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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프로그램

지난프로그램 리스트 입니다.

더 서치 메인 포스터

더 서치(테크)

THE SEARCH
프로그램명
1월 예술영화 프로그램
상영일자
2019-01-25(금) ~ 2019-02-15(금)
상영관
시네마테크
작품정보
135min | D-Cinema | color | France | 2014 |
관람료
일반 7,000원 / 청소년 6,000원
감독
미셀 라자나비시우스(Michel Hazanavicius)
배우
베레니시 베조, 아네트 베닝, 압둘 칼림 마마츠예프
배급사
(주)영화사오원
  • 67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

    전쟁으로 눈앞에서 부모님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아홉 살 소년, ‘하지(압둘-칼림 마마츠예프).’ 18개월이 된 동생을 감당할 수 없어 이웃집 문 앞에 버리고 마을에서 달아나 피난민 무리에 합류한다. 난민 대피소에서 ‘헬렌(아네트 베닝)’을 만나지만 죄책감과 상처 때문에 말을 하지 않던 하지는 동생을 찾기 위해 그곳을 도망쳐 나오고, 우연히 전쟁 피해자의 증언을 기록하는 EU 인권활동가 ‘캬홀(베레니스 베조)’을 만난다. 하지만 굳게 마음을 닫은 하지는 그 어떤 얘기도 꺼내지 않는데… 하지의 커다란 용기와 조그마한 목소리에 담긴 그날의 진실은 과연 기억될 수 있을까?


    [ DIRECTOR Interview -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

      

     Q. <더 서치>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젝트에 뛰어든 이유는? 

     A.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프로젝트인데, 항상 너무 어려워 보였다. 아카데미를 받지 못했다면 아마 예산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서치>는 시장의 변두리에 있는 영화이자 달성 가능한 영역의 가장자리에 있는 영화다. 감독으로서 바로 그런 자리에 서 있고 싶었다. 

      

     Q. 제2차 체첸 전쟁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2004년에 라파엘 글럭스만, 다비드 하잔, 피에르 메제레트와 다큐멘터리 <르완다: 대학살의 역사> 각본을 공동 집필하고 제작했다. 라파엘은 체첸에서 일어난 일들을 대중에게 알리려 했던 정말 몇 안되는 프랑스 지식인 앙드레 글럭스만의 아들이다. 이를 계기로 체첸의 상황을 인지하게 됐다. 아시케나지 유대인이자 제2차 세계 대전을 겪은 조상님들의 후손인 나에게 <더 서치>는 당시의 이야기를 에둘러 표현할 길을 열어줬다. 학살 생존자인 르완다 친구가 ‘국경 없는 의사회’에 소속된 친구의 이메일을 보여줬다. 그 메일의 마지막 문장이 큰 충격을 주었다. “다큐멘터리보다 이야기가 있는 진짜 영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람들도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해하고 탄식할 겁니다. ” 그의 말을 마음 깊이 간직하게 됐다. 체첸 공화국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체첸인은 다 테러리스트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반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말고는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한창 영화를 구상하고 있을 때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 1948년에 만든 영화 <수색(The Search)>을 니콜라 사다가 보여줬다. <수색>은 수용소에서 탈출한 어린 소년이 폐허가 된 베를린에서 한 미군을 만나게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소년의 엄마는 아들을 찾아서 온 유럽을 뒤진다. 이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나니, 드라마로 풀어나가는 게 가장 좋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Q. 원작과 눈에 띄는 차이점도 보인다. 

     A. 한 가지 관점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체첸인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모든 러시아인을 체첸인 살인마처럼 묘사할 순 없었다. 하지만 체제가 사람들을 억눌러 살인마로 만들어 가는 과정은 꼭 보여주고 싶었다. 

      

     Q. 조지아에서 영화를 촬영한 이유는? 

     A. 우크라이나 혁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오렌지>(2004)를 공동 제작했는데 라파엘 글럭스만 감독이 지금은 조지아에 정착했다. 그를 만나러 갔다가 조지아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체첸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었다. 온 세상이 폐허가 된 것 같은 그곳의 분위기나 색감이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만들어진 <제3의 사나이>(1949), <외교 문제>(1948), <수색>(1948) 같은 영화를 떠오르게 했다. 이런 환경은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중요 요소가 될 것 같았다. 

      

     Q. 연출하며 어려웠던 점은? 

     A. 전쟁과 죽음, 폭력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점이 감독인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촬영 내내 날 밀어붙이려고 한 것 같다. 내가 알기로 체첸 전쟁을 이렇게 큰 규모로 다룬 영화는 <더 서치>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막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건 한 민족의 역사 한 토막을 세상에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었다. 내가 그 민족 사람이 아니라서 더 큰 책무를 느꼈다.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역사를 정확히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압박감이 컸다. 

