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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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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침묵 <카메라맨>2017-06-14

 


프레임과 스크린 사이의 틈, <카메라맨>

서하연 부산시민평론단


Review 마지막 침묵 1928년의 기적, 위대한 무성영화의 기억 2017.6.13(화) ~ 7.9(일) The Last Silence

 

영화와 같은 해인 1895년에 태어난 버스터 키튼은 무성영화기를 대표하는 메타시네마를 두 편이나 만들었다. 버스터 키튼의 영화 속 영화를 이야기 할 때 흔히 <셜록 주니어>(1924)가 가장 먼저 언급된다. 많은 이들이 키튼 무비 중 가장 좋아하노라 말하는 이 작품은 영사기사 버스터가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안팎을 넘나드는 내용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에드워드 세즈윅과 함께 감독한 <카메라맨>(1928) 인데 이 영화는 촬영기사 버스터의 이야기로, 스크린이 아닌 프레임이 더 중요하게 등장한다. <셜록 주니어>가 몽상적인 영역에서의 영화, 관객의 영화를 다루고 있다면 <카메라맨>은 영사 이전의 촬영 단계에서 카메라라는 기계 장치가 포착해내는 우연성을 담고 있다.



고물 카메라로 행인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던 버스터는 인파 속에서 우연히 본 샐리라는 여인에게 반해서 그녀의 사진을 찍어준다. 사진을 전해주러 샐리가 일하는 MGM 사무실에 찾아간 그는 그녀의 곁을 맴돌 수 있는 MGM 소속의 뉴스릴 카메라맨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버스터와 카메라의 관계는 스틸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어 실수로 찍어온 이중노출의 실험적인 분할 화면, 차이나타운의 갱스터 싸움을 취재하러 갔다가 얼떨결에 개입해서 연출한 장면들, 그리고 원숭이가 카메라의 크랭크를 돌리는 바람에 우연히 찍히게 된 순간까지, 마치 영화가 흘러온 다양한 양태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외화면이 화면 안으로 포섭되거나 화면 영역이 확장되는 방식에 있는데, 이는 샐리와 버스터가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화면을 가득히 채운 군중들 틈에 찡겨있다시피 한 버스터의 곁으로 화면 밖에 있던 샐리가 떠밀려서 프레임-인하고, 인파가 우르르 빠져나간 다음 화면에 홀로 남은 샐리를 잡고 있던 카메라가 우측으로 패닝하면 화면의 바깥에서 샐리를 바라보고 있던 버스터가 나타난다. 이처럼 쇼트를 나누지 않고 구도를 바꾸어 이전에 보이지 않던 외화면 속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MGM 뉴스릴이라는 글자에서 트래킹 아웃을 했을 때 층별 안내도를 바라보고 있는 버스터의 뒷모습이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함께 잡히는 장면이나 빈 야구경기장에서 혼자 야구놀이를 하던 버스터를 따라 왼쪽으로 카메라가 움직이면서 외화면에 존재하던 야구장 관리자가 프레임 속에 들어오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외화면이 화면영역으로 수렴되는 것은 영화의 후반부 보트 사고 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패닝이라는 x축 무브먼트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흐름은 이후에 등장하는 계단 장면에서 수직의 y축 움직임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는데, 오매불망 샐리의 전화를 기다리던 버스터가 4~5층 가량 되는 층계를 빠르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모습을 마치 건물의 단면을 잘라놓은 듯한 구도에서 보여준다. 이 때 카메라는 코미디 영화사상 최초로 엘리베이터 크레인까지 동원하여 수직으로의 하강과 상승 이미지를 더욱 더 역동적으로 담아낸다.

 

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또 다른 지점은 탈의실 장면이다. 샐리와 첫 데이트로 수영장에 가게 된 버스터는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가 좁디좁은 탈의실에서 봉변을 당하게 되는데, 영화의 초반부와 종반부에 나오는 군중 씬이 넓고 트인 공간에 바글거리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등장시킨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좁은 공간 속에 두 인물이 한꺼번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느라 투닥거리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이 장면은 키튼이 촬영장에서 즉흥적으로 추가한 것이라고 하는데, 340초가 넘는 롱테이크로 이루어져 있어서 비단 이 영화에서 뿐만 아니라 키튼 영화 전반을 통 틀어서 보아도 상당히 이질적인 쇼트가 아닐 수 없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풀쇼트나 롱쇼트의 속도감 있는 슬랩스틱과 달리 피사체 가까이에서 찍은 꽉 찬 화면에서 몸과 몸이 갑갑하게 뒤엉켜 만들어 낸 슬랩스틱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두 남성의 기싸움은 결국 탈의실에서 옷이 뒤바뀌어 자신에게 너무 큰 수영복을 입게 되는 버스터의 수난으로 이어지고 관객들을 박장대소 하게 만든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짜릿한 부분은 영화의 카메라가 우측으로 패닝했을 때 그 곳에 영화 속 카메라를 돌리고 있는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셜록 주니어>를 통해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라는 달콤한 꿈과 그 꿈의 바깥을 보여주었던 그가, 현실과 현실의 끄트머리에서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의 존재를 보여줄 때 우리는 그 장면이 기록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영사될 것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대목들 이외에도 원숭이와의 환상적인 연기 호흡과 버스터의 기행을 목격하는 경찰관의 반응쇼트로 희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이층버스 씬 등 흠 잡을 데 없이 잘 짜인 코미디 연출은 물론, 허구적인 쇼트들 사이에 실제 뉴스릴 영상을 삽입하는 실험적인 면모까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셜록 주니어><극장>(1921)과 같은 자기 반영적인 버스터 키튼 영화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절대 놓쳐선 안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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