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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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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의 진리와 지각의 틈새 : <추락의 해부>의 불완전한 파편들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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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진리와 지각의 틈새 : <추락의 해부>의 불완전한 파편들
장지애 2024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추락의 해부>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같은 해 칸 황금 종려상을 두고 경쟁했다. 두 작품엔 배우 산드라 휠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과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의 간격을 어긋난 진실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두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이 영화 미학이 한 영화에서는 ‘베일 뒤에 가려진 진실은 없음’으로 또 다른 영화에서는 ‘아무리 외면하더라도 진실은 늘 베일 뒤에 존재함’이라는 극단을 향한다는 점은 꽤나 흥미롭다. 영화는 여전히 자신들이 다루는 진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추락의 해부>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러한 고민을 반영하며, 현대 영화가 진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던지는 복잡한 질문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추락의 해부>는 쥐스틴 트리에의 이전 작품들이 천착했던 주제를 조금 더 밀고 나간다. 트리에는 혼란과 파편의 미학으로 여성 인물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감독이다. 그녀는 심리적 혼란 속에서 여성의 자아 분열을 탐구한 <시빌>(2019)과 법정 코미디라는 틀을 활용해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욕망 사이의 충돌을 그린 <빅토리아>(2016), 정치적 혼란과 개인적 위기가 교차하는 불안정한 현실을 시각화한 <에이지 오브 패닉>(2013) 등에서 ‘옳음 혹은 진실’의 허상을 예리하게 꼬집으며 현실의 모순과 진실의 불확실성을 거칠지만 정교하게 조율해 왔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 <추락의 해부>에서는 인물들의 관계를 전작들보다 한층 더 중층적으로 엮어낸다.
알랭 바디우에 따르면 진리는 단순히 발견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건 속에서 구성되고 생성되는 과정이다. 사건은 기존 세계를 뒤흔들며, 새로운 진리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추락의 해부>는 사건의 철학을 영화적 서사로 형상화한다. 트리에는 사건을 단순히 서사의 일부로 소비하지 않고, 그것을 영화의 중심축으로 삼아 새로운 진리의 형성을 탐구한다. 영화에서 유대감과 혼돈, 관점의 얽힘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지지대가 되며, 추락하는 이미지, 허구와 진실의 관계, 다니엘의 보이지 않는 눈, 음성 녹음을 통한 이미지와 사운드의 분리는 사건을 다층적으로 구성하며 관객의 인식을 혼란으로 몰아 넣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바디우의 철학에서 말하는 “사건의 징후”로 기능하며 기존의 질서를 뒤엎고 새로운 지각과 진리를 생성할 긴장감을 구축한다. 이처럼 트리에는 관객이 사건의 중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만들며, 진리가 관점의 충돌과 불확실성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구성되는 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이것은 <추락의 해부>가 단순한 서사영화를 넘어 진리에 대한 사유를 영화적으로 구현한 일종의 실천이라는 것을 명백히 한다.
예컨대 영화에서 가장 큰 혼선은 프레임을 침범하는, 또는 이미지에 선행하는 사운드에서 비롯된다. <추락의 해부>는 프레임 안에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지 않고, 프레임 바깥의 보이지 않는 영역을 사운드를 통해 상상하게 만든다. 사뮈엘의 존재는 ‘50 Cent의 P.I.M.P.’가 재생되던 순간 간접적으로만 증명될 뿐, 관객은 그의 살아 있는 모습을 끝내 볼 수 없다. 그의 실재는 법정에서 모호한 상상 속 이미지로 겨우 떠오르기 전까지는 영화 속에 구체적으로 구현되지 않는다. 즉, 사뮈엘의 존재는 단순한 외화면의 문제를 넘어, 지각이 닿지 못하는 영역으로 남는다.