      

     Q. 구체적으로 더 설명해줄 수 있나? 

     A. 가장 큰 어려움은 영화의 허구적인 면과 날것 그대로의 ‘리얼리즘’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현지에서 촬영하고, 아마추어 배우를 쓰고, 모든 인물이 모국어를 사용하도록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기술적인 면에선 거칠면서도 디테일한 이미지와 얼굴의 윤곽선, 촬영 장소의 밀도와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진짜 영화다운 영상을 연출하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체첸 전쟁에 관한 이미지도 녹여내고 싶었다. CG를 쓰기보단 현지에서 촬영하기로 처음부터 확정했다. 한편 세트 인테리어를 꾸밀 땐 ‘나 영화예요, 예쁘죠’라고 말하는 것 같은 소품이나 지나친 조명, 너무 상투적인 세트, 과하게 복잡한 헤어스타일, 짙은 화장은 피하라고 각 부서 책임자들에게 주문했다.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얻으려고 테스트를 정말 많이 했다. 귀욤 시프먼과 난 테스트 과정에서 거친 질감을 내려고 필름을 현상할 때 ‘블리치 바이패스’라는 기법(귀욤이 1996년 작품 <버니>에서 사용했던)을 썼다. 아주 정밀한 조명 작업이 필요한 기법이다. ‘조명을 안 쓴 것 같은’ 효과를 내려면 역설적으로 힘이 배로 든다. 귀욤과 함께하는 네 번째 작업이라 작업하기 쉬웠고, 결국 귀욤은 언제나처럼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화면의 재단과 구도, 카메라 움직임은 나만의 원칙을 고수했다. 너무 뻔한 움직임은 최대한 줄이고, 핸드헬드로 거의 모든 장면을 촬영했다. A라는 인물을 촬영하던 촬영 기사가 몸을 빙글 돌려 B라는 인물을 촬영하는 것 같은느낌을 주려고 카메라 한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한 장면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손이 더 많이 가는 한이있더라도 아주 단순해 보이는 세트만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어서 공습 장면은 시퀀스 샷인데, 클래식한 전쟁 장면보다 스펙터클한 맛은 떨어지지만, 인물을 더 가까이에서 담아낼 수 있었다. 어쨌든 그게 내가 내고 싶었던 효과였다.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연출하기는 쉽지 않다. 

      

     Q. <더 서치>는 러시아 군인들이 한 체첸 가족을 처형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A. 맞다. 난 영화에서 잔혹한 죽음을 ‘진지하게’ 묘사하는 것을 원래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전쟁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언젠가는 그 공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건드려봐야 한다. 한 번으로 충분한데, 그 한 번이 정말 중요하다. 핸드헬드로 찍어 영화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거칠고 선명하지 않은 영상. 이런 시각적 연출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나였고, 총 5분에 걸친 시퀀스 샷이었다. 암흑 속에서 누군가 “젠장! 카메라 왜 작동을 안해?”라고 외치며 시작한다는 점이 맘에 든다. 난 이런 부정적 상황으로 영화의 막을 여는 것을 좋아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여러 번에 걸쳐 상기시키는 것도 좋아한다. 

      

     Q. <더 서치>는 장시간에 걸쳐 여러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갔는가? 

     A. 수학처럼 계산하되 지나치게 계산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각각의 이야기에 뚜렷한 일관성이 있어야 했다. 관객들에겐 논리가 필요하므로 이야기가 논리적이어야 하며,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어우러졌을 때 감정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더 서치>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는 주제나 전개 면에서 상응하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서 어린 소년의 삶의 궤적은 군인 청년의 궤적과 정반대다. 한 명은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사회로 돌아오고, 다른 한 명은 평범하게 사회 활동을 하다가 죽음으로 내몰린다. 시각적으로 봤을 때도 하지는 돌무더기와 먼지로 가득한 폐허가 된 세상에서 더 깨끗한 세상으로 옮겨가고, 콜리아는 정반대로 혼돈과 파괴뿐인 세상으로 옮겨간다. 이처럼 여러 인물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이야기에선 중간에 큰 공백을 둬도 된다. 관객은 예전에 나왔던 인물을 다시 봤을 때 공백 동안 인물이 변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여러 이야기의 관계 설정을 잘하는 것도 중요했다. 예를 들자면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 갑자기 두 번째 이야기로 건너뛰면 안 된다. 청년 군인이 나오는 폭력적 장면에서 캬홀과 하지가 나오는 장면으로 전환하기란 쉽지 않았다. 누나 라리사의 사실적인 이야기가 두 이야기 사이에서 적절한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Q. 복잡한 서사 구조에 증인들의 증언 장면까지 포함되었다. 

