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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리뷰

미국 인디의 전설: 존 카사베츠 & 짐 자무시 <미스터리 트레인> <지상의 밤> 20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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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디의 전설: 존 카사베츠 & 짐 자무시 2020.12.5.토~12.16.수 매주 월,화요일 상영없음

 

<미스터리 트레인><지상의 밤> :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한 예찬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짐 자무시 감독의 <미스터리 트레인>(1989)<지상의 밤>(1995)은 소설로 치면 중단편소설 모음과도 같은 형태의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몇 명의 주인공의 비일상적인 위기와 그것을 극복하는 일종의 영웅담이 대부분의 상업 영화의 주류 서사라고 할 때, 자무시는 거기에 철저히 선을 긋고 거리를 두려 한다. 다수의 이야기, 다수의 주인공, 일상적인 상황, 게임과 승부의 요소가 전혀 없는 이야기, 그래서 딱히 승리도 패배도 없는 결말. 게다가 이 이야기들에는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생의 의미나 철학, 교훈 같은 게 없다. O. 헨리 스타일의 단편소설처럼 엔딩에 기발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심오한 상징이나 은유도 없다. 그저 자무시는 배우들의 몸짓과 말들에 집중하면서 거기서 나오는 화학 작용의 순간,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하는 것에 전력을 다한다. 그것은 언어로 표현되기 힘든, 음악적인 아름다움의 순간과 비슷하다.

 

   <미스터리 트레인>은 록큰롤의 전설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았던 미국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물들은 멤피스에 와서 아케이드 호텔이라는 허름한 숙소에서 숙박을 하게 되고, 새벽 2시쯤에 라디오 방송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Blue Moon’이란 노래를 듣게 되고, 다음 날 아침 총소리를 듣게 되고, 멤피스를 떠난다. <미스터리 트레인>의 인물들은 같은 장소, 같은 시간대에 우연히 잠시 머물러 있지만 다시 각자의 삶으로 흩어진다. 여기서 무슨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우리에게 말로 표현되기 힘든 어떤 기억과 감정, 인상들만을 남길 뿐이다.

첫 번째 이야기 요코하마에서 멀리의 주인공은 어린 일본인 남녀 커플 준(나가세 마사토시)과 미츠코(쿠도 유키). 둘은 록큰롤 마니아이며 멤피스로 흔히 말하는 성지 순례를 왔다. 미츠코는 외국인 여행자들 특유의, 속성으로 배운 영어 회화 실력을 보여주는데, 말하기는 괜찮지만 듣기가 잘 안 되서 우리에게 소소한 웃음을 준다. 기차역에서 만난 흑인 할아버지의 시가에 불을 붙여주고 아리가또라는 감사의 인사를 들을 때 기뻐하는 일본인 미츠코. 엘비스 동상 앞에서 같이 담배 한 대를 번갈아 피우면서 록큰롤의 왕은 엘비스네 칼 퍼킨스네 옥신각신하다가 키스를 원하는 미츠코의 입술에 준은 키스로 담배연기를 불어넣어 주고, 키스가 끝나자 미츠코는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자무시의 영화는 이런 사소한 디테일의 아름다움,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로 채워진다. 호텔 벨보이에게 팁 대신 건네는 일본 자두, 굳이 발가락으로 라이터를 들어서 담뱃불을 붙이는 것 등등.

두 번째 이야기 유령은 엘비스의 유령을 보게 되는 여자 루이사(니콜레타 브라스키)의 이야기다. 앞서 엘비스 팬이었던 미츠코는 엘비스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는데 루이사는 딱히 엘비스와 록큰롤의 팬이 아닌 것 같은데도 엘비스의 유령을 보게 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녀는 남편의 관과 함께 이탈리아로 돌아가려 한다. 비행기 문제로 아케이드 호텔에 묵게 된 그녀는 디디(엘리자베스 브라코)라는 미국인 여성과 우연히 마주치고 같은 방을 쓰게 된다. 디디는 세 번째 이야기에 나오게 될 남자 조니(조 스트러머)의 애인이었다. 왜 그녀가 조니와 헤어지게 되었는지는 세 번째 이야기 로스트 인 스페이스를 보면 짐작 가능하다. 조니는 실직을 했고, 술이 만취한 상태에서 총을 갖고서 자꾸만 사고를 친다.

 

   <지상의 밤>LA,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의 밤을 달리는 택시 안에서 택시기사와 손님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영화다. ‘택시와 담배라고 부제를 붙여도 될 정도로 그들은 택시 안에서 담배를 계속 피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시종일관 껄렁하게 유노?’같은 슬랭을 내뱉으며 줄담배를 피워대는 젊은 여성 택시기사(위노나 라이더)와 그녀를 영화배우로 캐스팅하려는 영화 캐스팅 담당자(지나 롤랜즈). 손님은 기사에게 무비스타가 되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화려하지만 내게 익숙하지 않은 미래, 초라하지만 내게 익숙한 미래. 무엇이 더 나은 것일까.

뉴욕의 택시에선 동독에서 온 서투른(뉴욕 지리도 모르고, 운전도 서투르며, 영어도 서투르다) 택시기사와 브룩클린 출신의 흑인 남자 손님이 있다. 손님은 참다못해 자신이 택시를 운전하게 된다. 그가 내뱉는 흑인 슬랭과 욕설이 인상적이다. 누가 손님이고 기사인지 알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은 예상치 못한 훈훈한 결말로 이어진다.

파리의 택시에는 코트티부아르에서 온 흑인 남성 택시기사(이삭 드 반콜)가 시각 장애인 여성(베아트리스 달)을 손님으로 태운다. 그는 같은 아프리카 출신의 남자 손님들에게 코트티부아르 출신이라며 차별적인 말을 들은 참이었다. 그런데 여성이자 시각 장애인 손님이 택시에 타자 그는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한 말들을 건네기 시작한다.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란 게 있는가.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로마의 수다쟁이 택시기사(로베르토 베니니)는 검은 옷을 입은 남성 노인을 태우게 되는데, 그가 아니라고 말해도 기사는 손님을 신부님으로 착각하며 막무가내로 고해성사를 한다. 온갖 음담패설에 손님도 관객도 혼이 나갈 지경. 헬싱키의 기사는 실직을 한 세 명의 사내를 태우고서 그들의 슬픈 처지를 들어주고, 그들보다 더 슬픈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날이 밝아오며 영화도 끝이 난다.

 

   이 두 편의 영화, 아니 이 여덟 편의 중단편영화들은 하나의 주제, 하나의 감동을 위해 이야기의 요소들이 봉사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제각각 빛나는 디테일들이 모여서 여덟 편의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플롯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나를 두렵게 합니다. 그보다는 과정 안에 뭔가 있다는 것이 나를 더 흥분시키죠. 내가 원하는 것은 이야기를 찾기보다 디테일을 첨가하고 모아서 퍼즐이나 그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자무시의 말은 자신의 영화에서 전체보다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는 앞서도 말했지만 언어로 표현되기 힘든, 음악적인 아름다움의 순간과 비슷하다. 그래서 자무시의 옴니버스 영화들은 평론이 무용해지는 영화들이기도 하다. 뭔가를 해석하려 하거나, 의미를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투명하게 관객에게 주어진다. 그저 영화가 주는 인상과 정서를 기억하면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런 경향은 무려 열 한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커피와 담배>(2003)에서 더욱 심화된다. 보고나서 몇 년이 지나면 무슨 장면이 있었는지 무슨 대사가 있었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겠지만, 다시 보게 되면 자무시 특유의 유머와 아이러니, 약간의 서글픔에 속절없이 말려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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