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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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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캐롤 리드 특별전

[시네마테크] 캐롤 리드 특별전

Retrospective on Carol Reed

2020-02-18(화) ~ 2020-03-01(일)

상영작

별들이 내려온다 (1940) / 뮌헨행 야간열차 (1940) / 선봉에서 (1943)

심야의 탈출 (1947) / 몰락한 우상 (1948) / 제3의 사나이 (1949)

버림받은 자의 초상 (1951) / 위기의 남자 (1953) / 트래피즈 (1956)

하바나의 사나이 (1959) / 러닝 맨 (1963) / 퍼블릭 아이 (1972)

장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요금
일반 7,000원 / 유료회원, 청소년(대학생 포함) 5,000원 / 우대(조조, 경로 등) 4,000원
주최
(재)영화의전당
상영문의
051-780-6000(대표), 051-780-6080(영화관)

시네도슨트 영화해설

해설: 영화평론가 박인호

일정: 상영시간표 참고





Program Director's Comment

캐롤 리드는 <제3의 사나이>의 음악을 처음엔 오케스트라 연주로 채웠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완성된 직후 그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이 영화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음악을 중부 유럽의 민속 악기인 치터 연주로 바꿨습니다. <제3의 사나이>의 저 유명한 라스트 신, 낙엽이 떨어지는 길게 뻗은 길을 배경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와 저 멀리서 무심하게 걸어오는 여인의 엇갈림을 담은 쓰라리고도 아름다운 장면은 그 장면에 흐르는 명랑하면서도 우수 어린 치터의 음률 없이는 떠올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영화는 그해에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이후로 영화사의 걸작 반열에 올랐습니다만, 이 라스트 신은 그런 세속적 성공과 무관하게 20세기 관객의 뇌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영화적 기억, 바로 20세기 시네마 그 자체를 증언하는 몇 안 되는 시청각 이미지 중 하나로 20세기 인류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제3의 사나이>의 라스트 신에서 볼 수 있듯, 캐롤 리드는 무엇보다 디테일의 작가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가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가는 고양이의 움직임만으로도 화면 전체를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걸출한 장인이었습니다. 세팅, 의상, 조명 등 제작의 모든 면에 그는 완벽주의자의 기준으로 작업했습니다. 영국의 후배 감독 마이클 포웰은 캐롤 리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캐롤은 시계 제조공이 시계를 조립하듯 영화를 조립한다.” 특히 초기 영화들에서 캐롤 리드는 등장하는 거의 모든 세부가 제각각의 역할을 하면서 한 장면의 분위기와 정감을 만들어 내도록 만드는 데 뛰어난 솜씨를 선보입니다. <제3의 사나이>를 특징짓는, 정교하고도 역동적 카메라 워크와 리드미컬한 편집도 그의 영화가 지닌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자질입니다. 


캐롤 리드는 히치콕적인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장르에서 뛰어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장르만으로 그의 영화를 요약할 수는 없습니다. <별들이 내려온다>(1940)는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지닌 예리한 사회성 드라마이고,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올리버!>(1968)는 감동적인 뮤지컬입니다. 세상사의 아이러니에 대한 통찰,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정의에 대한 갈망, 그럼에도 극복되지 않는 불안과 동요 등은 그의 대부분의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입니다. 순수한 아이의 선의가 사태를 비극으로 몰고 가는 <몰락한 우상>는 이런 주제 의식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입니다.  


캐롤 리드는 영화 분야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던 20세기 중반 영국 영화의 자존심을 세운 감독이었습니다. 그의 데뷔작 <바다의 사나이 Midshipman Easy>(1935)가 공개되자, 당시 까탈스럽기로 유명했던 한 평론가는 이렇게 씁니다. “이 젊은 감독의 첫 영화는 어떤 노련한 영국 감독보다 더 뛰어난 영화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 이 평론가는 뛰어난 작가이기도 했으며, 나중에 캐롤 리드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가 된 그레이엄 그린입니다. 그의 평론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여기 마침내 유보 없이 상찬할 수 있는 영국 영화가 등장했다.” 영국 영화계에 끼친 공로에 힘입어 그는 결국 1950년대 초에 ‘경(Sir)’의 칭호를 부여받습니다. 


오늘날 캐롤 리드는 당대의 거장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언급되는 편입니다. 이유는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영화에는 스타일이 두드러지지 않고, 개인적 서명이라 부를 수 있는 형식적 요소가 잘 감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사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영화가 줄 수 있는 최상급의 감흥을 선사한 걸출한 장인들 역시 존재합니다. 캐롤 리드는 그런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20세기 인류에게 극장 가기가 설레는 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캐롤 리드 같은 감독 덕이었을 것입니다. 캐롤 리드라는 위대한 장인의 영화 세상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허 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