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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영화 특별전 <심야의 탈출>2017-05-08

 



시계탑과 운명에 갇힌 자들

영화 <심야의 탈출>

 김동현 부산시민평론단


Review Irish film special 아일랜드 영화 특별전 2017.5.2(화)~5.18(목)


극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인물로 영화를 시작하는 것은 꽤나 이상한 일일 것이다. 영화 <심야의 탈출>(1947)의 오프닝 시퀀스는 데니스(로버트 베티)가 시계탑 부두 광장에서 책을 살펴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의 초반부 데니스가 주인공이 아니었음을 알게된 후부터 오프닝 시퀀스를 향한 의문은 시작된다.

북아일랜드 무장 투쟁 단체 IRA의 조직원인 데니스는 IRA의 리더 조니 맥퀸(제임스 메이슨)에게 자신이 계획에 적합하다는 이유를 들며 공장 절도 계획의 수정을 제안한다. 하지만 조니는 직접 조직원들을 이끌고 공장을 털다 몸싸움 끝에 사람을 죽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조니는 낙오돼 혼자 벨파스트 도시를 떠돈다. 깊은 부상 때문에 그는 정신이 혼미해지고 더 이상 스스로 걷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오프닝 시퀀스의 의문을 추적하는 방법은 결국 데니스라는 인물이 영화 내에서 어떻게 활용 되는지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극 중 데니스는 조니를 대신하여 직접 공장 절도 사건에 나서고자 했고, 조니의 낙오 이후 한쪽 팔에 붕대를 감고 조니인 척 연기하여 경찰에 혼란을 주다 이내 체포되어 사라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데니스의 역할은 조니를 대체하거나 조니를 흉내 내는 것 외엔 그다지 없어 보인다는 점과 데니스의 체포 과정은 조니의 낙오 과정과 묘하게 닮은 요소(총성-탑승물-차창)가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걸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영화의 중반부에 조니의 대역(데니스)조니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결국엔 체포되는 상황을 눈으로 확인한 셈이 되는 것이다. 조니의 대역으로 불려 나온 데니스 조차 조니와 흡사한 과정을 반복한다면 어쩌면 이것은 조니 자신의 운명 같은 것이 아닐까.

여기서 다시 오프닝 시퀀스를 생각해본다. 오프닝 시퀀스의 또 한편엔 시계탑(알버트 메모리얼 시계탑)이 있다. 극 중 인물들은 어느 공간에 있든 간에 시계탑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계탑은 끊임없이 보여지거나 종소리를 이용하여 존재감을 드러낸다. 시계탑의 종소리는 관계를 알리는 청각 신호 혹은 연극 무대의 막의 역할을 하는 듯, 중요한 장면 마다 화면 속으로 수차례 침입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영화 전반부 조니와 조직원들이 범행 장소(공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종소리가 들려온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후 세 명의 조직원들이 조니를 찾는 과정에서 경찰의 추적을 피해 테레사 부인(모린 딜레이니)의 현관문을 두들긴다. 그때 조직원 놀란(댄 오헐리히)이 이렇게 말한다. “계단이 그 공장이랑 비슷해 보여놀란의 목소리 위로 어김없이 종소리가 들려온다. 이 장면의 대사와 종소리는 이 공간을 공장으로 인식 하시오라는 뜻의 청각 신호로 활용된 것으로, 이후 일어날 일을 미리 암시하는 듯 하다. 이 외에도 종소리는 적극적으로 인물의 등.퇴장(마부, , 루키의 첫 등장 등) 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순간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들려온다. 이런 종소리의 성질은 묘한 운명론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인물들이 거대한 외부의 힘에 의해 결말부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갖게 한다.

 

영화 <심야의 탈출>을 손쉽게 말하자면, 조니가 의식을 잃은 채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영화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 러닝타임 중간중간 들려오는 시계탑의 종소리는 영화를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게끔 한다. 캐롤 리드 감독은 주인공이 없는 이 이상한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영화 속 시계탑의 종소리가 가진 알 수 없는 권위를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영화 <심야의 탈출>의 마지막 쇼트 역시 시계탑과 종소리로 마무리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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