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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 무언의 응답이라는 시선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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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쇼 코지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장면에서 긴 클로즈업 샷을 보고 관객들은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웃는 것일까 우는 것일까. 웃는 것이라면 슬픔을 가리기 위해 웃는 것인가. 울고 있다면 희망에 부푼 기쁨의 눈물일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영화를 쭉 돌이켜보며 각자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나면.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라는 말과 함께 나뭇잎이 우리의 눈에도 눈물이 맺힌 것처럼 흔들거린다. 이 마지막 쇼트, 코모레비는 러닝타임 내내 반복된다. 이 반복은 단지 이미지로서 히라야마가 공원에서 카메라를 통해 찍었던 시점 쇼트나 화장실벽에 나뭇잎들이 그림자를 형성하여 보여주는 유사한 이미지들의 나열이 아니다.
히라야마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 건 그 순간을 포착하고, 응시한다는 뜻이다. 그가 응시했던 장면들은 꿈속의 잔상으로, 혹은 필름 속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 꿈과 사진은 모두 영화 속에서 흑백의 이미지로, 나뭇잎들과 함께 나타난다.
히라야마가 공원에서 노숙자를 본 첫 장면에서 그는 나무에 찰싹 달라붙어 마치 자연 속에 흡수되어 버리고 싶다는 듯이 몸을 밀착시켜 숨어버린다. 그늘의 어둠속에 가려져있는 실루엣. 청소를 어느정도 한 뒤, 히라야마는 노숙자를 다시 한 번 응시한다. 이번에 그는 어둠속에서 벗어나 따뜻한 햇빛을 마음껏 쬐려고 가지를 뻗는 나무처럼 보란 듯이 거대한 빌딩의 그림자 틈 사이로 나와 팔을 뻗어 올리는 몸짓을 한다. 이는 마치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는 느낌마저 든다. 다음 날에도 그는 나무처럼 꼿꼿이 서 있다. 하지만 히라야마의 눈에만 보인다는 듯 공원에 있는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며칠 후, 히라야마는 똑같은 곳을 쳐다본다. 노숙자는 지금까지 자기를 알아봐 줘서, 지켜봐 줘서 고마웠다는 듯 히라야마에게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떠난다. 시간이 지나고 히라야마는 차로 이동하다 우연히 교차로에서 그를 발견한다. 수십 명이 길을 건너는 교차로 한가운데서 그는 또 한 번 자신의 몸부림을 알아봐 달라는 듯 힘차게 팔을 뻗어 올려본다. 하지만 다들 깜빡거리는 신호등을 향해 뛰며 자신의 길을 서둘러 지나가기만 하고 누구도 노숙자를 쳐다보지 않는다. 이윽고 붉은색으로 건널목의 신호가 바뀌자마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히라야마의 얼굴로 급하게 쇼트가 전환된다. 히라야마는 차들이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에 쫓기듯이 떠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럴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 날 밤 히라야마는 꿈속에서 위태로워 보이는 노숙자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노숙자를 연기한 다나카 민은 일본의 전위예술가로, 유명한 무용수이다. 그의 몸짓을 통해 빔 벤더스 감독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선 일본의 영향력 있는 무용수가 한 명 더 등장한다. 바로 걸스바에서 일하는 타카시의 여자친구 아야 역할을 맡은 야마다 아오이다. 그녀는 입만 살아있는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10점 만점에 10점을 외쳐도, 조용히 하라고 다그친다. 뒷자리에서 커플 사이에 낀 채로 히라야마는 아야를 말없이, 묵묵히 쳐다본다. 그녀는 카세트테이프를 들어보고 싶어 하고 히라야마가 틀어주자 가사까지 찾아보며 즐긴다. 하지만 아야는 어딘가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히라야마가 흐뭇해하는 사이 타카시는 테이프를 슬쩍 아야의 가방 속에 넣어준다. 그날 밤 히라야마는 꿈속에서 디졸브 되는 나뭇잎 틈으로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다. 며칠 후 아야는 히라야마에게 테이프를 돌려주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들어볼 수 없겠냐 묻는다. 히라야마는 여전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때 화면은 롱쇼트로 차가 마치 나무의 품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컷어웨이 된다. 아야는 차 안에서 음악을 듣다 난데없이 울음을 터트린 후 고맙다는 듯 히라야마의 볼에 뽀뽀하고 도망치듯이 떠난다. 그녀가 왜 우는지 관객들은 전혀 알 수 없다. 그저 그 슬픈 감정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감독은 옆에서 그녀를 응시하며 묵묵히 음악을 틀어주는 히라야마를, 그런 히라야마에게 감동하는 아야의 모습을 영화 속에 담았을 뿐이다. 두 명의 무용수는 몸짓과 표정으로 자신을 표현했고, 히라야마는 무언의 응시로 그들에게 응답한다.
히라야마는 산사에서 곧 죽어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갈 것 같은 묘목을 담아 가져온다. 그의 집에는 이미 다른 화분들 속에 같은 처지에서 온 듯한 풀잎들이 소박하지만 충만하게 진한 색과 생명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히라야마는 그저 빛을 쬐어주고, 분무질을 할 뿐이다. 히라야마는 노숙자와 아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긴 커녕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음악을 한 번 더 들려줄 뿐이다. 그가 영화 내에서 보는 모든 시선엔 진심이 담겨 있다. 화장실에 갇혀 있던 아이를 꺼내 줄 때도, 목욕탕에서 졸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부채질해 줄 때에도. 심지어 모르는 사람과 쪽지를 통해 빙고 게임을 할 때 까지도.무엇인가가 자신을 돌봐달라고, 아니 한번 진정으로 바라봐 달라고 요청하면, 히라야마는 그에 순순히 응할 뿐이다. 진심으로 바라보고, 매일같이 물을 준다.
평소에 나뭇잎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면, 잎사귀들이 흔들리다가 어느 지점에서 태양을 직접 쳐다보듯 눈부시게 강한 빛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히라야마가 영화 내에서 던지는 시선들은 그 순간처럼 작은 틈을 비집고 나오지만, 무엇보다도 강렬하고 따뜻한 시선이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에너지를 양분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고,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웃음 짓게 하는 희망의 빛줄기인 것이다.
히라야마가 집에서 나설 때 선반에는 자신이 챙겨 나갈 물건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그중에 가장 앞에 놓여 있고 가장 먼저 챙겨나가는 것은 카메라이다. 매일 문밖을 나서자마자 히라야마는 하늘을 보며 이마를 타고 흐르는 따스한 햇살을 향해 미소를 띤다. 태양은 언제나 그 시간이 되면 그 자리에서 햇빛을 비추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목욕을 하러 갈 때도, 파란색 자동차를 타고 출근을 할 때도 카메라는 시내의 거대한 타워를 주인공처럼 찍어 철골의 기둥이 든든하게 도쿄의 풍경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이 건물의 이름은 스카이트리이다. 거대한 나무가 항상 그 자리에 서서 그 존재만으로도 도쿄시민에게 전망대처럼 빛을 비춰주는 것이다. 주인공의 히라야마 마사키(平山正木)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 또한 나무이자 산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항상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볼 뿐이다.
히라야마가 공원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카메라로 코모레비의 순간을 포착하듯, 빔 벤더스는 카메라를 통해 히라야마의 일상을 찍으며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그 코모레비의 순간들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히라야마의 태도처럼 관객들이 카메라를 통해 과묵하고 담담하게 그 순간들을 응시하며 참여하도록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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