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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메모리즈 <카르텔 랜드> - 카르텔이란 외피를 뚫고 나오는 질문을 쫓다.2017-03-15
카르텔 랜드 스틸컷_

 



매튜 헤인먼 감독의 <카르텔 랜드> 리뷰


카르텔이란 외피를 뚫고 나오는 질문을 쫓다.

 

장지욱 부산영화평론가협회


Review Lost Memories 로스트 메모리즈... 최신걸작 소환전

 

매튜 하이네만의 <카르텔 랜드>의 보고 난 뒤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멕시코 카르텔에 맞선 자경단 이야기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겹겹이 벽을 깨더니 다단한 단상들로 이어진다. 먼 나라에서 자행되고 있는 폭력의 현장은 영화 속 자경단의 표현대로 현대판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이다. 관객은 영화 같은 현실을 영화로지켜보면서 간접적 경험으로서 폭력의 이미지와 폭력의 참상이 진행 중인 동시대의 공간이 혼재된 순간을 마주한다.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과 영화적 경험으로 축적된 관객으로서의 수용, 거기다 폭력이란 속성을 우리 현실에 비추어 들여다보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멕시코 카르텔을 다룬 다큐멘터리라는 외피 안에 많은 물음표가 숨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개연 없이 떠가는 생각의 파편, 그 발로로서의 역할은 <카르텔 랜드>가 지닌 특징이자 특이한 지점이다.

 

<카르텔 랜드>는 카르텔이라는 외부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들고 선 두 자경단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영화에서는 멕시코 불법 마약 조직의 활동을 막고자 하는 미국 내 아리조나 보더 레콘이라는 민간 국경 수비대와 멕시코 미초아칸에서 미렐레스에 의해 조직된 또 다른 자경단, 오토디펜사스가 나온다. 주민의 안전을 보호하고자 나선 두 자경단의 양샹은 사뭇 다르다. ‘아리조나 보더 레콘자경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으로 인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반면 오토디펜사스는 미렐레스에 대한 멕시코 대중의 지지가 늘어나면서 활동 반경을 넓혀간다. ‘자경활동이라는 공통의 출발선에서 시작한 두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결국 미렐레스 박사의 오토디펜사스 쪽으로 옮겨가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지받는 민중 영웅으로서의 미렐레스를 만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부터 매튜 하이네만은 진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영화는 폭력의 연쇄 고리를 파고든다. 폭력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비례한다.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갔던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폭력은 인류가 행사한 가장 오래된 목적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후 국가의 역사로 접어들면서 폭력은 공적인 힘에 의해 통제되어 왔다. 멀리 돌아가지 않고 요약하자면 폭력의 통제와 관리 주체는 국가가 담당한다. 다시 <카르텔 랜드>로 돌아가 보자. 표면적으로 영화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축은 두 자경단이지만 영화 속 폭력의 주체는 다시 네 집단으로 나뉜다. 카르텔은 폭력의 원흉이고 아리조나 보더 레콘과 오토디펜사스는 원흉을 제압하려는 또 다른 폭력의 주체이다. 마지막 남은 폭력의 주체는 실제 폭력을 관리해야 할 합법적인 주체로서 국가 또는 정부이다. 앞선 셋은 엄밀하게는 불법 폭력 조직이다. 하지만 이들의 출현과 성장의 기저에는 오용되는 폭력을 수수방관하거나 그들과 결탁한 국가의 무능이 깔려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폭력에 연루된 다섯 번째 대상을,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어느 소녀의 절규를 떠올린다. 오토디펜사스의 불심 검문에 의해 한 남성이 납치되자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구하고자 절규하는 소녀의 모습이다. 아버지의 위험을 직감하고 비장하게 나서는 소녀, 그런데 그녀가 내지르는 악다구니는 상대를 향한 저항을 넘어 스스로 죽어버리겠다는 자학적인 말들이다. 아버지를 지키려는 비장함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이 장면은 묘한 공기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일종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카르텔을 소재로 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나코 쿨투라>(2013)의 한 장면 때문이다. <나코 쿨투라>의 초반부, 카르텔에 의해 발생한 멕시코 마을의 살인 현장에서 세 소년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소년들은 사건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자신의 친척마저 유사하게 살해당했었다는 대화가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년들의 말투는, 마치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만큼이나 담담하다. <카르텔 랜드>에서의 소녀의 절규는 이와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두 장면이 중첩되는 이유는 살상과 폭력이 자행되는 세상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뒤틀리고 왜곡되어버린 아이들의 감성을 목격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카르텔 랜드>에서 소녀의 절규는 극영화에서 흔히 마주하는 폭력의 잔상보다 강한 충격과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폭력의 행위와 결과의 틈을 비집고 소녀로부터 포착한 폭력의 징후는 이 지점에서 폭력을 소비해 온 영화의 낭만적 시각을 견제하는 예리한 시선처럼 느껴진다. 영화사의 한 축은 소재 면에서 폭력의 낭만을 구축해왔다. 특히 할리우드는 서부 카우보이로 대변되는 자경단에 대한 환상을 창조했다. 서부극 신화는 개척시대를 지나온 미국의 역사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재편 의지, 영화라는 영상매체의 파급력이 결합해 현대사를 대표하는 신화로서 자리 매김한다. 일련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정서는 법망을 넘어선 초법적 해결과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다. 지금도 서부극의 영웅 신화는 초법적인 형사의 얼굴로, 초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의 얼굴로 다양하게 소환 중이다. 게다가 신화는 점차 사실적인 이미지로 진화 중이다. 관객은 영화를 극장에서 만난다. 그리고 갈수록 리얼해지는 재현을 답습한다. 오늘날 재현된 리얼리즘을 보는 감상자의 눈은 수많은 음모를 이겨내는 영웅의 활약상을 사실적으로 소비하는 동시에, 매체의 화면을 통해 실제 쌍둥이 빌딩이 내려앉거나 침몰하는 배를 목격하기를 병행한다. 재현은 경이롭고 눈은 둔감하고 경계는 모호하다. 영화 같은 일과 진짜 같은 영화 사이를 오가는 오늘날의 감상자의 눈은 혼란스럽다.

