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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work screening' A : 허병찬, 정주아, 노수인, 임봉호 2016-06-25(토)  - 인디플러스 영화의전당

Media art work screening A 01


6/25  Media art work screenin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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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스트: 허병찬, 정주아, 노수인, 임봉호

* 진 행: 김상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집행위원장

* 장 소: 인디플러스 영화의전당




(김상화) 미디어아트는 흔히 전시장에서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되게 영상물만 독립적으로 보이기보다 어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장치로 구현이 되어 그 속에 영상물이 포함이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많이 보여졌습니다. 전시장에서 독립적으로 공간을 꾸리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를 덧씌우거나 넓혀서 이야기를 많이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영상만으로 독립적인 것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먼저 간단하게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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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호) 한동안 주어진 텍스트를 변조하는 작업을 해왔는데요, 강령이라던 지 매뉴얼이라던 지 주입되는 여러 가지 정보들이 얼마만큼 유력한가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여러 구상을 하다가 제가 선택한 단어를 고쳐서 다른 형식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진행해 왔습니다. 자기 비판적 의식 보이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자체에 대한 꿍꿍이에 대해 주목 시키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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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인) <신호등>을 일종의 규칙이라는 메타포로 사용한 작업을 했고요, 규칙이 지켜야 하는 것이잖아요. 실제로 규칙이 효용성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자체가 철학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라던 지 규칙 자체가 원론적으로 맞지만 현실에서는 효용이 없는 경우라던 지... 여러 가지 경우의 규칙이 무효화되는 상황들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원칙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원칙이라는 것이 합의된 규칙의 형태로 있는 것을 원칙으로 봐야할지 아니면 상황에 따른 개인의 신념을 원칙으로 봐야할지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제작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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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아) <귀신의 나쁜 기억> 같은 작업은 이야기가 있어서 설명을 많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제가 공포영화를 좋아해서 열광을 하면서 혼자 보러 다니곤 했습니다. 사실은 제가 그렇게 보고 다녔었던 것이 귀신이라는 존재는 실존하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아서 보러 다녔었습니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공포영화를 혼자서 보고 있었는데 문득 정말로 세상에 귀신이 있다면, 귀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놓고 매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슬플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는데 존재만으로 무서움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 존재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업했습니다. <진실한 남자>의 경우에는, 영상작업하나를 보여드렸는데, 짧은 애니메이션 10편정도와 드로잉, 큰 페인팅을 시리즈로 만들어서 전시공간에 함께 설치해서 보여 졌던 작품입니다. 방금 보여드렸던 영상이 가장 대표하는 작업 시리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서 보여드렸습니다만, 그 이야기를 좀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좀 난해하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어떤 남자를 상상했었는데 그 남자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에요.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호감을 얻고 싶고, 미움 받는 것을 되게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것을 얻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방법을 생각하다 진실한 사람에 대한 호감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떻게 하면 진실할 수 있는지는 모르는 거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솔직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자고 생각해서 보여주기 어렵고 숨겨져 있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 남자는 혼자 방안에 있을 때 자기만을 위한 해석되지 않는 동작들, 발작이라고 보일 수 있을 정도의 이상한 동작을 하는 것을 보여주자. 실제로 자기가 방안에 혼자 있고 사람들은 밖에 있는데 문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서 그 모습을 보이게 하면 내가 제일 보여주기 어려운 것을 보여주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그런 것을 보여주는 아주 모순된 욕망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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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찬)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인데요, 이번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조금 더 다듬어서 올해 말쯤에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비디오 작업을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소리없는 아우성 만덕 재개발 지구>는 사회성을 가진 작품들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마침 만덕 재개발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덕에 살고 있는 아는 동생을 통해 듣게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 무너지기 전에 한번 촬영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 곳에 갔었습니다. 천장에 가까운 사진을 찍었고요, 오늘 여러분이 보신 장면은 천장의 사진을 2m 정도의 한 장의 사진으로 콜라주를 했고, 거기서 제가 느꼈던 천장의 풍경을 한 장으로 묶었습니다. 거기서 몽타주 되는 말들은 실제로 마을 속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그런 장사꾼들의 소리인데, 그것들이 불합리하게 어우러질 때 느껴지는 제3의 이미지를 각자에게 던져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의 경우, 제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거대한 도시에서 문득 느닷없이 들어오는 미디어의 폭력성을 굉장히 강하게 느꼈었습니다. ‘요도바시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LG전자’,‘삼성전자처럼 굉장히 큰 전자 메이커입니다. 조금 전 나오는 노래에도 사장이 기존에 있는 멜로디에 본인들의 제품선전에 대한 가사를 붙여 만든 회사 로고송이고요.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대표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이용해서 지하철에 있는 적막함과 몽타주 시켜 작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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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art work screening A 02