그런데 <추락의 해부>에서 사건에 관한 관객의 불완전한 인지는, 눈이 보이지 않는 다니엘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법과도 공명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산드라나 산드라를 인터뷰하러 온 조에 역시 사건에 관해 다니엘과 다를 바 없는 불완전한 지각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영화에 등장할 여러 인물, 특히 법정 씬에서 등장할 새로운 인물들은 추락 사건에 관해 불완전하다 못해 불가능한 지각의 주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일념으로 자신들의 강력한 주장을 펼치며 믿음의 영역을 지각 장(場)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때 진실이라고 할만한 것은 모두 허구적 상상과 지각의 파편으로 이루어진다. <추락의 해부>는 다니엘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반면 개(스눕)가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해 사뮈엘의 죽음이라는 표면적인 진실에 접근할 계기를 마련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을 단지 서스펜스를 고조시키거나 사건 해결의 열쇠로 사용하지 않는다. 다니엘은 엄마인 산드라의 증언을 통해 스눕과 있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과거 재현을 통해 스눕이 약을 먹은 사뮈엘의 토사물을 먹고 아팠을 것이라는 의심에 ‘약간의’ 확신을 가진다. 그러나 다니엘의 시도는 과거의 진실을 완벽하게 구성해 내지 못한 채, 단지 과거 사실의 일부만을 불완전한 상태로 확인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결함 있는 자가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갈 것이라는 전통적 클리셰마저도 전복한다. 다니엘은 사건을 해결의 중요한 열쇠를 쥔 인물이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 이상 사건의 본질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지각의 불완전성을 모든 인물의 공통된 한계로 설정하며, 진실을 둘러싼 위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추락의 해부>의 핵심 장면 중 하나인 죽음 전날 있었던 부부의 다툼을 녹음한 사운드가 법정에서 울려 퍼지는 장면을 들여다보자. 산드라 휠러의 차가운 시선과 날카로운 대사가 울려 퍼지는 법정 안. 추락의 해부는 하나의 사건을 해부하면서도 그 사건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간적 한계를 보여준다. 시각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폭력적) 상황은 실은 이내 ‘플래시백’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이미지로 변모하는데, 이 장면은 보통의 플래시백이라기보다는 녹음 파일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수준의 이미지화로 볼 수 있다. 이 장면의 끝에 방청객의 얼굴들을 연달아 보여주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눈을 크게 뜨고 앞을 주시하는 일반적인 인물들의 얼굴은 트리에가 제공한 ‘이미지화된 사운드’와 자연스럽게 몽타주 되며 앞선 영상이 이들의 상상임을 지시한다. 그리고 연결되는 것은 고개를 앞으로 숙인 다니엘이 눈이 아닌 귀로 사운드를 포착하는 모습이다.
트리에는 사운드를 통해 시각적 이미지의 지배성을 교란한다. 보이지 않는 영역을 소리로만 경험하게 만들면서 관객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상상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상상마저도 법정 장면의 플래시백과 결합하며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로 남는다. 여기선 일반적으로 지각의 형태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자의 우위에 서는 보이는 자들이 도리어 ‘허상’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위험마저 보여준다. 들리는 것을 들리는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것으로 치환하는 행태는 지각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 다시 말해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은연중에 드러낸다
반면 다니엘의 증언 때 또 한 번의 ‘이미지화된 사운드’가 등장한다. 이때 영화는 다니엘과 사뮈엘의 차 안 대화 장면에서 다니엘이 증언하는 목소리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한다. 앞선 장면과 달리 이 장면은 객관적 지표로서의 플래시백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여기서 이미지와 사운드는 균열을 일으키고 둘 사이의 관계는 모호해진다. 이 장면은 과거의 진실로 기능하지 못하고 단지 불완전한 다니엘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힐 뿐이다. 여기서부터 다니엘은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본다. 이때 봄과 믿음 사이의 전복은 부정적 전언처럼 느껴지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획득할 수 없는 진실에 관한 것이면서 진실에 대한 인간성 결함이라는 <라쇼몽>(1950)이 던진 복합적인 질문과도 같다.
시각적 예술인 영화에서 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관계는 중요한 미학적 장치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영화는 현실의 표면을 그대로 복사하는 기록장치였으며, 전통적으로 플래시백과 같은 영화적 장치는 ‘주관적 진실의 영화적 재현’으로 보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동일시에 초점을 맞추었다(이로써 주관적 진실은 객관적 지표로 기능한다). 물론 또 다른 영화들은 보이는 것에 관한 믿음을 교란하며 둘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역시 많은 경우 관객을 몰입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자 방편으로 제시되었다. 반면 <추락의 해부>에서 봄과 믿음의 관계는 서로를 포획하지 못하고 부단히 미끄러진다. 다시 말해 영화는 봄과 믿음 사이를 하나의 논리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틈에 동적인 영역을 상정한다.
