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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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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네마 2020 -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멋진 인생>2020-05-18
세계영화사의 위대한 유산, 월드시네마 2020 2020.5.19.화~6.10.수 매주 월요일 상영없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와 떠나는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멋진 인생>

구형준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멋진 인생>(1946)은 프랭크 카프라의 섬세하고 따뜻한 가족주의와 인간애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의롭고 강직한 인물이 역경을 헤쳐 나가며 공동체적 가치를 지켜 나간다는 내용의 카프라 특유의 코미디 드라마는, 별다른 해석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단순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기에 오롯이 순수하고 강렬하다. 그렇다면 대사와 상황들을 찬찬히 따라가기만 해도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을 안겨 주는, 어쩌면 고전이라는 수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 카프라의 영화에 어떤 말을 보탤 수 있을까?

 

  프랭크 카프라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전성기에 활발히 활동했던 장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당시 흔치 않게 각본과 연출을 겸한, 이른바 작가 감독이기도 했다. 즉 그의 영화에는 최전방 상업 영화로서 갖춰야 할 뚜렷한 서사와 온건한 이데올로기가 있지만, 동시에 단순히 서사와 이데올로기만으론 소화되지 않는 카프라의 영화적 인장과 디테일들이 내재되어 있다. 하여 나는 이 글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어쩌면 사소하고 미미할지도 모르는 카프라적 디테일들이 어떻게 거대하고 숭고한 카프라적 이상주의에 가닿는지 생각해 보려 한다.

 

  우선, 나는 간헐적으로 등장하고 지나가는, 별다른 서사적 비중 없는 노래 한 곡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끌렸다. 조지와 메리는 졸업 파티에서 수영장에 빠지는 바람에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다. 그들은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돌아온다. 하지만 둘은 오히려 그 상황이 재밌다는 듯 ‘Buffalo gals(Won’t you come out tonight)‘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며 명랑하게 걸어온다. 그리고 이후에도 둘은 일이 안 풀리거나 곤경에 빠질 때마다 몇 번이고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무수한 우여곡절들을 겪으면서도 결국엔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운다. 미모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져 춤을 청하고 청혼한다는 내용의 이 노래는 단순하고 소박하다. 가사의 명료함만큼이나 단조로운 멜로디와 반복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어느샌가 조지와 메리 둘만의 주제가처럼 되어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려지며 시시때때로 등장한다. 그리고 복잡한 가사나 악곡의 구조도 없는 이 간결한 노래가 어느새 익숙한 콧노래가 되어 일상 속에서 흥얼거려지기까지의 과정은 은근하고 자연스럽다. 카프라는 이처럼 가볍고 단순한 무언가가 일상의 일부로 스며드는 과정을 서사 전개 속에 자연스레 녹여 낸다. 서사를 구성하는 이 작은 세부들은 조금씩 쌓이고 모여서 하나의 꽃다발이 되고, 어느샌가 인물의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준다.

 

  이처럼 카프라의 세계에는 미세한 디테일들이 높은 밀도를 이루며 기반이 되어 주고, 인물과 서사는 그 위에서 단단한 감정과 이념을 그려 낸다. 작품의 후반부 조지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것들이 예의 그 노래와 어릴 때 다친 귀, 썰매 타다 구한 동생, 일하던 가게 아저씨를 도와줬던 사건 등 매우 일상적이고 시시콜콜한 일들이라는 점에서, ‘삶을 지탱하는 가치가 오히려 작고 단순한 일상 속에 있다는 작품의 주제는 유려하게 서사 속 작디작은 디테일들과 결합한다.

 

  어쩌면 순진하달 정도로 순수한 인간애적 이상을 그리는 데 몰두했던 카프라의 영화가 여전히 우리를 감화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디테일이 지탱하는 서사에 있다. 어느 날 밤 불렀던 단조로운 노래가 이제는 조지의 가족을 이루는 중요한 일부가 되고, 그 가족의 행복을 이어주는 것이 다시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서사 속 강렬한 힘도 스쳐 지나가는 작은 사건들에서 촉발되는 것이다.

 

  카프라는 숭고한 이상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신기루처럼 다루지 않고, 언제나 무언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일상을 유심히 보며 그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휴머니즘을 찾아내 왔다. <멋진 인생>을 본 관객은 모두 어쩌면 조금씩 조지 베일리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거대해 보이는 삶도 그리고 영화도, 사실 지금 내 옆에 있는 작은 것 속에 있다는 것을 그가 몸소 알려 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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