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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아워 미드나잇> : 유리된 청춘2021-11-19
아워 미드나잇 스틸이미지

 

 

<아워 미드나잇> : 유리된 청춘

 

 

  심미성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무명 배우 지훈(이승훈)은 알바비를 떼이고 돈이 궁해지자 서울시 한강 순찰 프로젝트 일을 맡게 된다. 순찰을 나간 대교 위에서 불안한 얼굴로 강물을 보던 은영(박서은)을 발견한 그는 불길한 직감에 발길을 멈춘다.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은영을 지훈이 응급실로 데려간다. 그는 첫 순찰 활동에서 뜻밖에 자살을 예방한 공로로 일을 소개해준 영우(임영우)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주었다.

 

 

아워 미드나잇

 

 

이 흑백 톤의 영화는 시작한 지 절반에 가까워서야 뒤늦게 타이틀을 띄운다. 다리 위 지훈과 은영의 대면은 이 시점에서 출발했다. 도로를 쌩쌩 내달리는 차들이 소음과 바람을 일으키고, 자살 예방을 위해 순찰을 돌던 지훈의 걸음은 정확히 그것들과는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쓰러진 은영을 병원에 이송하게 된 사건 이후 지훈과 은영은 다리 위에서 다시 마주친다. 은영의 눈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텅 빈 채였고, 위태로운 그를 걱정 어린 눈길로 맴돌던 지훈은 나도 죽으러 왔다는 거짓말로 대화의 물꼬를 튼다.

 

지훈의 말이 의심스러운 것은 그가 은영을 발견하기 직전까지 허공에 대사 연습을 하며 걷고 있었던 정황에 근거한다. 은영이 그에게 자살을 결심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지훈은 직업이 배우인데 돈이 없어서라고 어색하게 말한다. 여기서 배우인데 돈이 없어서는 사실에 해당하지만, ‘그런 이유로 자살하기로 한 것은 거짓이다. 지훈은 꿈을 위해 현실을 견디는 자신에 그런대로 자족하는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훈은 은영에게 잠시 걷기를 청하고 둘은 종로의 골목을 걸어 다니며 대화를 나눈다. 은영을 위로할 목적이었던 지훈은 훨씬 많은 말을 건넨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고 말하는 지훈은 은영의 슬픔을 낭만과 긍정으로 덮을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아워 미드나잇 스틸

 

 

의문스러운 점은 영화 <시네마 천국>(1988)에서 공주를 기다리던 병사 이야기, 포지타노의 미술 씨 이야기, 무명 배우 이야기 등등을 들려주는 지훈이 그저 감상적인 대화를 나눌 뿐인지, 아니면 일종의 연기연습을 하는 중인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이 대화가 두 사람의 낭만을 위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현실적인 무게의 장면들 다음에 놓였다는 점에서 다소 급격한 선회로 보이기도 하며, 지훈이 가상의 연극 무대와 현실을 겹쳐놓고서 말을 건네는 중이라고 한다면 이 대목은 더욱 복잡미묘한 정서가 감지되는 구간이 될 것이다.

 

지훈은 은영을 위로하기 위해 경청보다 특히 말하기를 택한다. 데이트 폭력의 아픔이 있던 은영을 치유하기 위해서 지훈은 상황극을 제안하고, 험한 말을 퍼붓는 자신에게 당당히 저항해볼 것을 권한다. 하지만 은영에게 필요했던 것은 나쁜 말을 돌려주는 연습이 아니었다. 지훈과의 새벽 산책에서 약간의 상처를 회복한 은영에게 사실상 지훈은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은영을 얼마간 회복시킨 것은 불현듯 거리에 나타난 코끼리의 환상인지도 모르겠다. <아워 미드나잇>은 흑백의 화면에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그림자를 피사체 대신 촬영한 구간을 군데군데 형성해 두었는데, 상황극을 펼치는 둘의 그림자가 비친 담벼락의 촬영한 두 개의 장면, 손동작으로 동물을 표현하던 지훈이 그림자놀이를 선보이는 장면이 있다. , 사슴, 토끼, 코끼리를 차례로 흉내 낸 지훈의 노력에 은영도 잠시나마 웃음을 회복하고, 이내 두 사람은 거대한 코끼리가 거리를 지나는 때 아닌 황홀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때 코끼리는 화면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환상을 보듯 휘둥그레진 둘의 뒤편에서 커다란 그림자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아워 미드나잇 스틸

 

 