<카르텔 랜드>는 현실세계에서 초법적 행위의 결과가 영화와 같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오토디펜사스는 정부와 카르텔과 손을 잡았다. 메릴레스 박사는 오토디펜사스의 타락을 목격하고 관객은 그가 감금되는 것을 목격한다. 영화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대신, 폭력의 구조적 전이에 대해 견제를 유지한다. 하이네만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항변하는데 보는 입장에서는 초법적 영웅을 보는 낭만주의에 모종의 비판을 하는 것으로도 여겨진다. 초법적 영웅에 대한 낭만은 실은 서사의 완결을 전제했을 때 가능한 일임을 새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서부극의 서사 공식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마을을 괴롭히는 악당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영웅을 기다리고 영웅은 나타난다. 악당을 제거한 영웅은 홀연히 사라진다.’ 서사 구조에서 완성되는 영웅은 결국 마지막에 홀연히 사라지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실세계는 다르다.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를 외부에서 해결해 주길 바라는 마음과 해결의 대가로 영웅이 되고 세력이 되고 권력이 되어가는 현상은 이른바 폭력사용법의 양가적 욕망이다. 후반부 오토디펜사스가 지역 방위군으로 편입되면서 카르텔과 정부, 자경단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반면에 아리조나 보더 레콘에는 지원자가 몰리면서 오토디펜사스가 겪은 흥망의 과정은 아리조나 보더 레콘으로 옮겨가는 듯 보인다. 옮겨간 폭력의 징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영화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수한 영화를 통해 초법적 영웅에 길들여졌던 우리는 합법과 불법의 구분이 무색해진 현실 속 자경단의 몰락을 바라보며 씁쓸해진다.


 

<카르텔 랜드>는 몇 가지 자의식을 드러낸다. 일면으로 이 영화는, 감각적인 오프닝 시퀀스나 반전을 통해 마약 제조범의 정체를 드러내는 후반부 장면에서와 같이 영화적 연출에 충실하다. 그러면서 동시대에 실재하는 폭력의 징후를 응시하는 시선을 통해 영화사에 자리한 폭력의 낭만과 초법적 신화의 반대편에 메타적 자의식으로 자리한다. 기존의 자경단 신화를 부정하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겠으나 장르로서 구축한 신화의 반대편에서 다큐멘터리가 낼 수 있는 목소리로서 견제 또는 비판 기능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특정한 좌표를 차지한다. 얼굴을 바꿔 다가오는 초법적 영웅의 도래를 기다렸던 신화의 지속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자문해본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영웅이었는가 초법이었는가? 아니면 영웅을 앞세우면서 스스로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걸까? <카르텔 랜드>는 홀연히 사라지는 영웅의 뒷모습에서 느껴온 낭만, 그것을 통해 희석하고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의 맨얼굴을 보란 듯이 되살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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