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MOVIE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한 우리의 나날들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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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오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이불을 갠다. 개수대 앞에서 양치를 하고, 수염을 정리한 후 세수를 한다. 분무기로 화분에 한껏 물을 뿌려주고 등판에 ‘the tokyo toilet’이라고 적힌 작업복을 챙겨 입은 뒤 집을 나선다. 캔음료로 목을 축인 다음 자동차에 올라 카세트 테이프를 꺼낸 다음 좋아하는 가수의 올드팝을 들으며 일터로 향하는 게 그의 일상이다. 도착하자마자 재빠르게 청소 도구를 챙겨들고 나와 화장실의 안팎을 구석구석 오가며 청소를 시작하는 히라야마.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사람이 들어오면 조용히 비켜 서고 있는 듯 없는 듯 투명인간처럼 움직이던 그는 틈틈이 자신의 시야로 들어오는 나무를 올려다본다. 오직 나무와 히라야마만이 서로를 알아보는 것처럼, 그의 시선이 나무에 머무르면 햇살도 덩달아 그의 머리맡에 머무른다. 그 순간도 잠시뿐, 히라야마의 존재감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달래주고 엄마를 찾아 주었어도 아이 엄마는 히라야마의 손을 잡았던 아이의 손을 티슈로 닦아내며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매몰차게 자리를 뜬다. 투명 공중 화장실 사용 방법을 알려주었던 외국인 외에는 누구도 히라야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수고했다는 칭찬도 하지 않지만 히라야마는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 화장실 벽 틈새로 넣어둔 빙고 쪽지를 찾아내어 마저 그림을 그려넣는 다정함을 베풀고,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을 때마다 찾아가는 신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이웃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넨다. 나무를 꼬옥 끌어안거나 춤을 추는 것 같은 특이한 몸동작을 선보이며 종종 거리에 나타나곤 하는 노숙자에게도 관심을 가지면서, 히라야마는 일터 속 풍경이 되어주는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진심으로 대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 타카시는 늘 성실한 태도로 청소에 임하는 히라야마에게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건데 뭐하러 그렇게 열심히 닦냐"고 다그친다. 히라야마는 일도 설렁설렁하는데다 일터로 여자친구를 데려오고 데이트 비용이 없다며 자신이 차곡차곡 모아둔 올드팝 카세트테이프까지 팔아서 돈을 챙기려는 타카시에게 수중의 돈을 전부 주면서 너른 마음으로 그를 감싼다.
이 모든 장면에서 히라야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보였다. 대기 중에 깨끗한 산소를 공급하고, 여름엔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가을밤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전구가 되어주는 등 자신의 모든 생애를 빈틈없이 할애하는 나무. 나무 곁에서 자라는 자그마한 식물까지 놓치지 않고 조심스레 자신의 일상 속으로 품어가는 히라야마는 나무와 꼭 닮은 사람이었다. 어떤 훌륭한 일을 해도 생색 내지 않고 무심히 자리를 지키며 제 할 일을 하는 나무가 자신과 닮아 있어 마음이라도 통한 것인지 히라야마가 나무를 향해 시선을 두는 행동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의문스럽지 않았다. 무성한 잎사귀로 채워진 하늘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히라야마는 어쩌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날들 속에서 변함없이 푸르고 선명한 나무처럼, 자신도 그렇게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무를 올려다 본 것은 아닐까. 나무를 바라볼 때마다 히라야마의 눈동자에는 촘촘한 물기가 서려 있었는데 나는 그 눈빛에서 동경심을 읽게 되었다. 나도 히라야마처럼 하염없이 나무를 바라보던 시절을 지나온 적이 있기 때문일까.
나이테를 그려본다면 자그맣게 퍼져 있는 동심원에 불과할 뿐인 세월을 살았지만, 삶이 버겁게 느껴지던 과거의 시간이 있었다. 가족에게 일어난 불행은 내 인생까지 속수무책의 상황 속으로 내몰리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오게 된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낯선 도시에서 무작정 걷고 또 걷다가 떨구었던 고개를 들면 내 앞에선 항상 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그 당시 나 또한 나무처럼 버텨야만 했기에, 흔들림 없이 꼿꼿한 나무에게 귀를 기울여 그 비결을 듣고 싶기라도 했는지 최대한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나무와 함께 있으려고 했다. 점심시간에도 나무가 즐비해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홀로 밥을 먹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도 창밖으로 줄지어선 가로수를 구경했다
김아현이라는 인디 가수의 ‘나무’라는 노래를 자주 들었고 주말에는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더 커다란 위안과 용기를 얻기 위해 펴들었던 책도 결국 다 나무가 내게 준 것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무와 함께 지나오면서 나무가 어떻게 사계절을 살아내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따라하면서 나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나무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는데 나무를 눈으로 좇기만 했을 뿐인데도 밑동이 굵은 나무처럼 자아의 뿌리가 튼튼해지면서 일상은 견고해졌다. 눈가가 젖은 채 잠들던 날이 줄어들고 일이 주는 고단함도 금세 떨칠 수 있을 만큼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도 나도, 계속 살아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채울 수 있었던 건 전부 나무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무사히 건너온 지금도 나는 일상 속 한결같은 친구가 되어준 나무의 사려 깊은 응원을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중이다.
