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전당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사이트정보
home  > 영화  > 영화+비평  > 시네 크리틱

시네 크리틱

오디오 해설 영화관



영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 다양한 관점이 돋보이는
'영화평론가' 차별화된 평론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감독과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평론글은
여러분을 새로운 영화 세상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글을 통해 들여다본 새로운 영화세상으로 떠나보세요!

<로그 인 벨지움> : 고립 속에 두고 온 거울2021-12-16
로그 인 벨지움 스틸이미지

 

 

<로그 인 벨지움> : 고립 속에 두고 온 거울

 

 

문형석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이제는 언급하는 것이 식상해지는 듯 하다. 코로나는 어느새 뉴 노멀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들어맞게 우리의 삶에 고착되었다. 일상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생경해졌고 매일매일 등록되는 확진자 수치는 이제 그날의 날씨를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어졌다. 이러한 매일이 가져다준 코로나에 대한 인식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보통의 삶에 대한 기준이 대체되었음을 상기시키며 때때로 식상함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불감증을 경각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미증유의 공기는 여전히 주위를 겉돌고 있으며 종종 경험되는 것에 비추어 보면 우리는 이 친숙해져 버린 식상함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 아직 낯설게 느끼기도 한다.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유태오 감독(유태오 본인이 감독, 배우, 촬영 등 여러 역할을 오갔기에 수식어가 매번 달라져도 오해 없기를 바란다.)<로그 인 벨지움>(2021)은 이 낯설음을 상기시키며 코로나 초기를 직접 맞닥뜨렸던 당시를 대면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작년 3,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상황 속에 촬영이 중단되고 스태프들이 모두 떠나버린 벨기에의 앤트워프에서 홀로 남은 유태오 배우가 찍은 영화다. 이 영화가 가진 본질을 찬찬히 살펴보면 꽤 흥미로운 경계선 위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큐멘터리면서도 매우 과감한 픽션(유태오 배우는 여기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며 12역을 하고 특정 숏을 역재생하며 해당 씬의 현실성을 지우기도 한다.)이 가미되어 있으며 어느 지점에서는 브이로그나 숏폼(Short-form) 비디오에 가깝기도 하며 이에 기반하여 개인 프로모션 비디오 혹은 포트폴리오로 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상 중간 중간에 뜨는 해시태그는 영화를 각각 독립적인 단편들의 모음집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응집하지 않고 여러 군데 흩어진듯한 인상이 가져오는 <로그 인 벨지움>의 시각은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불러일으킨 어떤 사회적 현상을 담아내기보다 특수한 상황에 의해 고립된 본인의 모습에 더 집중한다.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이 영화는 작년 3월부터 개봉 시점인 올해 12월과는 약 19개월의 간극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19개월의 시간을 마주할 때 어떤 시간적 감각이 얽히는 느낌이 든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최근에 감상한 여러 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을 보면서 느낀 것인데 이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여태 바라보았던 시간이 깃든 이미지를 바라보는 것과 약간은 다른 어떤 시간적 감각이 생긴다. 프레임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가 아닌가에 의해 영상 속 흐르는 시간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는 것이다. 예로 어떤 현대배경의 극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고 치면 이 영상은 코로나 이전의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되짚어 보게 된다. 대체로 극영화가 미술이나 자막을 통해 어떤 시간을 지칭하지 않으면 관객은 자연스레 극의 시간을 현재로 받아들였던 것과 달리 작금의 현실에 습관처럼 깃들여진 몇몇 사물과 행동을 떠올리며 과거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좀 더 넓게 받아들이자면 아예 코로나가 없는 평행세계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나오는 인물들이나 스쳐가는 인물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가 아닌가에 의해 코로나 이전에 찍은 영상인지 아니면 코로나 이후에 찍은 영상인지 분별된다. 이 두 가지의 시간을 오가다 보면 영화관에서 흐르는 수많은 시간은 우리가 사는 현재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시간에 존재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때문에 <로그 인 벨지움>과 같은 코로나 시대를 경유하는 영화들은 영화관이라는 공간에서 흐르는 수많은 시간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을 얽어매며 영화에 새겨진 고유의 시간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여기서 살짝 시야를 틀어보자. <로그 인 벨지움>의 시간은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겪어온 관객에게 당연스레 생각되면서도 어딘가 익숙지 않다. 익숙지 않은 기분의 근간에는 19개월 전의 시간만이 아닌 벨기에라는 머나먼 타국의 공간이 풍겨낸 낯설음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까. 사실 영화에서 벨기에라는 먼 타국이 가진 공간의 성질로 인해 낯설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 그러니까 숙소 바깥의 장면은 전체 분량에서 보면 상당히 짧은 편이다. 벨기에를 배경으로 하는 분량에서 대부분은 유태오 배우가 숙소에서 머무르며 생활하는 모습을 오롯이 담는 것에 집중한다. 반대로 유태오 감독이 담은 숙소 바깥은 식료품점과 약간의 거리 숏,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밤의 거리에서 춤을 추는 자기 자신뿐이다. 여기서 문득 든 생각은 유태오 감독은 벨기에라는 공간과 시간을 애써 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촬영이 제한되어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본인의 영화 속에서 벨기에라는 장소는 이미 고립으로 치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짐작이 어느 정도 맞다면 이를 느낀 것은 벨기에에서 였을까. 아니면 영화를 만들면서 촬영본을 쭉 바라보던 편집하는 순간이었을까. 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밤의 거리에서 춤을 추는 본인의 모습은 본인의 예술적 자아를 내비치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그 공간과 시간에 대한 미련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벨기에의 모습을 뒤로 하고 유태오 배우가 서울로 진입했을 때 프레임 내의 공기가 확연히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서울이라는 자막과 인천공항의 톨게이트가 보였기에 그럴 수 있으나 이보다 진정으로 그 공간이 바뀌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배우가 외가댁에 들어설 때다. 여태껏 홀로 지내오던 배우 본인은 그 공간에서 탈출하자말자 자신과 가까운 사람, 가족들과 있는 숏을 선택한다. 영화는 벨기에의 공간과 한국의 공간을 구분하는 것을 어떤 공간의 특징으로 구분하기보다 사람으로 구분해낸다. 그리고 이에 이끌린 듯 한국에서의 유태오 감독은 끊임없이 사람을 등장시키고 이를 위해 이동한다. 그러나 몇몇 숏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숏이 숙소였던 벨기에와는 정반대의 공간적 성질을 가진 서울에서의 숏의 배치는 익숙지 않음을 부상시킨다. 카메라는 유태오 본인의 눈을 따라가며 익숙지 않은 공간에서 익숙한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을 위해 지인들을 만나는 장면과 촬영장소 등 몇몇 숏으로 이어낸다. 감독은 숏을 선택하며 영화 속 시간을 자신에게 익숙한 것으로 맞추어 내지만 그 숏들은 타인의 눈과 영화관이라는 장소로 옮겨지면서 낯선 풍경이 된다. 영화의 가장 처음 사람이 외로울 때, 그 사람은 진짜가 된다.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영화이기에 이 낯선 풍경을 통해 소소한 의구심이 든다. 유태오 배우는 벨기에의 숙소에서 자신의 의식을 정립하고 외롭지 않은 서울로 돌아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로그 인 벨지움 스틸

