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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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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녹턴>이 담아낸 음악, 사람, 그리고 시간2022-08-26
녹턴 스틸이미지

 

 

영화 <녹턴>이 담아낸 음악, 사람, 그리고 시간

 

송영애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지난 818일에 개봉한 정관조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녹턴>(2019)은 여러모로 예상을 좀 벗어난다. ‘녹턴즉 야상곡이라는 제목에 따라 음악만이 가득한 영화를 기대해도 그렇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은 천재 음악가와 어머니와 동생 정도의 키워드에 몰두해도 그렇다.

 

게다가 극영화인 <레인 맨>(배리 레빈슨, 1989), <말아톤>(정윤철, 2005), <그것만이 내 세상>(최성현, 2018) 등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유사한 상황이나 인물을 찾을 수 있으나, 다큐멘터리영화 <녹턴>이 담아낸 것들은 더욱 버라이어티하다. 그리고 여러 어려움을 극복했고, 이젠 모두 행복해요식의 확실하게 닫힌 해피엔딩도 아니다.

 

100분이 채 안 되는 이 영화엔 참 많은 것들이 담겼다. 많이 들어본 음악이지만 뭔가 느낌이 다른 음악도 있고, 그 음악을 하기 위해 끈질기게 애쓰는 사람과 그게 불만인 사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10년 이상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영화가 담아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음악쟁이 이성호의 음악

 

영화 <녹턴>의 중심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은 이성호가 있다. 성호는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음악인으로 절대 음감과 엄청난 기억력을 지녔다. 그렇다고 모두를 압도하는 엄청나게 빠른 손가락 놀림의 연주라든지, 한 번 듣고 바로 연주하는 식의 천재성 발휘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다.

 

갑자기 바뀐 악보에도 연주해내는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손놀림이 불편해 매끄럽게 연주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영화 내내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성호의 무대 위 모습보다는 무대 아래에서의 모습, 완성된 음악보다는 완성되어 가는 음악으로 영화가 채워졌다.

 

녹턴 스틸3

 

 

어머니 손민서도 성호의 음악에는 감정이 풍성하게 실려있진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그저 장애인치고잘하는, 그래서 구경할 만한 음악정도로 평가절하하는 건 부적절하다. 영화 <녹턴>을 보다 보면, 성호의 음악에 빠져드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일상에서 가족과 대화조차 힘든 그가 다른 악기와 협연을 해내는 모습은 분명 감동적이다. 다른 이들의 음악과 성호의 음악은 나름의 결로 훌륭하게 어우러진다.

 

여러 사람이 연주한 쇼팽의 녹턴도 들을 수 있다. 무대 위 성호의 연주, 동생 건기의 집 안 연습 연주,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연주까지, 같은 곡이지만 서로 다른 매력으로 들려온다. 성호의 연습 과정과 연주 무대를 통해 듣게 되는 음악도 다르게 그리고 새롭게 다가온다.

 

성호 가족의 분투기

 

그렇다고 이 영화가 무대 위아래의 음악으로만 채워진 건 아니다. 사실 성호의 음악보다는 그의 가족, 그들의 일상이 더 많이 나온다. 어머니 민서는 늘 성호의 곁을 지킨다. 집에서도 복지관에서도, 전철과 차 안에서도, 어디에서든 함께 한다. 성호가 갑자기 전철을 내리려 하거나, 다른 사람을 잡아당기는 등의 돌발 행동을 하면, 제지해야 하고 가르쳐야 한다. 소통이 쉽지 않은 중증 장애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처절한 노력이 펼쳐진다.

 

녹턴 스틸 4

 

민서의 목표는 성호의 음악쟁이인생이 계속되는 것이다. 본인 세상을 떠난 후 걱정도 태산이다. 그래서 더더욱 막내아들 건기가 형과 잘 지냈으면 좋겠지만, 어려서부터 그렇지 않았다. 민서는 두 아들을 위해 영화 내내 여러 번 요리하지만, 그들의 오붓한 식사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건기는 어릴 때 음악인을 꿈꿨다. 피아노를 쳤지만, 어머니의 전폭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건기도 성호의 음악에 올인한 어머니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일찍 독립해 집에서 나왔다. 그러나 어머니와 형의 근처를 떠나진 않는다.

 

녹턴 스틸 5

 

피아노, 벽과 자전거를 사이에 둔 성호와 건기의 모습은 공연차 러시아에 가서 탄 버스 안에서도 이어지는데, 둘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존재하지만, 멀진 않다. 그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보자면, 애잔하기도 하다.

