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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 <헌트>2022-08-18
헌트 이미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헌트>

 

강선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1983109일 버마에서 폭탄테러가 있었다. 이 폭탄테러로 대한민국 정부의 부총리, 장관, 비서실장 등 주요 인물들이 죽었다. 일명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이다. 북한이 전두환 대통령의 아웅 산 묘소 방문을 노리고 미리 설치한 폭탄을 터뜨렸지만, 북한 공작원의 실수로 전두환 대통령 도착 직전에 폭탄이 터지게 되었고, 결국 전두환 대통령을 제외한 정부 요직과 현장에 있던 수행원, 기자 등 총 17명과 미얀마인 4명이 숨졌다. 만약 북한이 목표했던 대로 전두환 대통령이 83년의 버마에서 숨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9805.18 민주화 운동 이후 19876.29선언까지 또다시 흘려야 했던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면 또 한 번의 한국전쟁이 벌어졌을까? 영화 <헌트>를 마지막부터 거꾸로 되감아 보면 우리는 결국 우리 역사에 던져졌던 그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헌트 스틸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은 많은 희생자를 낳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실패한 테러였다. 그렇지만 실패한 테러라고 하더라도 목적은 확실했기 때문에 성공이든 실패이든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다분했다. 그만큼 명백한 도발이었고, 사건이 있고 난 뒤 귀국한 전두환 대통령은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전두환 정부는 이 암살 실패 사건에 대한 명확한 보복을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철회하고, 북한 역시 1명의 공작원이 사살되고 2명이 붙잡혔는데도 테러에 대해 끝까지 부인하는 것으로 일관한다. 양국 모두 전쟁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전두환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죽었다면 북침이든 남침이든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전쟁은 우리나라로 끝나는 일도 아니었다. 당시 세계는 언제든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긴장 속에 있었던 냉전 시대였다.

 

헌트 스틸

 

  <헌트>에서는 이 전쟁을 막는 것이 박평호(이정재)의 명분이다. 그는 여권이 붉은색이든 푸른색이든 통일을 위해서 자기 삶을 희생해온 사람이지만, 그에게 그 목표는 어떤 방식으로든 도달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무력에 의한 통일은 수없이 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평호는 전쟁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그 이유로 전두환 대통령을 구한다. 이 행동은 이제까지 그가 살아온 방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그는 안기부에서 일하는 13년 동안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였으며, 함께 일해 온 요원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심지어는 자기를 가장 믿고 있는 부하 직원을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되는 일까지 감수한다. 이는 그가 통일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과정상에서 벌어진 일들은 모두 용서될 수 있다고 믿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박평호는 마지막 순간에 그 자신의 판단으로는 목도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전쟁 앞에서, 목표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모든 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헌트 스틸

 

  박평호와 대척점에 있는 또 한 사람, 김정도(정우성)의 명분은 국민을 학살하는 정부의 종식이다. 김정도는 19805.18 민주화 운동 당시 군인 신분으로 전두환 정부가 헬기 사격을 지시할 정도로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 죽이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를 끌어내리고자 한다. 그는 이 정부를 끝낼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지 불사한다. 설령 전쟁이라도 말이다. 물론 김정도가 북한의 남침 계획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겠지만, CIA 요원과의 접선에서 냉전체제에서의 일명 베드로 암살이 불러올 혼란에 대해 들었다는 점에서, 그가 전두환 정부의 종식을 위해서라면 전쟁의 위험이 있더라도 암살 계획을 실행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전두환 대통령 암살 이후 다시 군부 쿠데타를 통해 국정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박평호와 김정도,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명분의 충돌 결과는 우리를 다시 역사 속 질문으로 이끈다. 두 명분은 양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죽거나 죽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1983년 버마에서 죽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만큼 민주화가 앞당겨졌을 수 있을까? 결국 또 다른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며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을까? 북한이 테러에 성공했는데 남침하지 않았을까? 또 남한은 대통령이 암살당했는데 북한과의 전쟁을 선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마주한 역사, 그러니까 이 실패한 테러 사건이 단순히 독재자의 수명만을 연장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반공으로 단결시키고 독재정권의 수명을 연장한 역사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단지 일어날 수 있었던 경우의 수에 관해 묻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들 속에서 우리의 역사를 그렇게 흘러가게 만든 명분들에 관해 묻는 것이다. 휴전의 역사, 독재의 역사,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만든 명분들. <헌트>의 마지막 장면이 우리가 아는 역사와 다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헌트>에서 아웅 산 묘역 테러 사건은 아주 우연히 간발의 차로 테러를 피한 대통령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자신들의 명분대로 역사를 바꾸려고 했던 자들의 이야기가 된다.

 

헌트 스틸

 

  우리가 종종 우리의 의지가 우연성 앞에서 좌절되는 경험을 하듯이, 그들도 어떤 선택을 하든지 간에 미래를 완벽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전쟁의 가능성, 독재정권의 무한 연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택했겠지만, 무엇이 더 옳은 결과를 낳는 선택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전두환 대통령을 살려둘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한 사람의 독재를 막고 나면, 그것도 군부가 나서서 막고 나면 민주화는 정말로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인지, 그 모든 것들을 누가 알 수 있는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열심히 계획하고 실패해 온 역사들은 다음 세대로,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역사는 그렇게 수많은 가능성들을 지나며 미래로, 또 미래로 나아간다. 박평호에게 새로운 이름의 여권을 건네받는 조유정(고윤정)처럼 역사는 늘 미래 세대가 이어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가능성들 속에서 모든 선택들은 결과로만 말해질 수 있을까? 선택의 이유들은 모두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들과 함께 역사 저편으로 묻혀버리는 것일까? <헌트>는 모두가 참을 수 없는 한계치에 달했던 시대에, 영화 속 조유정의 말처럼 세상이 변하고 있는데 멍청하게자기 시대에 갇혀 있으면서도, 다른 가능성들을 선택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마음들을 비춘다. 결과는 같더라도, 그렇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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