관객이 두 사람의 시선이 머무는 코끼리를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아워 미드나잇>은 단절된 시선을 담은 숏을 자주 의도해 보여준다. 가령, 초반부 밀린 알바비를 떼인 지훈이 카메라 너머를 응시하며 울음을 삼키는 장면이다. 지훈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등 뒤로 재생되고 있는 영화는 채플린의 희극이다. 서로를 등진 희극과 비극이 좀체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그려진다. 지훈과 9년을 만난 여자 친구 아름(한해인)과의 대화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한 프레임에 담기지 않으며, 간혹 시선을 알 수 없는 뒷모습으로만 나란히 담겨있다. 이 경우에도 그들의 시선은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는다.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떠들썩한 장면에서는 시선의 단절을 꽤 분명하게 드러낸다. 네 명의 친구들은 모두 시선이 타이트하게 가로막힌 프레임 속에서만 대화를 나눈다. 누구는 직장이라는 곳이 얼마나 험악한 사회인지를 말하고, 누구는 곧 결혼을 앞둬 좋은 시절이 끝났다는 푸념을 뱉지만 프레임이 부여하는 시선에서 안정적 거리의 폭은 거의 없다. 이 경우 대화다운 것은 불가능하다는 암시가 선연해진다. 오고 가는 말의 결론은 오직 몰이해의 파국일 뿐이다. <아워 미드나잇>의 청춘들은 이렇게 다소 과한 헤드룸, 가로막혀 있는 아이룸의 불안정한 숏 속에서 쓸쓸히 존재하고 있다.

 

아름의 이별 통보, 친구의 비난, 녹록치 않은 경제 환경 속에서도 지훈은 비교적 꿋꿋한 편이었다. 그 와중에 한강 순찰 프로젝트를 하며 남을 돕는 일을 새로 시작한 것조차 지훈이 가진 자신감의 발현처럼 보인다. 지훈이 처음으로 구제한(물리적인 구제) 대상인 은영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일견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지훈은 한 번 더 돌발적으로 낯선 여성을 돕게 되는데, 그는 뒤에서 잇속을 차리면서 앞에서는 예의바른 말로 치장하는 남자의 민낯을 들춰내 여성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자주 드나들던 카페에서 엿듣게 된 타인의 사정에 덜컥 끼어든 것이다. 지훈은 그 순간 진실이 여성을 구제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 여성은 지훈이 믿는 진짜 세계가 아닌 진짜와 허구(가면)가 섞인 세상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지훈은 그녀를 도운 것이 아니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이에 충격을 받은 지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리 위의 불안정한 남성을 보고도 못 본체 지나친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착각으로부터 깨어나는 중이었다. 안타깝게도 다리 위의 남성은 투신했고, 지훈은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의 말대로 지훈이 남성을 구할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구태여 장례식장을 찾아가 죄책감을 달래려는 지훈의 행동은 여전히 자신의 한계를 망각한 태도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워 미드나잇 스틸이미지

 

 

좌절한 지훈은 다리 위에서 다시 은영과 만나 자신의 수치심을 고백한다. 그 앞에서 은영은 이제야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된다. 은영이 연인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왜 그랬냐는 것이 아니라, ‘과연 자신을 사랑했던가라는 물음이었으며, 제대로 된 말들로 정확하게 이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종전에 실패했던 상황극을 이제야 실현하게 된 은영과 지훈은 이후 다리 위에서의 2인극을 시도한다. 이때 지훈과 은영을 담는 카메라는 최초로 안정된 프레임을 유지한다.

 

잠시 지훈과 은영의 안정된 숏이 지나가자마자 다시 불안정한 이전의 숏들이 반복된다. 지훈의 꿈을 짓밟던 친구의 직장, 장례식장을 들락거리며 업무 전화를 받는 영우, 뉴스 앵커 아름이 전하는 신림동 화재 소식. 이 장면들은 모두 재차 프레임에 시선이 가로막혀있다. 한편, 지하철에 잠들어 있는 지훈과 은영의 나란한 숏은 돌연 무채색에서 따뜻한 색채를 회복한다.

 

결론을 제시하기 전까지 <아워 미드나잇>은 다소 감상적인 대화들과 형이상학적 순간들이 뒤섞인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주인공(지훈과 은영)과 주변인(영우와 아름, 친구) 사이에 결계를 치는 후반부로 말미암아, 청춘의 초상은 곧장 두 부류로 분할되고 만다. 지훈과 은영이 꺼내놓은 상처가 선연한 색채 화면으로 복구됨으로써 이들의 회복이 암시되지만, 그들보다 나은 삶을 사는 듯했던 주변인의 모습에는 회복의 전조가 보이지 않는다. <아워 미드나잇>의 이러한 결구는 두 세계를 깔끔하게 잘라내 유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단지 척박한 토양에 희망을 피우고, 반듯한 현실의 가면 속 얼굴을 들출 뿐인 걸까. 정직한 대비를 이루는 결론에 이와 같은 질문이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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