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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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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네마 XVI 상영작 <살인광 시대> 포스터 이미지

살인광 시대(월드시네마XVI)

GV5 Monsieur Verdoux
프로그램명
[시네마테크] 세계영화사의 위대한 유산, 월드시네마 XVI
상영일자
2019-03-19(화) ~ 2019-04-24(수)
상영관
시네마테크
작품정보
124min | D-Cinema | b&w | USA | 1947 |
관람료
일반 6,000원 / 유료회원, 경로, 청소년 4,000원
감독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배우
찰리 채플린, 매디 코렐, 앨리슨 로던
찰리 채플린 감독 사진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무성 코미디영화를 하나의 가치있는 예술로 승화시켰으며, 단지 깜빡이는 활동사진이 아니라 영화에 정서적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최초의 예술가.찰스 스펜서 채플린은 1889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한 아버지, 정신병 증세가 있는 어머니 밑에서 형과 함께 먹을 것을 구하러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도 그가 17살 되던 해, 뮤직홀의 제왕인 프레드 카르노 사단에 들어가면서 막을 내린다. 1912년 미국 순회공연에서 그는 코미디계의 대부인 맥 세네트의 눈에 띄어 미국으로 활동의 근거지를 옮긴다.1914년 그는 처음으로 중절모에 짤막한 양복바지, 지팡이를 휘두르는 그 특유의 ‘방랑자 캐릭터’를 선보이게 된다. 그의 이러한 캐릭터는 관객들로부터 깊은 연민과 동정을 한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일종의 소외자로 주변부적인 삶이 갖는 비애와 유머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를 얻은 셈이었다. 이후 채플린은 <어깨 총 Shoulder Arms>(1918)과 <키드 The Kid>(1921) 등 히트작을 속속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는 스튜디오 시스템에 얽매이지 않고 독점적으로 UA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다. 가난한 삼류배우의 아들로 태어났던 채플린은 이제 선셋대로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가지게 된 것이다.1930년대와 1940년대는 채플린의 가장 빛나는 전성기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걸작 <시티 라이트 City Light>, 채플린의 재능을 집대성한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등을 통해 불황과 경제공황에 멍이 든 미국의 자화상을 풍자해 냈다. 그러나 그는 ‘공산주의자’로 몰리고, 십대소녀들과의 결혼으로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는다.1952년 <라임 라이트 Lime Light>의 런던 시사회를 위해 가족과 함께 런던으로 떠났다. 미국 법무성은 채플린의 재입국을 허가하지 않았고, 사실상 그는 미국에서 추방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채플린은 스위스에 자리잡았고 결국 1972년 83살의 나이로 20년 만에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하기 위해 다시 미국땅을 밟았다.찰리 채플린은 스위스의 레만 호수가 바라다보이는 집에서 1977년 12월25일, 그와 나흘 간격으로 태어났던 독재자보다 35년이나 더 산 후, 예수가 태어난 날 파란만장한 일생을 접었다. (씨네21 영화감독사전 일부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