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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내 아버지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2023-01-26
똥파리

내 할아버지는 대동아전쟁에 끌려가 일본군의 밑에서 군 생활을 보낸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당신의 아버지가 약주를 드시고 오셨을 때마다 온가족이 새벽같이 무릎꾾고 앉아 똑같은 이야기, 욕설과 함께 아버지가 불러주신던 일본군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 괴로운 나날들은 아버지가 성인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아버지는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당신이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절대로 할아버지와 같은 인간이 되지 않겠다며 가슴에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4명의 자식들 중 그를 가장 닮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의 아버지였다. 다혈질 성격과 입에 붙은 욕설, 술을 매우 좋아하며 무엇보다 가정으로 돌아오는 술버릇은 거짓말같이 대물림을 반복했다. 나의 가족들도 똑같이 무릎 꿇고 앉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으며 욕설과 함께 일본노래 대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약주에 취해 늘 말씀하셨다. 당신이 이러는 것은 할아버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나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우리에겐 지옥과도 같았다. 아버지가 겪어온 가정은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었고 나를 비롯한 가족들에겐 모두 처음 겪는 일이였다. 아버지의 괴롭힘은 술이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졌고 급기야는 물건을 집어던지고 온갖 입에도 담지 못할 쌍욕을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분노의 원인은 도저히 우리로선 납득이 안가는 자그마한 이유였고 언제나 그 분풀이의 대상은 나의 어머니셨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내 어머니를 금방이라도 패죽일 듯이 노려보며 쌍욕을 퍼붓고 얼굴에 술을 뿌리고 온갖 집구석을 파괴하며 위협하는 형태는 어린 나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 분노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공포스러운 대상에게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하지마라고 소리치는 것뿐이었다.

 

STILLCUT


"아 이 나라 씨발 애비들은 아주 좆같애. 이게 븅신들 같은데 지 가족들한테는 아주 김일성같이 굴라고 그래 이 씨발넘들이."

 

상훈이 외치는 이 한마디 대사는 내 가슴 한 켠에 묵혀있던 아픔을 공감하고 안아주었다. 나처럼 이 대사가 와닿는 사람에겐 명대사로 느껴지겠지만, 이게 도대체 왜 명대사인지 모르겠고 오히려 기분이 나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마 따듯한 가정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구김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딜가나 타인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며 자연스럽게 사랑을 하고 스스로의 매력을 드러낼 줄 안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어린 시절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다. 가장 정겹고 편안해야 할 공간이, 가장 두렵고 숨 막히던 공간이었던 세상에 살았던 사람이다.

모든 폭력의 시초는 어디인가. 단언컨대 그것은 가정이다. 극중 등장인물인 상훈과 연희는 모두 끔찍한 가정 속에서 자란 이들이다. 상훈은 어린 시절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와 여동생을 잃었고, 연희 역시 월남전으로 정신이 나가버린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는 가정 속에서 자랐으며 용역깡패에게 어머니를 잃고 막나가는 동생, 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두 사람의 차이점이 있다면, 상훈은 아버지로 인해 미친 인간이 되었지만 연희는 아버지와 반대로 바른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상훈보다는 연희에 가까운 인간으로 자랐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로 인해 어두워진 성격이 되었다. 그것은 내 남성성에도 제법 큰 영향을 끼쳤고 나는 성인이 되고서도 기집애같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인 성격이 되었다. 아버지의 지나친 강함과 폭력, 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뿌리박혀 오히려 남성성과는 정반대의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 역시 아버지와 같은 다짐을 한다. 내 가정에서 절대로 아버지와 같은 인간이 되지 않겠다고. 극중 상훈은 이런 말을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손목이라도 다 끊어가지고 그 새끼한테 이 피 다 쏟아 멕여버리고 싶어. 알어?!” 하지만 아무리 증오스럽고 밉더라도 그게 내 부모라면 마음이 쓰이는 게 인간이다. 핏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더럽게 아프다. 그토록 아버지를 증오하고 때리던 상훈도 아버지가 쓰러지자 그를 등에 들쳐 업고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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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결국 폭력은 폭력으로 귀결된다고 말하고 있다. 폭력은 누군가가 끊어내지 않는다며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계속해서 상처를 주는 연쇄적인 악이다. 특히나 가정폭력은 가족이 가족에게 휘두르는 폭력이기에 단순히 분노와 두려움을 넘어 인간적인 안타까움까지 동반된다. 내가 사랑하고 또 내게 꼭 필요한 사람이 저지르는 폭력은 선뜻 물리적 완력을 행사하거나 신고를 하는데 주저함이 생긴다.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반인륜과 패륜은 아닐까 하는 망설임, 잘못된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내 손으로 가족을 법의 심판대에 세우는 일이 옳은 일인 가에 대한 망설임. 그렇기에 더욱 끔찍한 것이 가정폭력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입에 술을 안 대고 사는 사람이지만 가끔씩 두렵다. 혹시라도 내 안에 악마 같은 본능이 깨어나 내 가족을 힘들게 할까봐 두렵다. 아무리 좋게 말한다고 해도 폭력은 결국 폭력으로 귀결된다. 대물림의 연쇄적 폭력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 남이 아닌 스스로 그 폭력의 대물림을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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