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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브로커>, 모성은 어디에서 오는가2022-06-28
브로커 스틸

 

 

<브로커>, 모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심미성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훔친다는 행위로부터 촉발된 비혈연의 그룹이 유사 가족의 의미망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브로커><어느 가족>의 한국식 번안처럼 보인다. 여러모로 <브로커>는 그의 어떤 영화보다도 <어느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브로커>에 따라온 동어 반복혹은 자기 복제의 비판 또한 안일하기는 마찬가지다. 고레에다의 주제는 언제나 이 근방을 맴돌았다. 견고해질 대로 견고해진 가족의 폐쇄성을 흔들어 균열을 포착하고 느슨한 봉합에 다가서던 방식은 그동안 고레에다 영화를 이루는 중심축이었다. 모든 작가가 매번 다른 주제를 말할 의무도 없거니와, <브로커>의 문제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브로커 스틸 1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몰래 훔쳐 파는 인신매매단이 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상현(송강호)과 교회 직원 동수(강동원)는 가격을 흥정하고 아이를 새로운 부모에게 연결한다. 버림받은 아이들에게 부모를 찾아주겠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불법 행위에 이르게 된 사정은 각자 다르다. 상현에게는 해결해야 할 빚이 있었고, 동수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의탁한 생모 소영(이지은)이 그런 둘의 여정에 합류한다. 어린 비혼모 소영은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살해한 도망자 신세이기에 아이를 키워낼 여력이 없다. 하지만 그 다급한 사정보다도 관객의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소영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다. 아이 돌보기를 상현에게 미루는 소영에게서 어머니다운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브로커 스틸 2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과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인터뷰에서 여성은 아이를 낳자마자 어머니가 되는데, 남자는 어떻게 부성에 눈을 뜨는지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모성 역시 곧바로 생성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브로커>의 착상은 거기에서 출발했다. 그는 우선 그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모성이라는 관념에 지워진 강압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모성을 대리하고 있지 않은 캐릭터 소영은 <브로커>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소영이 정말로 고레에다 감독의 결심을 설득해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무엇보다 <브로커>는 고레에다의 각본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적나라한 대사들로 인해 지나치게 평이해진 인물들과 동행한다. 친절함을 위해 단순해지고만, 성마르고 직설적인 메시지가 반복되면서 도리어 인물의 내적 갈등에 이입하기는 힘들어졌다. 서로 상충하는 가치가 부딪히는 동안 관람자 역시 격렬한 내적 파동 속에 놓이도록 고안되었던 고레에다 영화의 미덕이 <브로커>에서는 그다지 감지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모성을 학습하지 않은 캐릭터라고 하기엔 소영에게 부여된 모성의 그림자가 짙은 탓이다.

 

소영은 아이를 팔자고 온 마당에 아이를 거래하는 현장에서는 황급히 거칠어진다. 게다가 낳기 전에 죽이는 게,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죄가 가벼워?”라며 생명의 소중함을 항변하기도 한다. 이 대목이 특정한 의견을 주입하는 시도로까지 보이지는 않지만, 이후 매우 힘주어 찍은 태어나줘서 고마워장면에 이르면 의문은 깊어진다. 소영은 과연 강요된 모성의 굴레를 벗기 위해 직조된 인물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브로커>는 종국에 모성을 획득해야만 마무리될 수 있는 여성상을 성긴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브로커 스틸 3

 

인신매매단과 살해범을 동시에 잡겠다는 일념의 형사 수진(배두나)의 에피소드도 비슷하다. 수진은 버릴 거면 왜 낳아?”라는 대사를 던지며,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리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부모의 책임은 무겁고도 지켜져야 하는 무엇이다. 따라서 수진은 가족 만들기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밀어내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수진의 생각은 인신매매단을 뒤쫓게 되면서 점차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뜻밖에도, 수진은 소영 이상으로 급작스러운 결말을 내는 인물이기도 하다. 마침내 자신을 따라다니는 남자와 우성(소영의 아이)을 길러내며 삼위일체의 가정을 이룬 듯한 결말에 당도한 것이다. 이로써 소영은 어머니가 되고, 수진은 가족을 이루게 된다. 어쩌면 모성의 형성을 지켜보겠다는 전제가 패착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가족의 의미에 균열을 내고 질문을 던지던 <어느 가족>의 고레에다가, 가족의 의미를 닫아버린 <브로커>의 고레에다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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