영화는 많은 것들을 ‘해부’한다. <추락의 해부>에서 해부는 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에 균열을 가하는 행위다. 영화는 사뮈엘의 시체를 해부(부검)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의 죽음 이후 드러나는 사뮈엘과 산드라의 결혼생활, 그리고 각자의 약점과 고통까지도 낱낱이 파헤친다. 예컨대 겉으로 단단해 보이는 산드라의 얼굴은 그녀를 둘러싼 사건의 파편들 속에서 결백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두려움을 고스란히 내비친다. 아들 다니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순간, 그리고 법정에서 과거의 대화가 왜곡되어 재구성되는 장면들, 남편과의 갈등이 담긴 녹음 파일이 재생되거나 성적 정체성과 소설 설정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순간마다 산드라의 내면은 해부(균열)된다. 침묵 속의 숨죽임과 의도적으로 피하는 시선과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 내비치는 미묘한 떨림. 영화는 이러한 단서를 통해 산드라가 붙들고 있던 단단한 결백의 외피가 서서히 갈라지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산드라의 단단함 이면에 숨겨진 두려움을 조용히 해부한다. 그녀의 결백조차도 믿음의 영역으로 밀어넣으며, 관객에게 그 믿음을 강요한다. 그럼에도 <추락의 해부>는 사건의 파편들을 억지로 조합해 하나의 진실을 완성하려 하지 않는다. 산드라의 양성애적 성향, 변호사와의 관계, 그녀가 쓴 소설의 설정 등을 사건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진실을 구축하기보다는 허구적이고 자의적인 결합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영화는 해부된 파편들이 끝내 총체적 진실로 이어질 수 없음을 인정하며, 오히려 그 틈새에서 진실이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복잡한 것임을 역설하는 듯 보인다.
트리에는 법정을 단순히 진실을 드러내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허구적 이야기가 켜켜이 쌓이며 충돌하는 장소로 그린다. 마치 소설들이 빼곡히 꽂힌 책장처럼. <추락의 해부>의 법정은 각자의 서사가 엇갈리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진실이란 가려져 있다가 드러나는 실체가 아니라, 허구적 이야기와 믿음의 파편들로 구성된다. 사건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질문들은 끝내 유보된 채로 남는다. 이로써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관객도 자신만의 믿음을 구성해야 하는 책임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법정의 활용은 트리에의 이전 작품 <빅토리아>와 이어지는 흐름 속에 있다. <빅토리아>에서 법정은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욕망이 뒤얽히는 무대로 작동하며, 인물들이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연기하는 공간으로 그려졌다. <추락의 해부>는 이를 한층 더 심화시킨다. 이곳에서 법정은 단순히 진실을 연기하거나 허구적 설정의 허점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진실 자체의 불확실성과 구성 과정을 탐구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트리에의 법정은 이제 각기 다른 관점들이 충돌하고 파열음을 내며 진실의 복합성을 드러내는 장소로 변모했다. 그곳은 다양한 믿음이 겹치고 흩어지며 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하는 장으로 기능하며, 관객에게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추락의 해부>는 보는 것과 믿는 것, 허구와 진실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에게 능동적 해석의 역할을 요구한다. 바디우의 사유를 빌리자면 이 법정은 기존의 확실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진리가 구성되는 사건의 장으로 작동한다. 진실은 단순히 발견되거나 폭로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의 충돌 속에서 재구성되고 생성되는 실천적 과정으로 드러난다. <추락의 해부> 엔딩 시퀀스는 이 영화가 말하는 진실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드라와 다니엘 그리고 법정의 모든 증언과 기억은 하나의 결론으로 나아가는 대신 파편처럼 흩어진 채로 남는다. 화면에 남는 것은 미결의 이미지들.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질문들이다. 진실은 과연 완결될 수 있는가, 아니면 끝없이 미끄러지는 과정 그 자체로 남아야 하는가. 결국 <추락의 해부>는 진실이란 고정된 답이 아니라, 그 불완전함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균열과 틈새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환기하며, 관객에게 마지막까지도 고정되지 않은 채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진실은 완결된 실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파열과 흔들림 사이에서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흔적일 뿐이며, 이는 마침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불완전한 세계의 초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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