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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네마 XVI <스타 플레이어>2019-03-26
Review 3월 시네마테크 기획전 세계영화사의 위대한 유산, 월드시네마 XVI 2019.3.19.(화) - 4.24(수)

 

 

시미즈 히로시의 <스타 플레이어>

: 전쟁을 바라보는 시미즈 히로시식 우회(迂廻)

 

 

장지욱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영화 속 한 장면, 야간 점호를 마친 학도병들은 방을 나누어 저녁 시간을 보낸다. 사케를 나눠 마시던 세키의 그룹은 자식 잃은 한 남성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옆방에는 구슬픈 노래에 심취한 타니의 그룹이 있다. 연민의 정서가 감싸는 순간 불현듯 이들의 공기를 침범하는 것은 다른 방에서 승리를 부르짖는 구호와 박수소리다. 이 구호는 이전 장면에서 타니가 세키를 놀리려고 동네 아이들과 함께하던 구호였고 세키는 구호 소리가 타니의 주도로 나는 소리라 오해해 소란스러운 방으로 가 그를 찾는다. 정작 타니는 다른 방에서 구호를 들으며 세키를 질책하고 사정을 알게 된 세키가 돌아섰을 때는 문 밖에 다른 학도병들이 승부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장면은 <스타 플레이어>(1937)에서 점진적으로 쌓여가는 갈등을 가장 잘 드러냄과 동시에 제대로 된 충돌이나 해소 없이 봉합된 갈등이 공기 중을 배회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 장면으로부터 이어지는 다음 장면까지 <스타 플레이어>가 갈등을 쌓고 다루는 양상은 흥미롭다. 앞서 말한 장면에서는 행위와 오해와 그에 따른 반작용이 순차적으로 전개되고 화면을 채우는 사람들의 물리적인 숫자 역시 세키의 방에서 시끄럽던 다수의 방으로, 다시 타니의 방에서 방 밖에 늘어선 여러 학생들로, 갈등의 증폭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장면이 전환되는 사이를 세키의 쇼트가 채우는데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오해, 멋쩍음, 다시 분노가 복잡하게 교차된다.

 

급변하는 감정선은 이전 장면부터 세키와 타니, 두 라이벌이 주고받았던 호승심과 경쟁심이 쌓아온 갈등의 축적이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어딘가 과장되게 표출된 감정선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쯤에서 관객은 어수룩하게 행군하던 학생들이 실은 전장으로의 출정을 앞두고 있음을 떠올려도 좋을 것 같다. 좀처럼 직설적이지 않던 시미즈 히로시는 전쟁에 대한 단상을 이 시퀀스로 압축한 것 같다.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호승심과 경쟁심은 전쟁과는 무관한 그 나이대의 산물이다. 그것이 전쟁이라는 거시 대립의 장으로 들어오면서 나타나는 반향은 전쟁의 어떤 속성마냥 비논리적이거나 과잉이다. 전운은 학생을 군인으로 만들고 군인이 무비판적으로 외치는 승리라는 구호는 영화 초반에 세키 자신이 타니와의 대화에서 이기면 그만!’ 이라고 던졌던 말임에도 그로부터 야기된 일반 이상의 반향에 정작 세키는 혼란스러워 보인다.

 

    시미즈 히로시는 이로도 갈등의 향방을 다소 의아하게 이어간다. 그 자리를 벗어난 세키는 오후에 감을 건네줬던 아이가 배탈이 났다는 말을 듣고 아이의 방을 찾는다. 아픈 아이가 누운 아래층에서 손님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세키는 화를 내고 손님과 맞부딪칠 뻔하는데 여기에서도 감독은 충돌 대신 상황을 비틀어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유곽에서 일하는 아이 엄마가 매춘을 하러 가야하는 상황까지 목격한 세키가 일련의 사건들을 오롯이 감당하며 고뇌할 때, 타니가 등장해 세키를 가격하고 이 시퀀스는 맺음 한다. 당사자와 무관하게 울려 퍼졌던 구호와 그 자리를 피해 배회하던 세키, 여러 차례 비켜가고자 했지만 갈등의 화살은 공교롭게도 다시 당사자에게로 향한다. 그리고 관객은 세키가 교내에서는 스타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무엇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기력한 모습으로 프레임을 차지하는 세키의 모습은 앞서 그 자신의 입에서 비롯되어 선동적인 구호를 야기했던 영향력과 대비된다.

 

시미즈 히로시의 1년 전 작품인 <아리가토 씨><스타 플레이어>는 닮은 점도 다른 점도 명확하다. 버스가 지나거나 학도병이 행군하는 장면이나 여정의 가운데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두 영화는 닮았다. 하지만 <아리가토 씨>에서 마을을 떠나는 조선 여인이 탁 트인 들판에서 주인공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과 <스타 플레이어>에서 세키가 떠난 뒤 마루에 홀로 앉은 유곽 여인이 후경에 갇힌 프레이밍에 등장함으로 전달하는 정서는 큰 괴리가 있다. <아리가토 씨>에서 주인공 아리가토 씨는 버스를 몰면서 인사를 반복하고 사람들을 지켜보고 대화하고 작별하며 일상의 소소한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면 <스타 플레이어>의 세키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현실 안에서 의욕을 펼치지 못해 고뇌하는 무능한 목격자로 남기 때문이다. 결국 세키는 타니를 통해 각성하고 출정에 나서는데 그 각성이란 아리가토 씨 보다는 타니나 선동된 다른 학도병들 쪽에 가까운 듯 보인다.

 

    <스타 플레이어>에는 전쟁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담배를 나눠 피는 세키와 타니의 대화에서 세키가 다시금 입에 승리라는 말을 올릴 때 관객은 이전전과는 다른 뉘앙스를 느낀다. ‘다른 뉘앙스는 세키의 변화이면서 시미즈 히로시의 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 후반부를 비롯해 은연중에 깔린 군국주의를 보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당대의 엄혹함을 탓하고 싶은 지점이기도 하다. 시미즈 히로시는 <스타 플레이어>에서 행군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여전한 유머로 엄혹함을 꼬집으며 웃음을 전하기 때문이다. 어느 학도병의 입을 빌어 전쟁고아에 대해 노래하고 세키의 자책을 통해 위로 받아야 할 아이를 연민하기 때문이다. 감독에게도 거대한 현실의 창이 드리워졌던 가운데 소소한 가치를 넌지시 물어보는 시미즈 히로시 감독의 매력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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