죽어가는 그 순간에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죽음이라고 한다면, 이 길 위에서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증이 듭니다.

 

나의 산티아고 특별강연 07

 

다음 사진은 산티아고의 표지와 표식들입니다. 지팡이와 조개는 상징물입니다.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조개를 배낭에 매고 지팡이를 짚음으로써 이 길에 있는 순례자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게 됩니다. 지금도 아내의 화장대에 이 조개가 걸려있습니다만, 늘 걸려있지만 늘 보지는 못 합니다. 산티아고는 이런 방식으로 한 번의 적합적인 깨달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잊을만하면 간혹 나오는 기억들이 저에게는 산티아고의 교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