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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리뷰

오래된 극장 2020 - 갇힌 여인 : <블루 벨벳> 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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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시네마테크 기획전 오래된 극장 2020 2020.12.29.(화)~2021.1.21.(목)

 

 

<블루 벨벳> : 이상한 세상을 보다

 

김지연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장면들로 기억된다. 그는 현실과 절묘하게 뒤섞인 상상의 세계를 매혹으로 구축하는 데 능수능란한 연출자다. 이를테면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1977)에서부터 그는 열렬한 추종자들을 거느려왔다. 갖가지 상징과 분석틀을 동원하여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이겠지만,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과 손쉬운 설명을 거부하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 그의 신자들은 입교를 맹세했을 것이다. 서사의 연속성과 논리성을 져버리며 끝 간 데 없이 나아가는 영화가 쏟아내는 불온하고 괴상하고 추하기도 한 이미지들의 연쇄는 보는 이들에게 호불호를 떠나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경험이 된다.

<블루 벨벳>(1986)은 그렇게까지 극단으로 밀어붙인 영화는 아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만큼 여지를 남기며 알쏭달쏭하지도 않고, 굳이 분류하자면 <광란의 사랑>(1990) 쪽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뭘 봤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영화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블루 벨벳>의 매력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인간의 상상, 환상, , 무의식, 그리고 그와 닿아있는 근원적인 욕망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 데이비드 린치의 주요 테마라고 한다면 <블루 벨벳>은 그 여정의 출발점에 세워 마땅할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프랭크(데니스 호퍼)가 립스틱을 칠하고 제프리(카일 맥라클렌)에게 위악을 떠는 장면이, <광란의 사랑>에 가서는 분노에 휩싸여 출정을 준비하는 전사처럼 온 얼굴을 칠하는 마리에타(다이안 래드)에게 전이된다 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이르러 베티(나오미 와츠)가 캐나다의 딥 리버 출신이라고 밝힐 때 링컨 가에 있는 도로시(이사벨라 로셀리니)의 집, 딥 리버 아파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영화는 얼핏 아름답고 평범해 보이는 세상의 이면을 들추어, 인물들의 표현에 따르면 이상한 세상의 존재를 보여주려고 한다. 오프닝 시퀀스는 이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시각적 탁월함이 드러나는 예다. 티 없이 푸른 하늘, 칠한 지 얼마 안 된 하얀 페인트가 빛나는 담장, 그림처럼 피어있는 꽃들, 마치 광고 속 한 장면인 것처럼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경찰, 화창한 날씨,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 완벽하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경들이 펼쳐진다. 정원에 있던 제프리의 아버지가 돌연 쓰러지지만, 가족들은 사건사고 같은 건 텔레비전 안에만 있는 것처럼 거기에 빠져있느라 금방 상황을 파악하지는 못한다. 그 때 카메라는 음습한 풀숲을 거쳐 땅 밑 어둠 속에서 우글거리는 벌레들을 포착하는데, 이는 지금껏 보아오던 밝고 아름다운 세상과 완전히 상반되는 장면이다.

필름느와르가 선호하는 서사구조의 형태도 이에 일부 기여한다. 호기심 많은 제프리는 하드보일드의 탐정들이 그러하듯 치명적인 여인 도로시에게 이끌려 그가 연루된 비밀, 미스터리를 추적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마약상이자 가학적 변태성욕자인 절대 악 프랭크를 알게 되고, 자기 내면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의 모습을 발견해 괴로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세상에 대해서 필름느와르가 견지하는 우울하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건 아니다. 샌디(로라 던)가 개똥지빠귀의 꿈 이야기를 해줄 때 명료하게 드러나는바, 혼란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랑의 힘이라는 내용이다. 정통 필름느와르의 주인공들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말이 아닌가. 제프리와 샌디는 누가 봐도 중산층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밝고 명랑하게 자란 모범생이고, 그들의 세상은 비정한 폭력과 범죄로 얼룩져 있지도 않다. 시련은 있었을지언정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좌절하거나 고독 속에 살아가기엔 그들은 너무나 의욕이 넘치고 젊어 보인다.

