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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사샤 기트리 특별전

[시네마테크] 사샤 기트리 특별전

[Cinematheque] Retrospective on Sacha Guitry

2019-03-01(금) ~ 2019-03-17(일)

상영작(14편)

새 유언장(1936) /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1936) / 꿈을 가집시다(1936)

아버지가 옳았어(1936) / 진주 왕관(1937) / 욕망(1937)

샹젤리제(1938) / 아홉 명의 총각(1939) / 두 비둘기(1949)

포이즌(1951) / 나폴레옹(1955) / 살인자와 도둑(1956)

파리에 대해 말하자면(1956) / 세 개가 한쌍입니다(1957)

장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요금
일반 6,000원 / 유료회원, 경로, 청소년 4,000원
주최
(재)영화의전당
상영문의
051-780-6000(대표), 051-780-6080(영화관)

시네도슨트 영화해설

해설: 박인호 (영화평론가)

일정: 상영시간표 참고




Program Director's Comment

프랑수아 트뤼포는 사샤 기트리가 죽기 1년 전에 만든 <살인자와 도둑>에 대해 이렇게 씁니다. “우리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옹호했던 모든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어떤 미학적 야심도 없으며, 최소한의 전문가적 자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광활한 바다에서 벌어지는 보트 장면은 명백히 모래사장에서 촬영되었고, 엘리베이터는 보트 높이보다 더 올라가지 않는다. ...휠체어에 의지한 노인이 급하게 대본을 쓰고, 그 대본을 쓴 감독과 조수와 프로듀서가 연출한(달리 말해 연출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살인자와 도둑>은 단 몇 주 만에 성급하게 짜깁기된 것처럼 보인다.”


트뤼포는 지금 비판의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기트리의 가장 열렬한 찬미자 가운데 하나였던 트뤼포는 지금 기트리의 결함을 경유해 그의 세계로 안내하려는 것입니다. <살인자와 도둑>과 관련된 뒷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집니다. 파리의 메이저 개봉관이던 비시극장 사장은 시사 후에 너무 엉성한 이 영화를 “프랑스에서 가장 관대한 나의 관객”에게도 보여 줄 수 없다고 판정을 내렸고 결국 지방에서만 개봉되었습니다. 하지만 개봉 첫날부터 지방의 모든 극장에서 흥행 기록을 깼고, 파리에서는 지방 상영이 끝날 무렵에서야 개봉되었습니다. 2주 상영 예정이었지만 몰려드는 관객 때문에 4주 상영으로 늘어났고, 이 영화는 그해 10편의 최고 흥행작 대열에 들게 됩니다. 


사샤 기트리는 당대의 천재 연극 연출가이자 배우였고,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으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감독이기도 했습니다. 기트리는 아마도 영화사의 어떤 계보에도 속하지 않고 그럴 의지도 전무하며, 심지어 얼핏 영화감독이라는 자의식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마추어리즘’으로 인해 누벨바그 평론가들을 제외한 영화 전문가들에게 경시되었지만, 바로 그 심각한 구석이라고는 전무한 아마추어리즘이 빚어내는 독창한 활기로 인해 날이 갈수록 더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희귀한 인물입니다. 


트뤼포는 <살인자와 도둑> 에피소드를 전하며 이렇게 덧붙입니다. “기트리의 대부분의 영화는 짜깁기이며, 대사, 러브 신, 정서적 연관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하지만 매 신의 끝에 강력한 진실이 우리를 덮쳐 의자에서 튀어나올 정도다. ...거기엔 우리가 심오한 영화에서 발견하는 활력과 상상력과 민첩함과 풍부한 창의성이 넘친다.” 

 

알랭 레네는 트뤼포보다 더 뜨거운 찬미자였습니다. 그는 자신과 크리스 마르케와 장-뤽 고다르가 모두 사샤 기트리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선언하며, 자신의 <히로시마 내 사랑>은 기트리의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영화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행운>(1935, 프린트 소실)이 <꿈을 가집시다>(1936)와 함께 “‘순수 영화’에 대한 어떤 강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진정한 영화의 표본”이라고 상찬합니다. 레네의 급진적 칭송은 적어도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재평가하게 만들었고,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그가 만신전의 감독으로 등재되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누벨바그 평론가들의 상찬에도 불구하고 사샤 기트리는 여전히 진지한 평론의 대상으로 다루기엔 난처한 인물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걸출한 비평가 리처드 라우드는 기트리의 영화가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의 진정한 독창성이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기트리는 많은 영화적 장치, 예컨대 리버스 모션, 스톱 모션, 트릭의 와이프 기법 등을 수시로 사용하지만, 영화의 흐름 속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것의 천재성이 과소평가된다는 것입니다. 기트리는 각본과 연출을 겸할 뿐 아니라 주연까지 맡는다는 점에서 문자 그대로 온전한 영화 작가라고 라우드는 덧붙입니다. 


이 견해들을 참조하면서도, 오늘의 우리는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재미와 가벼움에 가려진 심오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재미와 가벼움 자체와 연관된 건 아닌지 물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트리는 “심각한 척할 수는 있어도, 재치 있는 척할 수는 없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습니다. 트뤼포는 아마도 기트리의 재치를 무척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흥미로운 통찰을 옮겨 두고 싶습니다. “르누아르의 비밀은 연민에, 기트리의 비밀은 장난스러움(naughtiness)에 있다. 두 사람의 영화는 공히 창의성과 솔직함을 통해 가장 보편적인 주제인 남녀 관계, 두 번째로 보편적인 주제인 주인과 하인의 관계를 다룬다. 또한 두 사람은 그들의 모든 판타지를 정당화하는 단순성을 지닌다. 그리고 시적인 것에 일상적인 것을 더하는 리얼리즘의 감각을 공유하며 양자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결코 가려지지 않는 견고한 염세주의(그것이 없었다면 생에 대한 그들의 노골적 찬미가 의심스러워졌을)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트리에 관한 몇 가지 말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봄의 시네마테크에서 이 신랄하고도 엉뚱한 인간과 유쾌한 영화적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허 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