나무는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아무리 숲속과 동떨어진 도심 속에서 우두커니 서있는대도 둥지를 틀기 위해 찾아오는 새들, 나뭇가지를 그네 삼아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 히라야마와 나처럼 계속해서 나무 곁으로 되돌아오는 사람 앞에서 나무는 기어코 발견되어진다. 그러니 히라야마도 발견되어질 수밖에 없었다. 화단을 가꾸듯 자신의 일상을 아름답게 돌보고, 다른 이들의 안녕까지 조심스레 살피는 히라야마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영화를 감상하는 나만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는 때에 들르곤 했던 헌책방이나 단골 술집의 사장이 그를 알아봐주고, 말을 걸어주고, 챙겨주는 장면에서 기쁨과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가는 단단한 주인공이지만 아무도 그의 영혼에 배어있는 향기를 맡지 못하면 어떡하나, 아무도 그의 열심을 알아주지 않으면 어떡하나 마음이 쓰였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매일 똑같은 날들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희망을 기민하게 눈치채듯, 그 또한 누군가에게 기적처럼 발견되어지길, 그래서 조금은 더 행복해지길 바랐다. 어쩌면 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그에게 아직 더 완벽한 날들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바라던 찰나에 마침 조카인 니코가 가출을 하고 히라야마의 집에 머물겠다며 나타난다. 히라야마의 일상에 불쑥 끼어든 양갈래 머리의 귀여운 조카는 히라야마의 입가에 잦은 미소를 띄운다. 올드팝이 울려퍼지는 출근길부터 함께하며 화장실 청소 일을 돕고 잠들기 전엔 히라야마 집에 있던 헌 책을 읽으며 조잘조잘 말을 걸어온다. 여느 때처럼 신사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나무 사이로 반짝이는 빛을 촬영하던 히라야마에게 니코가 묻는다. "저 나무는 삼촌 친구야?" 며칠 사이에 삼촌의 모든 걸 간파했다는 듯 "맞지?"라고 재차 묻는 니코에게 히라야마는 "저 나무는 내 친구야."라고 대답한다. 그 장면이 정답고 사랑스러워서 좋았다. 조카에게 발견되어진 히라야마가, 나무만 카메라에 담던 히라야마가 조카의 모습을 찍는 장면도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감동이 있었다. 그러나 히라야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동생과 포옹으로 아련한 인사를 나눈 뒤 흐느껴 울었다. 어떻게 가족과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는지 그 사연은 끝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무는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이므로 히라야마의 곁에 계속 그를 알고 싶어하고,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함께할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다. 히라야마가 지금보다 좀 더 완벽한 날들을 욕심 냈으면 했다.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촘촘한 구슬을 꿰듯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로 하루를 채우며 잘 살아가고 있는데도 계속 그가 더 완벽한 인생을 살길 바랐다
어쩌면 히라야마에게 유독 친절했던 단골 술집의 사장이 히라야마의 인생 속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을 채워줄 인연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다. 그러다 마침 히라야마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 술집에 들렀다가 사장과 사장의 전 남편이 재회하는 순간을 보게 된다. 전 남편은 히라야마를 찾아와 자신이 암에 걸렸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서 이혼 후 7년 만에 만나게 된 거라고 이야기를 터놓는다. 둘은 함께 맥주를 마시다가 "그림자는 겹치면 더 어두워질까요?"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뜬금없이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하게 된다.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끝나나 봅니다."라는 전 남편의 말에 히라야마는 직접 해보자며 그와 자신의 그림자를 겹쳐본다. 그림자를 겹쳐도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전 남편의 말에 더 어두워진 것 같다고 우기는 히라야마.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뭉근하게 내려 앉던 그의 대답을 곱씹어보면서 다음날에도 어김 없이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란 재즈풍의 노래를 들으며 출근하는 히라야마의 표정을 보았을 때, 그가 더 완벽한 삶을 살길 바랐던 생각을 단념했다.
인생이란 원래 완벽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흠잡지 않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표정에는 웃음과 울음이 뒤섞여 있다. 나 또한 영화의 마지막 순간 롱테이크로 비춰졌던 히랴야마와 같은 표정을 지어본 적이 있었다. 희노애락 범벅인 삶을 함께 견뎌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스치듯 보았을 땐 결연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너머로 히라야마와 닮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새 바램을 품어본다.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더라도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세상에서 빠져나와 서로의 그림자를 자주 겹쳐보는 세상이 될 수 있기를. 그 과정에서 삶이 더 불완전하게 느껴질지라도, 온전하지 못한 나와 다른 존재를 아울러 응원하고 사랑하기 위해 서투른 몸짓이나마 뻗어본다면 히라야마처럼 무상한 듯 이어지는 삶을 긍정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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