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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

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 영페미는 어떻게 현재를 지속하는가2021-07-09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 이미지

 

 

 

<우리는 매일매일> : 영페미는 어떻게 현재를 지속하는가

                                                    

심미성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영페미는 누구인가

 

   영화의 후반부, 뮤지션 흐른(강정임)은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2010년에 시작되었대”라고 말한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 ‘우린 인터넷이 활발하지 못한 그때에도 분명 존재했어’와 비슷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MZ세대에겐 꽤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매김 중인 페미니즘이지만, 1990년대 운동권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영페미의 활약상은 되레 낯선 존재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선배 페미니스트의 고민은 비단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에 대한 우려만이 아니다.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가 맥락화되지 못했다는 아쉬움, 현재의 페미니즘이 역사나 선배 없이 외로이 고립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려다. 강유가람 감독은 마지막 운동권이라 일컬어지는 세대의 증인으로서 <우리는 매일매일>(2021)에 다섯 명의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소환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이미지

 

감독은 사진으로 남은 시절들을 한 장씩 넘겨 가며, 페미니즘에 몰두해온 젊은 날을 차분히 들여다본다. 운동권 단체인 줄 모른 채 젖어 들었던 풍물패의 기억, 존경받던 사회 활동가에게 성추행을 당한 경험, 말할 수 없던 것들을 설명할 언어를 제공해준 페미니즘과의 만남... 여기에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의 명예 실추와 미투 운동, 낙태죄 폐지 운동이라는 현대사의 빠른 질곡들이 지나간다. 이제 강유가람은 변화의 물결 속에 멈춰 서서 스스로의 페미니즘 역량에 대해 자문한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친구들의 현재를 카메라에 담기로 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이미지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를 만나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재직하던 키라(허은주)는 안정적이지 못한 수입과, 피해자들의 사연을 듣는 일이 벅차 전라남도 정읍에서 수의사로 사는 삶을 택했다. 대학 간 페미니즘 네트워크를 만들던 진취적인 페미니스트 짜투리(김이승현)는 제주에서 한 달 살이 집을 운영하고 있다. 여학우를 돕는 취지로 만든 대부업을 4억 규모로 성장시키기도 했던 어라(유여원)는 여성주의에 기반한 의료협동조합 ‘살림’의 상무이사가 되었으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 활동을 하던 오매(김혜정)는 같은 곳에서 부소장을 지내고 있다. 새터 반성폭력 내규를 만들던 당돌한 대학생은 인디 뮤지션 흐른이 되었지만, 음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워 몇 해 전 청소년기관에 취직해 월급이 주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결과부터 꺼내놓고 말하자면 페미니스트로 20대를 보낸 그들은 삶의 방향을 조금도 선회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고민과 선택들이 있었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여전히 그것을 실천하는 중이다. 사람하고 싸우는 게 지긋지긋하다던 키라는 소싸움 반대 운동을 위해 1인 시위에 나서고, 제주여민회 활동에 바쁜 짜투리는 현재 진행형의 페미니즘 이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해 일하고 싶어서 전기기사 자격증 공부를 했던 흐른은, 여전히 음악과 젠더라는 가치를 놓지 않고 페미니즘 역사의 필요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할 수 있는 것

 

   ‘사실’, ‘현실’, ‘진실’을 바탕으로 하거나, 또는 최대한 그것에 가깝도록 부추기는 장르인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독특한 본질로 하여금 특정한 방향의 행동을 촉구하는 방식의 목표를 삼을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정치적 소재가 자주 다뤄지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물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빈번하고 뜨거운 문제 중 하나인 젠더 갈등 속에서, 페미니즘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더욱이 그러한 목표를 가지기 쉽다. 하지만 페미니즘 다큐멘터리에서 우리가 기대했거나, 넘겨짚었던 양상을 의외로 <우리는 매일매일>에서 발견하기가 힘들다.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이미지

 

각각의 개성을 입은 다섯 갈래의 페미니즘이 과거와 오늘을 비추는 병렬적 구성으로 <우리는 매일매일>에 나타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다시피, 이 다큐멘터리는 페미니즘의 ‘지속’에 관심을 둔다. 유독 서술자의 보이스오버 비중이 많게 느껴졌던 <우리는 매일매일>에서 강유가람은 쉬지 않고 다섯 페미니스트들의 이력과 활동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록 강유가람의 자전적 경험, 혹은 기억으로 문을 연 텍스트라고 해도) 그들 사이에 있었던 특별한 애상이나, 편집된 묘사에 기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의 물증(사진과 영상 사료) 위에 덧대어진 정보들은 인터뷰를 통해 얻은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들의 나열에 가깝다. 영화의 내용과 가장 밀접한 당사자인 감독이 직접 서술을 하는 형식임에도, ‘과거의 추적’과 ‘현재의 지속’ 사이에서 일어날법한 어떤 교묘함보다, 담백한 서술이 주는 진솔한 시선이 눈에 띈다.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이미지

 

 

연대의 서사

 

   영화의 후반부이자 이 글의 첫머리에서 서술되었던 부분을 다시 빌려와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매일매일>은 손쉬운 예상과는 달리 페미니즘 이념을 강화하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보여주고자 한 것은 흐른이 이야기했던 페미니즘의 역사적 기반, 나아가 미래를 향한 지속에 달려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기존의 페미니스트에게 던지는 연대의 메시지를 함의한 다큐멘터리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 기록은 영페미의 활약으로 진일보한 한국의 페미니즘이 오직 젊음으로 가능했던 추진력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그들의 행위를 목격한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누군가는 본보기로 삼을 것이며 또 누구는 든든한 우리를 발견한 듯한 위안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스틸이미지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건 뭘까? <우리는 매일매일>은 다섯 페미니스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오매는 “인생에서 마주할 모든 국면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고민을 할 수 있는 인생”이라고 답변한다. 나이 먹어가는 것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고 고백하던 어라는 ‘나는 나이 먹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하는 강유가람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친구가 이렇게 많은데, 뭐가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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