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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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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 디지털 클래식 <트래픽>2017-07-20

 


자세히 보아야 재미있는 코미디,

<트래픽>

허지애 부산영화평론가협회

 

Review 4K Digital Classics 4K 디지털 클래식 2017.7.19.(수)~8.2(수)


자크 타티 감독의 사실상 마지막 장편영화라 할 수 있는 <트래픽(Trafic)>은 파리의 자동차회사에서 개발한 신개념 캠핑카를 암스테르담 자동차박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트럭으로 운반하면서 일어나는 소동들을 다룬 코미디영화이다. 1971년에 발표된 영화이니 46년 전 영화인데, 영화 속의 상황들이 어느 것 하나 촌스럽지도 낯설지도 않다. 제목에 걸맞게 영화는 시종일관 자동차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보여주는데 2017년 우리의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없다는 것을 제외하면 오늘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놀랍다.


자동차 공장의 기계소음과 질서정연한 제조공정으로 시작하는 <트래픽>에는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윌로 씨(Mr. Hulot)’가 자동차 디자이너로 등장한다. 타티는 자신이 연출한 영화의 대부분에 출연을 했는데, 윌로 씨는 그의 세 번째 연출작인 <윌로 씨의 휴가>에 처음 등장한 캐릭터이다. 그는 항상 동일한 복장으로 등장한다. 큰 키에 달랑한 짧은 바지를 입고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챙이 없는 둥근 모자를 쓰고 있으며 날씨와 관계없이 손에 긴 우산을 들고 입에는 파이프를 물고 있다. 그 때문일까? 그는 도통 말을 하지 않는다. 문명화되고 기계화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같은 순박함을 지닌 인물로 소소한 실수를 반복하는 윌로 씨는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통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티의 영화는 슬랩스틱코미디에서처럼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관객을 웃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착각과 부적응이 빚어내는 상황으로 인해 관객의 웃음을 끌어낸다.


<윌로 씨의 휴가>(1953)<나의 아저씨>(1958)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윌로 씨가 전면에 부각되어 주인공으로써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영화이지만, <플레이타임>(1967)<트래픽>에서의 윌로 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전작처럼 중심인물은 아니다. 덕분에 다른 인물들 하나하나에 눈이 가게 되는데 특히 파리부터 암스테르담까지 캠핑카 운송에 동반하는 마리아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전작들에서 그냥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던 윌로 씨의 역할을 물려받은 것 같은 그녀는, 첫 등장부터 자동차 공장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애완견을 끌고 들어오면서 눈길을 끈다. 이후 그녀의 거침없고 당당한 행동들은 소소하게 질서와 규칙을 어기는 것들이지만 그게 얄밉거나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또 그녀가 몰고 다니는 노란색 오픈카는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키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도로에서는 차선을 지켜 달리지 않고, 속도를 줄이지도, 교통신호를 준수하지도 않는다. 역주행에 불법유턴은 다반사이다. 주차를 하다 접촉사고를 내고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곳에 주차를 한다. 그녀에게 있어 자동차는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게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곳곳에서 생활의 편리를 위해 개발된 자동차가 오히려 편안한 삶에 방해가 되고 있는 현장을 보여준다. 캠핑카 운송차량은 공장을 출발하는 순간부터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어 타이어펑크, 연료부족, 교통사고, 차량파손 등의 장애에 봉착하게 되는데 급기야는 거침없이 행동하는 마리아의 차를 따라 세관심사대를 정차 없이 그대로 통과하다 무단입국차량으로 세관에 끌려간다. 그 탓에 암스테르담으로 이동은 지연되지만, 그 덕에 관객은 캠핑카의 우수한 성능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소개 받는다. 캠핑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경찰서라는 갇힌 공간 속에서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캠핑카의 기능을 설명하는 상황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자동차들의 이면은 폐차장에 산처럼 쌓여 있는 고장나고 낡은 차들이다. 빠르고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착시켜야 하는 자동차를 핸들로 돌려 밀고 가는 모습이라든지, 주차장인지 도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찬 자동차들 사이를 넘고 헤집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 감독은 그저 자동차와 함께 하는 도시 생활을 보여 줄 뿐이다.


배우들이 아니라 실제의 도로 위 차량을 촬영한 것 같은 자가용 운전자들의 클로즈업은 신호대기, 정체, 끼어들기 등의 상황에서 운전자들이 하는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여 보여 준다. 하나같이 동일한 동작을 하고 있는 다수의 운전자들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또 비오는 날의 와이퍼의 작동이 그 차의 운전자의 특성과 딱 맞아 떨어지는 장면 등, <트래픽>은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것들로 웃음을 유발시키는 영화이다. 또한 두 차례의 교차로에서의 접촉사고 장면은 치밀한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으로 마치 무성영화처럼 인물들은 어느 누구하나 말을 하지 않고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사고로 인해 열려 버린 트렁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살펴보는 신부님의 행동은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의 동작과 유사하여 관객들을 웃게 만들지만, 자세히 관찰해야만 함께 웃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문의 이중성-들어가고 나온다는 특성을 활용한 장면, 항상 고개를 꼿꼿이 들고 당당하게 행동하던 마리아가 히피들의 장난에 속아 오열하는 장면 등 타티의 영화는 사물, 인물, 상황의 유사성과 모호성으로 인한 착각 때문에 벌어지는 실수와 오해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포진되어 있어 자세히 그리고 오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도시와 시골이라는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상황을 그려내는 타티의 연출은 <트래픽>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기계 문명의 집약체로 시간과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도시와 달리 파손된 차량을 고치기 위해 머무르는 강변의 시골마을은 차선이 없는 도로로 대표되듯이 자유롭다. 또 흑백텔레비전으로 우주선 발사를 지켜 본 어른들이 물안개가 낀 아침에 우주의 무중력공간에서 유영을 하듯 움직이고, 수리를 위해 창고에 넣어둔 캠핑카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장면처럼 느슨한 현실감각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 때문에 윌로씨 일행의 출발은 지연되지만 아무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암스테르담의 자동차박람회장에 도착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멋진 캠핑카가 자동차박람회에서 결코 전시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 1971년의 콤팩트한 캠핑카의 기능에 감탄을 연발하다 캠핑카 역사의 온상은 미국이지만 세계 최초의 캠핑카는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쓴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증기의 집(1887)>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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