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영화와 비평  > 영화평론가 비평

영화평론가 비평

오디오 해설 영화관



영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 다양한 관점이 돋보이는
'영화평론가' 차별화된 평론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평론글은
여러분을 새로운 영화 세상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글을 통해 들여다본 새로운 영화세상으로 떠나보세요!

<스펜서>, 다시 한번 다이애나를 비추다2022-03-30
스펜서 스틸 이미지

 

 

 

<스펜서>, 다시 한번 다이애나를 비추다

 

강선형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타인의 삶을 염탐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익명의 어둠 속에서 매일 다른 사람들의 피드를 탐색하고, 미디어는 그 어둠 속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빛 속에서 얼굴을 드러낸 몇몇을 쫓아다니며, 영화는 모두의 관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그들의 삶을 하나의 스토리로 꾸며낸다. 우리는 타인의 삶에서 무엇을 찾고 싶은 것일까? 나와 닮은 점일까, 나와 다른 점일까?

   <스펜서>는 죽음을 맞이한 지 벌써 25년이 된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삶을 다시 빛 속으로 꺼내온다. 도대체 그녀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은 슬프고 처연한 삶이었을까, 너무도 특별하여 일찍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던 운명적 삶이었을까? 끊임없는 사람들의 염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삶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다이애나의 삶은 이렇게 다시 한번 우리를 찾아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다이애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녀를 악용했던 여느 미디어들처럼 다이애나의 삶에 대한 호기심만을 부추기고 있지는 않다. 어쩌면 그녀의 삶을 전시하기보다는 오히려 수없이 전시되어왔던 그녀의 삶을 그녀 자신에게 돌려주고자 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스펜서 스틸이미지

 

  

   <스펜서>는 다이애나에게 던져졌던 무수한 시선들에서 자유롭다. 다이애나에 대한 소문들이나 평가들이 아니라 오직 다이애나 그 자신이 1991년 당시에 어떻게 느꼈는지만을 존중한다. 미디어가 비추는 것처럼 다이애나는 보모였던 여자가 프린세스가 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도 아니고, 온갖 문제들을 일으키면서 왕실을 위협하는 존재도 아니다. 그녀는 그녀가 인터뷰에서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규칙서에 얽매여서 행동하지 않고 이성보다는 마음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일 뿐이다. <스펜서>는 다이애나에게 벌어졌던 무수한 일들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게 아니라, 다이애나가 그 스스로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를, 오직 다이애나 그 자신의 시선만을 따라가면서 비춘다.

   샌드링엄 별장에서 윈저 일가가 모여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는 며칠 동안, 다이애나의 변화무쌍한 마음을 따라가는 <스펜서>는 왕실의 전통이 얼마나 다이애나를 옥죄고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몸무게를 재는 전통이 대표적이다. 얼마나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미 삼아시작된 이 전통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폭식증을 앓고 있던 다이애나에게는 무척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윈저 가문의 일원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들은 이렇듯 사소한 일부터 시작되지만, 사소하다고 해서 지키지 않을 수는 없다. 거부될 수 없는 이유는 규칙서에 적혀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 늘 그렇듯이 전통은 전통이라는 이유 외에는 달리 당위가 없다. 전통이 생겨난 이유는 존재하겠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 잊히고 퇴색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한 치의 예외도 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 다이애나가 도피하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그 규칙의 엄격함이다. 그 엄격성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도 벗어날 수 없기에.

 

 

스펜서 스틸이미지

 

 

   다이애나를 옥죄는 그 엄격성은 과거의 것이다. 다이애나의 남편인 찰스 왕세자(잭 파딩)는 자신의 인격을 두 개로 분리해 자유를 억압하는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이애나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찰스를 엄격한 틀에 집어넣는 과거는 그 자신의 과거 혹은 그 자신이 속한 가문의 과거이지만, 다이애나에게 강요되는 과거는 그녀 자신의 과거도 혹은 그녀 자신이 속한 가문의 과거도 아니기 때문이다. 찰스는 윈저 가문의 일원으로 그 가문의 과거의 전통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다이애나는 스펜서 가문의 일원이며 만일 과거의 틀에 자신을 반드시 맞춰야 한다면 그것은 스펜서 가문의 전통이어야 하는 것이다. 샌드링엄 별장에서 다이애나가 계속해서 자신의 살던 과거의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 자신을 옥죄기도 하는 과거가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알려주기를 기대할 수도 있는 것이라면, 다이애나가 찾아가야 할 곳은 윈저가 아니라 스펜서 가문의 집일 수밖에 없다.

   다이애나의 삶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지만, 그 결말이 다이애나가 했던 위태로우면서도 용기 있는 거부를 가려버리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여느 미디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한 사람의 비극적인 희생자로 만들고 그녀가 했던 선택을 그녀의 결말이 흡수해버리게 두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스펜서>가 시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윈저 가문의 틀에 다이애나 스펜서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그 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쓴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미래는 오직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의 손에만 맡겨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저항한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으면, 그녀는 결코 강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이애나는 그녀 스스로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역사 속 모든 강인했던 여성들이 걸어야 했던 길을 가기로 한다. 강인한 힘, 그것은 질서를 세우고 지키는 힘일 수도 있지만, 혼란과 두려움을 야기할 수도 있는 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스펜서>는 다이애나의 그 마음을 비춘다. 비틀거리면서도 나아가고자 했던 그 마음을. 그 마음은 우리의 마음과 같이 평범하기도 하고, 또 누구보다도 특별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와 닮고 또 다른 다이애나의 삶을 다시 한번 마주한다.

다음글 '다 계획이 있었던' 아버지의 뻔하지 않은 이야기 <킹 리차드>
이전글 <소설가 구보의 하루> : 경성과 서울, 일일과 하루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