(관객1) <신호등>의 경우 소리 없이 작업을 하셨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고요, <신호등>이 계속 빨간불인데 잠깐 초록불로 바뀌었다가 다시 빨간불로 돌아가는데 왜 주로 빨간불을 보여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부분이 조금 전 말씀 주신 규칙과 관련이 있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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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인) 지금 제가 영상으로 만들어 놓은 상황은 신호등이 고장이 나서 계속 빨간불로 있는 상황을 연출한 것입니다. 신호등이 계속 빨간불이니까 사실상 신호등의 기능이 없는 상태이잖아요. 파란불이 있어야 빨간불도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요. 빨간불에 건너면 안 된다는 원칙은 남아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효용을 잃어버린 상황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초록색불이 1초가 안 될 거예요, 잠깐씩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캐치하시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되게 예리하시네요.(웃음) 사람이 건널 수 없는 되게 짧은 시간이잖아요. 초록색 불에 건너는 것이 원칙인데 시간이 짧아지면 원칙만 붕 떠서 있고 실제로 효용성은 없어지는 상황의 역설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한 거였습니다. 소리도 일부러 싹 뺐는데 작업 보시기 지루하셨죠? 영상 속에서 한 시간 정도를 재고 서 있었거든요. 저는 그 재고 있는 동안의 지루함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관객을 한 시간 동안 앉혀놓을 수 없으니까 시간이 빠르게 지나감으로써 시간성에대한 부분도 전달은 해야 하고 그렇다고 안 지루하게 휙 지나가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요. 어느 정도의 지루함을 같이 느껴주시길 바랬어요. 소리를 빼니까 지루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연출을 하면서 규칙이나 원칙이 효용성이 없어졌음 애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기다려야하는 시간에서 갈등을 분명히 느낄거라말이죠. 저 신호등 고장 난 것이 분명한데 내가 건너는 것이 맞나? 빨간불인데 건너지 말아야하나? 이런 갈등을 느껴주시길 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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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2) 29.97의 의미와 우리가 미디어를 많이 접하긴 하지만 여기에 아트를 접목시키니까 생소한 느낌이 듭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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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재규) 29.97 이라는 것은 영상을 제작할 때 마지막으로 컴퓨터를 통해 무비로 엮어 내는데 거기에 프레임 수치가 원래는 30프레임으로 출력해야 정상인데 컴퓨터 영상 수치에 의해서 30프레임으로 출력이 안되고 29.97로 출력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쉽게 생각하면 필름 같은 경우는 24프레임이 풀프레임이고, 비디오의 경우는 30프레임이 풀프레임인데, 29.97 이라는 것이 저희들에게는 약간 모자란 완벽하지 않은 그런 숫자의 개념이기도 하고요. 저희가 부산의 미디어 아트라던 지 영상작업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수많은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설 수밖에 없는 분야의 현실과 아직 미숙하게 이런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역량도 앞으로 많은 가능성을 두고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의미에서 29.97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비디오 아트라고 하면 백남준씨를 떠올리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미술사에 남아있는 작가를 굳이 들자면 한국인으로는 백남준씨, 이요한씨 두 분을 거론할 수 있는데요. 백남준씨가 비디오 아트를 창시하고 선구자로서 활동을 한 이후에 많은 실험들과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시대에 저희가 하고 있는 작업의 정체성은 뭔가 한다면,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저희가 때로는 영상미술이라는 용어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미디어 아트, 비디오 아트, 필름 등 여러 가지로 사용이 혼용되고 있습니다. 저희들 연구모임도 모여서 스터디도 하고 하지만 현대미술에 있어서 영상이나 행위들은 이것의 정체성을 정립해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객분들도 보시고 의문을 가지시는 것이 당연한 게 저희들조차도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이 굳이 맥락을 잇자면 백남준씨에 기인될 수밖에 없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늘 보신 작품들이 애니메이션의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던 지, 어떤 작품은 실험영화적인 성향도 있고, 아방가르드 적인 여러 관계에 맞물려있기 때문에 과연 현대미술에 있어서 이런 영상미술들을 단 시간에 한마디로 규정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설치적으로 전시를 하는 경우에는 미디어 적인 성향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하드웨어적인 성향이 강하다던 지, 설치적인 성향이 강하다던 지. 그런데 오늘처럼 싱글채널로 보여드릴 때는 굉장히 규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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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화) 29.97 멤버는 총 4명으로 각각 한 분씩 추천을 해서 오늘 상영회를 준비하셨는데, 정주아 작가는 허병찬 작가가, 노수인 작가는 임봉호 작가가 추천을 했습니다. 추천을 한 이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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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찬) 오늘 반응을 보고 계속 이런 전시를 만들어 갈 계획에 있습니다.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인가 하면 저희가 15-20년 전에도 부산에서 이런 활동을 활발하게 했었는데, 결국은 10-20년 지난 후에 영상을 만드는 작가들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상업적인 것과 굉장히 관련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실 때, 때론 지루함도 느끼셨을 것이고 왜 이런 것을 상영하는지 의문도 가지셨을 겁니다. 우리가 완벽하게 오락과 재미를 같이 상업적으로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는 예술적 특성이라는 미묘한 부분이 숨겨져 있습니다. 현대미술을 발판으로 두고 할 작업들이 좀 더 많은 분들에게 공유 받고 소통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시작이라고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선생님들을 멤버가 각자 초대를 해서 같이 상영회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정주아 선생님을 초대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취향의 작업을 하시고 같이 이런 영상분야를 알리는데 있어서 힘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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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아) 일단은 제 작업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기꺼이 응했고요, 한편으로는 말씀하셨다시피 미디어 아트를 하는 작가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경제적으로 작가한테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의견을 나누거나 공유를 하거나 할 사람이 많이 없는데 이런 모임에서 초대를 해 주시니 반가운 마음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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