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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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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유러피언 누아르 특별전

[시네마테크] 유러피언 누아르 특별전

European Noir Films

2021-06-15(화) ~ 2021-07-16(금)

(매주 월요일 / 6.25. / 7.5.~7.12. 상영없음)



상영작(19편)

어느 사랑의 연대기 (1950,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1958, 루이 말)

구멍 (1960, 자크 베케르) / 냉혹한 학살자 (1962,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밀고자 (1962, 장-피에르 멜빌) 지하실의 멜로디 (1963, 앙리 베르누이)

도시 위에 군림하는 손 (1963, 프란체스코 로지) / 피와 검은 레이스 (1964, 마리오 바바)

조이 하우스 (1964, 르네 클레망) / 희미한 곰별자리 (1965, 루키노 비스콘티)

사냥 (1966, 카를로스 사우라) / 두 번째 숨결 (1966, 장-피에르 멜빌)

시칠리아의 음모 (1967, 엘리오 페트리) / 검은 옷의 신부 (1968, 프랑수아 트뤼포)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 (1969,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 도살자 (1970, 클로드 샤브롤)

여행자 (1975,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 세리 누아르 (1979, 알랭 코르노)

불면증 (1997, 에릭 스코졸드재르그)

장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요금
일반 7,000원 / 유료회원, 청소년(대학생 포함) 5,000원 / 우대(조조, 경로 등) 4,000원
주최
(재)영화의전당
후원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과
상영문의
051-780-6000(대표), 051-780-6080(영화관)

시네도슨트 영화해설

해설: 영화평론가 김은정 & 김필남

일정: 상영시간표 참고






유러피언 누아르 특별전

필름 누아르가 장르인가, 사조인가, 아니면 특정한 스타일을 일컫는 표현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영화학의 논쟁거리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쏟아져 나온 음울한 범죄 영화들에 필름 누아르라는 명칭이 프랑스 저널리즘에 의해 붙여진 이래, 미국 영화뿐만 아니라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영화계에 필름 누아르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해, 최근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 영화(예컨대 <배트맨> 시리즈)에서도 혹은 한국의 대중영화(예컨대 <낙원의 밤>)에서도 필름 누아르의 짙은 잔영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엄청난 확장성과 무수한 시대적, 지역적 변주들은 필름 누아르의 정의를 더욱 까다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는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의 유럽적 변주들을 일별하는 ‘유러피언 누아르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시기적으로는 1950년부터 20세기 말에까지 걸쳐 있는 19편의 상영작들이 소개됩니다. 감독들의 이름만 살펴보면 2차 대전 이후의 유럽 거장들의 이름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자라난 전후 유럽 감독들에게 필름 누아르가 그들의 영화적 교양의 뿌리를 이룬 원초적 체험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프랑스 누벨바그를 이끈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는 필름 누아르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와 <알파빌>,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와 <검은 옷의 신부>, 그리고 샤브롤의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그러한 애정 고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유럽 필름 누아르를 손쉽게 범주화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밤거리, 뒷골목, 불 꺼진 방으로 표상되던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의 물리적 어둠은 유러피언 누아르에서는 폐소 공포, 심리적 혼돈, 자기 파괴적 충동, 죽음에의 예감 등 갖가지 내면적 어둠으로 변주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2차 대전 이후 현대인에게 지워진 정신적 혼란과 전망 부재의 다양한 영화적 표현이 유러피언 누아르의 중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이 영화들이 변치 않는 동시대성을 띠는 이유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윤리적으로는 부정되고 극복되어야 할 이 어둠이 영화의 매혹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도 유러피언 누아르도 어둠을 성찰하면서 동시에 매혹의 대상으로 구성한다는 이율배반에서 결국 벗어나지 않습니다. 명료한 윤리적 명제에 의한 정돈이 아니라 이 이율배반의 수긍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심연을 조금은 더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누아르 영화 관람의 가장 의미 있는 체험을 이룰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이 영화사의 걸작 반열에 올라 있는 19편의 유러피언 누아르를 보면서 그 혼란스럽고도 매혹적인 이율배반을 체험해 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