 

녹턴 메인포스터

 

 

영화에서도 건기는 밀려나 있지 않다. 카메라는 건기가 혼자 사는 집에서도, 일하는 외국에서도 함께 한다. 건기가 혼자서 분투하는 모습도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가 느끼는 섭섭함과 좌절에 공감 가는 순간도 많다.

 

<녹턴>은 성호 가족의 분투기다. 민서와 건기 사이엔 성호가 있지만, 함께 성호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다. 민서와 건기가 서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의 분투기는 아슬아슬해 보이고, 현실적이다.

 

, 자막, 그리고 카메라

 

민서와 건기는 각자의 목표를 향해,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영화 내내 서로에게 내뱉는 말과 카메라(감독)에게 하는 말을 통해서 드러난다. 혐오와 사랑, 하소연과 칭찬 들이 뒤섞인 그들의 말은 일종의 해소로도 느껴진다. 민서와 건기의 서로 다른 입장에 누구 편을 들기가 쉽지 않을 만큼, 두 사람 모두 솔직해 보인다.

 

반면 성호에 대해서는 알기가 힘들다. 분명 영화 내내 모습이 보이고, 말도 많이 하지만, 어머니 말을 따라 하거나, 묻는 말에 짧은 답하는 게 대부분이다. 자폐인 성호의 바깥세상과의 단절은 영화를 통해서도 느껴지는 셈이다. 그가 씻고, 먹고, 자는 일상을 지켜본 관객도 그의 속을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그의 음악을 통해 그를 어느 정도 느낄 뿐이다.

 

<녹턴>의 카메라는 성호의 생각과 마음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내레이션은 아예 등장하지 않고, 자막도 아주 가끔 매우 짧게만 나온다. ‘2008’, ‘2017정도의 정보만 자막으로 알려준다. 이렇게 영화 외부적으로 감독의 개입은 최소화되었지만, 민서와 건기가 끊임없이 카메라(감독)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덕에 그들의 일상에 위치한다. 없는 듯 있는 가족 같기도 하다.

 

뒤섞인 10년이라는 시간의 힘

 

이 영화를 가장 매혹적으로 만드는 건 영화가 담고 있는 10년이라는 긴 시간이다. 100분이 채 안 되는 영화지만, 민서, 성호, 건기 세 가족의 10년을 목격할 수 있다. 비록 일부 순간이지만, 영화에 기록된 그들의 순간은 그들의 변화를 목격하게 한다.

 

게다가 영화적 시간은 순차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2017년 러시아에서 진행된 연주회의 시작 부분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바로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물다섯 살인 성호의 머리를 감기고, 면도를 해주며 일상을 시작하는 민서, 피아노로 대입을 준비 중인 반항기 많은 고3 건기, TV를 더 보고 싶은 성호를 만나게 된다.

 

그러다 2015, 2017년 등으로 시간이 옮겨 간다. ‘건기가 대학은 갔을까? 무얼 하고 있을까?’ ‘성호의 음악은 얼마나 발전했나?’ 등등의 궁금증이 바로 해결된다. 영화로 보진 못했지만, 지난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지 짐작도 된다. 그렇게 그들의 10년을 지켜보게 된다.

 

이후 영화 속 과거 장면이 다시 소환되기도 한다. 과거 인터뷰 장면 등을 다시 보며, ‘그때 어머니의 이야기가 이렇게 실현이 되는 건가?’ ‘그때 건기의 생각은 이제 안 바뀌었을까?’ 궁금해진다. 지켜본 그들의 과거 덕에 그들의 현재와 변화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영화 속 현재와 과거를 오가다가, 어느 순간은 편집 없이 길게 다가온다. 성호의 연주나 성호의 연습을 지켜보는 민서의 모습 등이 끊김 없이 롱 테이크로 보이면, 숨죽여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 순간은 관객 역시 그들과 온전히 함께하게 된다. 비록 지켜보는 정도지만, 이들의 10년의 일부와 그중 어느 순간은 좀 더 가까이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

 

녹턴 스틸2

 

최근 인기 드라마 덕분에 장애인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이 좀 늘었다고 한다. 또 다른 편견이나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도 한다지만, 함께 할 또 다른 사람으로서, 그들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시선이 절실하다.

 

영화 <녹턴>은 음악과 가족과 시간, 장애 등을 더욱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이제 그들을 행복하다는 결말을 보여주진 않지만, 앞으로 그들이 꿈과 행복을 향에 덜 힘들게 나아가길 바라게 한다. 제도나 인식 등 바뀔 것들을 바꾸는데,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녹턴 스페셜 포스터

 

잔잔한 듯 강력하고 현실적인 영화의 힘을 <녹턴>을 통해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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