하지만 이상한 세상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영화는 세상을 정확하게 선과 악, 빛과 어둠, 순수와 범죄처럼 양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들은 언제라도 어느 쪽에든 정체를 드러내고 간섭할 수 있는 형태로 이 자리에 함께 도사리고 있다. 그런 흔적들은 이 영화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낮에도 밟고 선 땅 밑이 캄캄하듯이 샌디는 자기 방에서 아버지의 서재에서 오가는 온갖 범죄에 관하여 들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첫 등장은 정원의 어둠 속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제프리를 기꺼이 범죄의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프리 역시 프랭크를 혐오했으면서 도로시에게 그와 같은 행동을 한다. 샌디로부터 네가 탐정인지 변태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마침내 사건이 매듭을 짓고 제프리와 샌디는 사랑을 성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사랑의 상징인 개똥지빠귀는 어두운 땅 속에서 번들거리던 벌레를 물고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블루 벨벳>의 특별함은, 프레임을 벗어나 때로는 줄거리까지 장악하고 때로는 영화 전체를 압도해버리기도 하는 힘이 있는 장면들에서 올 것이다. 프랭크의 조력자는 선 채로 죽어버리지만 그 강렬한 인상 앞에서 사실성을 운운할 여지는 없다. 혹은 한낮의 풀밭 위에서 사람의 귀를 발견하는 것처럼 평범한 것들의 결합으로 순식간에 생경함을 자아내는 장면, 옷장 안에 숨어서 방을 엿보는 눈동자처럼 금기를 실천하는 장면, 사건을 향해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것처럼 사건 해결 과정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귀 클로즈업, 위급상황을 촛불이 꺼지는 숏으로 이어붙인 대담한 장면전환 같은 것들이 이 영화에 있다. 뿐만 아니라 구로사와 기요시의 공포, 불안, 불행 같은 것들이 커튼을 흔들기 이전에 <블루 벨벳>의 붉은 커튼이 있었다. 제프리가 도로시를 찾아가는 장면마다 카메라가 일부러 시선을 돌려 바라보는 커튼은 누군가 여기 숨어있는 걸까 하는 의혹으로 순간적인 긴장감을 안겼다가 아무도 없다는 게 확인되므로 이내 거두어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때부터다. 커튼을 살랑거리며 이 방 안으로 살그머니 들어온 건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물들이 노래하기 시작하면, 현실은 순식간에 환상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도로시가 슬로우 클럽의 무대 위에 나타나 블루 벨벳의 첫 소절을 끝내기도 전에, 우리 모두 그 여인의 관능에 사로잡힌다. 아름다운 얼굴, 새빨간 입술, 중저음의 목소리. 마침내 푸른 조명이 그를 감싸면 도로시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후 블루 벨벳이 디제시스와 비디제시스를 넘나들며 반복해 들려올 때마다 여인이 품은 비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세계에 매혹이 더해진다. 그리고 벤(딘 스톡웰)을 잊을 수 있을까? 한 손에 담뱃대를 우아하게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조명을 마이크 삼아 나른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부르는 인 드림스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 노래는 이별을 슬퍼하며 꿈에서나마 연인을 만나는 애틋한 넘버가 아니다. 가구라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단출해서 여염집 같지도 않고 가게 같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연, 잔뜩 찌푸린 채 가사를 읊는 프랭크는 시한폭탄처럼 언제 화를 내도 놀랍지 않을 모습이고,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처럼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여인들과, 술 아니면 약에 취한 듯이 소파 위에 올라가 흐느적거리는 남자가 있다. 이 기괴한 광경엔 가사가 추구하는 서정이 없다. 제프리를 끌고나간 프랭크가 꿈속에서 나는 너와 같이 걸을 거야!”라는 가사를 읊으며 목에 칼을 들이댄다. 무력한 여인은 울부짖고, 크로스 드레서로 보이는 일행은 춤을 춘다. ‘인 드림스가 꿈이라면 악몽이고, 모순을 넘어 협박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줄거리에 앞서 풀밭 위의 귀 이미지를 떠올리거나, 제목이자 동명의 노래이며 도로시의 옷이고 거기에서 잘라낸 천 조각인 블루 벨벳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단순히 그 이미지들이 낯설거나 충격을 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사, 나아가 이 영화의 테마와 조응에 성공해서다. 영화의 주요 넘버들을 잊지 못하고 몇몇 가사들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그 가사들로 인해 소환되는 장면들이 있다면 그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영화를 온전히 보는체험으로 깨닫게 해주는 영화들이 있다. <블루 벨벳>도 그런 영화들 중 하나가 되어서 관객에게 떨치기 어려운 매혹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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