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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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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모리스 피알라 특별전

[시네마테크] 모리스 피알라 특별전

Retrospective on Maurice PIALAT

2020-01-28(화) ~ 2020-02-09(일)

상영작

벌거벗은 유년 시절 (1968) / 우리는 함께 늙지 않는다 (1971)

벌어진 입 (1974) / 졸업이 먼저 (1978) / 룰루 (1980)

우리의 사랑 (1983) / 경찰 (1985) / 사탄의 태양 아래 (1987)

반 고흐 (1991) / 르 가르슈 (1995) / 숲속의 집 (1971)

장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요금
[2월 1일부로 변경] 일반 7,000원 / 유료회원, 청소년(대학생 포함) 5,000원 / 우대(조조, 경로 등) 4,000원
주최
(재)영화의전당
후원
주한프랑스대사관, 주한프랑스문화원, Institut francais
상영문의
051-780-6000(대표), 051-780-6080(영화관)

특별강연


강연: 영화평론가 박인호


일정: 2.6.(목) 19:00 <벌어진 입> 상영 후








Program Director's Comment


새해 첫 기획전의 주인공은 프랑스 포스트 누벨바그의 거장 모리스 피알라입니다. 1925년에 태어난 피알라는 누벨바그 세대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누벨바그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그렇다고 주류 영화계에도 속하지 않은 채 고립적이고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느리지만 고집스럽게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화가와 TV 드라마 연출자를 거친 뒤 마흔이 넘어서야 데뷔한 그가 남긴 장편 영화는 10편에 불과하지만, 그 10편은 한 편의 범작도 없는, 프랑스 영화사의 위대한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기획전은 그의 장편 모두와 대표적 TV 시리즈 <숲속의 집>을 만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모리스 피알라의 영화가 우리를 충격하는 건 무엇보다 유례없이 강렬한 감정의 현행성입니다. 어떤 여과 장치도 거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적 격류와 진동에 관객인 우리가 거의 무방비 상태로 접촉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사건의 현행성을 다루는 데 가장 유능한 매체인 영화에서 피알라는 인간의 감정이야말로 영화가 다룰 만한 유일한 대상이라는 듯, 화면을 인물의 극단적인 감정으로 가득 채웁니다. 사건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듯 언제나 미완이거나 현재 진행형이며 때로는 정보의 턱없는 부족으로 무지의 상태에 남겨집니다. 일반적인 모던 시네마가 사건을 버리고 장소 혹은 시간을 택했다면, 피알라는 사건을 비운 자리에 인간이라는 미궁의 존재를 세웁니다. 




그렇다고 피알라가 격정과 감상을 존중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피알라의 인물들은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믿는 감정의 회로가 오작동하는, 이를 테면 감정적 괴물입니다. 인물들은 사랑과 유대의 능력을 이미 상실해 있으며, 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 자신도 정체를 알지 못하는 자기 파괴적 충동으로 조금씩 죽어 갑니다. 피알라의 영화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적 충격의 중핵에는 인물의 격정에 감염된 흥분이 아니라, 고장 난 감정 기계의 기괴한 신음이 전하는 냉엄한 현실감이 놓여 있습니다. 인물들이 미쳐 날뛰거나 내부에서부터 조용히 죽어 가는 과정을 카메라는 차갑게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그 패턴화되지 않고 걸러지지 않은 원초적 감정의 괴물이 우리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합니다. 피알라는 파탄의 감정을 다루면서 우리를 감염이 아니라 조우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리얼리즘의 전통이 아니라, 에밀 졸라의 자연주의의 자장 안에 있습니다.   




모리스 피알라가 미국 독립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카사베츠(1929~1989)와 비교되곤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큰 사건이 아닌 일상의 디테일에 집중하면서, 배우의 정련된 연기가 아니라 그의 육체성이 전경화되도록 만듭니다. 어떤 포섭도 정돈도 불가능한 육체성 그 자체가 이야기를 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1983)의 상드린 보네르 혹은 <르 가르슈>(1995)의 제라르 드파르디유는 카사베츠의 <영향 아래의 여자>(1974)의 지나 롤랜즈를 떠올리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둘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카사베츠의 영화가 인물의 몸짓과 표정과 말에 온전히 몰두하는 상대적으로 연극적인 영화라면, 피알라의 영화는 인물 중심성에도 불구하고 인물과 공간의 관계에도 예민한 촉각을 세우는 상대적으로 회화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어 가는 아내이자 어머니가 불길하고 거친 마지막 숨소리를 내뱉으며 누운 침대 옆에 가족에 충실하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이 무기력하게 서 있는 <벌어진 입>(1974)의 한 장면, 혹은 반 고흐가 죽어 있는 방안을 무심하게 비추는 <반 고흐>(1991)의 짧은 한 장면은 그 빼어난 구도만으로도 삶의 근원적 불모성을 무서우리만큼 정확하고도 사무치게 감지케 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병적 인간의 비정상성을 자극적인 비주얼과 과장된 수사학으로 치장하는 영화들로 넘쳐납니다. 고뇌와 절망을 휘장처럼 두른 반영웅의 횡행에는 전도된 영웅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일상에서 심연의 신음을 듣는 위대한 자연주의자 모리스 피알라의 영화에서 또 다른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만나는 기회를 맞으시길 빕니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허 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