 

   앞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면서 과감히 픽션을 차용했다고 언급했다. 감독은 태블릿 속 분신의 질문에 대답하며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하나 명시하고 싶은 것은 영화 속 질의응답은 즉흥적인, 그러니까 입에서 나오는 말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 써 내려간 정리된 문장을 말하며 촬영된 편집본이라는 뜻이다. 더욱이 12역으로 만들어낸 장면들이기에 어떻게 본다면 (본인 심상에 대한) 재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영화는 과감히 시도하고 있는 픽션과 다큐멘터리 두 개체가 거친 화음 속에서 존재하는 상태가 된다. 이는 1년 후 다시 자신의 분신과 만날 때도 여전히 작동되는 원리다. 다만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매번 진실성에 대한 의문에 부딪히는 장르임을 생각해보자. <로그 인 벨지움>에서 유태오 감독은 제한된 자원 안에서 최대한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나름의 선택을 위해 이 부분을 기꺼이 껴안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영화의 본체인 유태오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관객에게 맡겨진다. 공교롭게도 유태오 배우는 이를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분신이 배우에게 그냥 떠나기만 하면 영화가 끝날 줄 알았냐고 묻는다. 결국 이 영화는 유태오라는 배우에게 성찰의 마침표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 셈이다. 이제 <로그 인 벨지엄> 속의 시간이 진정성을 가지게 되는 순간은 유태오라는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가느냐에 달렸다. 이를 위해 고립 속에 두고 온 거울이 떠올랐던 것일까. 마지막 씬에서 다시 앤트워프로 간 듯 숏을 붙인 까닭은 이 때문이라 믿는다.

 

다음글 <소설가 구보의 하루> : 경성과 서울, 일일과 하루 사이
이전글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 어머니의 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