     A. 각본 작업을 할 때 <더 서치>의 핵심 주제는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증언’도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됐다. 지금 말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지가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무엇이 위태로워질까?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말하는 사람에겐 어느 정도의 힘이 생긴다. <더 서치>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이런 힘을 지닌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여러 사람의 증언을 모아 각색해서 배우들에게 재연하도록 했다. 그중 영화에 끝까지 남은 세 개의 증언이 이야기 전체에 신뢰성을 불어넣었다. 캬홀도 그런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처음 소개된다. 바로 캬홀이 3분에 걸쳐 어떤이의 증언을 듣는 장면이다. 캬홀이라는 인물의 핵심적 특징, 즉 캬홀은 사건 자체에 가담하는 참가자가 아니라기록자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확실히 하려고 그렇게 했다. 

      

     Q. 캬홀이 <수색>에서는 미군 병사(몽고메리 클리프트)와 같은 역할이다. 국제 단체에서 근무하는 캬홀로 변경된 이유는 무엇인가? 

     A. 고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정치 활동에 전념하는 35세 여성이 아이를 입양하면 생활 방식이 180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캐릭터를 남자에서 여자로 바꾸면 더 강한 울림을 줄 거라고 판단했다. 또 다른 이유는 체첸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더 용감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다양한 대립 구조를 만들고 싶기도 했다. 러시아인/체첸인, 민간인/군인, 성인/아이, 그리고 남성/여성의 대립 구조 말이다. 또 이런 종류의 영화에선 종종 서사의 불균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런 불균형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서구, 즉 미국의 이야기가 세계 각지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다는 것이다. 난 그게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캬홀의 이야기에 다른 이야기보다 힘을 실어주지 않으려고 했다. 

      

     Q. 캬홀과 하지의 관계는 미묘하다. 

     A. 캬홀과 하지의 관계를 통해 탐구하고 싶었던 것은 서양인들이 맡은 역할이다.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고, 무엇에 감정을 이입해야 하는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다. 하지는 캬홀과 같은 언어를 쓰지도 않고, 캬홀을 알지도 못한다. 캬홀은 감정적으로 누군가에게 헌신하지 않는다. 아이에게나 연인에게나 마찬가지다. 오직 운동가로서 정치 활동을 하는 데에만 전념한다. 캬홀은 그런 활동이 피상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사람에게 헌신하기 시작하는데, 이 헌신은 이전과 다르게 지적이고 감정적이다. 

      

     Q. 콜리아가 옷을 벗으라고 명령한 전우를 때려 놉히고 상급자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장면엔 중요한 의미가 있다. 

     A. 사람들은 왜 이미 안 좋은 상황에서 최악으로 나아가게 되는 걸까? 남은 선택지가 다 나쁘면 생존 본능이 발동된다. 콜리아는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 믿으면서 최악을 선택한다. 수용소, 유배지, 군부대 같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기본 원칙은 다 똑같다. 사회적 가치가 있고 문명화된 모든 것을 때려 부수는 것이다. 망설임은 버리고 모든 것을 지금까지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곧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그처럼 긍정에서 부정으로 추락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렇지만 실제 병사들이 겪은 수치와 인간성 파괴는 영화에 다 담아내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당시 증언을 들어 보면 듣고 있기가 힘들 정도다. ‘견디기 힘든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영화적으로 아주 좋은 질문이다. 견디기 힘든 것처럼 보여야 하는 장면을 관객들이 견뎌내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Q. 아네트 베닝은 난민이 된 아이들을 보호하는 보육원 원장 헬렌을 연기했다. 

     A. 아네트 베닝은 체첸과 조지아에 관한 조사를 엄청나게 했다. 촬영지에도 2주넘게 머물렀다. 아네트는 미국 좌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단순한 A급 여배우가 아니라 스타이기 때문에 헬렌이라는 인물이 맡은 역할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헬렌에게 불어넣을 수 있었다.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아네트와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다. 

      

     Q. 영화의 결말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A. 선과 악이 무차별로 대립하는 이런 영화에선 모두 나름의 이유로 저마다의 여정을 보내게 된다는 사실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선악 이분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힌다. 콜리아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를 설교하듯이 만들지 않으면서도 영화에 복잡한 맛을 더한다. 우리는 한 괴물의 탄생을 지켜보는 동시에 지금껏 한 인간의 여정을 뒤쫓아 왔음을 이해하게 된다. 여러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다양한 이해관계가 뒤얽혀 있다. 결말은 흑백으로 가를 수 없이 아이러니하다. 그렇지만 일말의 희망은 느껴진다. <더 서치>가 전하는 바는 살인마가 되는 길과 생존자가 되는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삶은 언제나 생존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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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셀 라자나비시우스 감독사진

    미셀 라자나비시우스(Michel Hazanavic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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