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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샹탈 아커만 특별전

[시네마테크] 샹탈 아커만 특별전

Chantal Akerman Retrospective

2018-08-21(화) ~ 2018-09-09(일)


장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요금
일반 6,000원 / 유료회원, 경로, 청소년 4,000원
주최
(재)영화의전당
후원
주한프랑스문화원
상영문의
051-780-6000(대표), 051-780-6080(영화관)

특별강연

강연: 김이석 (동의대학교 영화학과 교수)

일정: 9/1(토) 15:00 <갇힌 여인> 상영 후



시네도슨트 영화해설

해설: 박인호 (영화평론가)

일정: 상영시간표 참고



Program Director's Comment

지난 2015년 10월 5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샹탈 아커만의 회고전이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에서 열립니다. 브뤼셀의 영화학교에 재학 중이던 10대에 만든 단편 <내 마을을 날려 버려>(1968)로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은 아커만은 24살에 만든 충격적인 장편 데뷔작 <나, 너, 그, 그녀>, 현대의 고전으로 추앙되는 <잔느 딜망> 등의 초기작들을 거쳐 가슴 저린 유작 다큐멘터리 <노 홈 무비>에 이르기까지 장편 극영화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비디오 아트, 설치 예술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 온 위대한 시네아스트이자 걸출한 영상 예술가입니다.


20세기 후반 아방가르드영화의 여제라 불릴 만한 아커만은 그러나 지적이고 우아한 현대 예술가 이미지에는 어울리지 않는 유목적이고 탈경계적인 삶을 살아온 특별한 인물입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어머니(그녀는 <노 홈 무비>에 등장합니다)를 둔 아커만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직접 간이 주식을 만들어 팔았고, 식당과 매점 종업원, 은행 직원, 조각 모델을 전전하며 어렵사리 제작비를 모았습니다. 뉴욕 체류 시절엔 포르노극장 매표원으로 3주간 일하다가 훔쳐 나온 돈으로 다큐멘터리 <호텔 몬터레이>와 단편 <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그는 쉼 없이 세상을 떠돌며 개인적이고 수공업적인 작품 활동을 계속했고, <동쪽> <남쪽> <국경 저편에> 등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갖지 못한 여성, 이주민을 비롯한 소수자의 삶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 왔습니다.


장 뤽 고다르를 비롯한 유럽 모더니즘과 앤디 워홀을 비롯한 미국 아방가르드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샹탈 아커만의 영화는 쉽게 요약하기 힘든 복합적인 세계를 보여 줍니다. 아커만의 주요 작품에는 대개 몸의 문제가 등장합니다. 몸은 어떤 형식이나 규정적 언어로도 환원될 수 없는 표정과 욕망의 저장소입니다. 초기 걸작 <나, 너, 그, 그녀>와 <잔느 딜망> 그리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갇힌 여인>에는 여인의 감금된 몸이라는 모티브가 관류합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플롯 아래, 아커만의 카메라는 작은 동작을 현미경처럼 관찰하며, 미세한 불안과 깊은 무기력, 그리고 억제되었다가 폭발 직전에 이르는 몸의 움직임을 거의 실시간으로 기록합니다. 마지막 순간 직전까지 사건다운 사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들이 보는 이를 사로잡는 이유는 이 몸의 육중한 현재성 때문입니다. 고정된 카메라, 롱 테이크, 제한된 대사, 한정된 공간을 특징으로 하는 아커만의 영화가 여느 아방가르드 영화의 형식주의로 흐르지 않고 모종의 정념과 강렬한 실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몸의 리얼리즘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아커만의 영화는 언어의 권능 밖에 있는 몸의 표정을 감각하기를 청하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커만의 영화는 또한 장소의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주요 영화는 대개 한정된 공간이 러닝타임의 많은 시간에 등장하지만, 아커만은 이를 미학적 콘셉트 전달을 위한 단순한 무대 장치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풍경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말할 것도 없고 극영화의 밀폐된 공간도 단조롭고 반복적이지만 현재적 장소로서의 물질성을 담고 있습니다. <잔느 딜망>은 3시간 21분의 러닝타임 중 거의 3시간이 잔느의 집 내부에서 촬영되었지만, 거실에는 끊임없이 방 내부를 감시하는 듯한 외부의 모호하고도 불길한 푸른 불빛이 반사됩니다. 이 푸른 불빛은 거의 추상화된 현대적 공간처럼 보이는 폐쇄 공간과 외부 세계와의 물리적 연계의 리얼리티를 은밀하지만 강인하게 보존합니다. 효과 음악을 배제하는 대신 쉽게 식별되지 않는 현장의 작은 소음들로 이뤄진 사운드도 이 공간의 현재성을 강화합니다.


무엇보다 아커만의 영화는 진정한 유대를 향한 고된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커만은 누구보다 실험적이었고 도발적이었으며, 그의 주인공들은 때로 소멸 혹은 파멸을 택했지만, 그 이면에서 이 세계의 기성 질서가 만든 감옥 안에서는 불가능한 사랑, 그러나 깜빡이면서 꺼지지 않는 진정한 대화의 아득한 지평은 포기된 적이 없었으며, 그 불가능한 유대를 향한 열망이 아커만의 영화를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감상적이라고 말했던 아커만의 마지막 선택이 자살이라는 사실이 그의 영화 앞에 선 이들을 침묵하게 만듭니다. 실험적이지만 정서적인 영화, 전복적이지만 인간적인 아커만의 영화들과의 만남이 혹독했던 여름의 끝에 주어진 선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영화의전당 프로그램디렉터   허 문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