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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리뷰

젊은 미국 작가들 <미스터 스마일>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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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젊은 미국 작가들 2020.9.29.(화)~10.11.(일)

 

 

<미스터 스마일> :배우와 캐릭터

이광호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돌려 말할 것 없이, 범죄에 능한 노인을 단독 주인공으로 설정한 뒤 느리고 다정한 호흡으로 세계를 구성하는 <미스터 스마일>(2018)의 무던한 내러티브에서 특별히 눈여겨볼 만한 인장이란 잘 포착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미학적 쇼크를 애써 품지 않는 그 범상한 표면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이 영화로 끌어당기는 하나의 강력한 힘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인 포레스트 터커일 것이다. 연쇄적으로 은행을 터는 그의 행보에 부여된 온화한 미소와 점잖은 몸짓이라는 외연적 무기는 강탈 영화에서 관습적으로 채택되는 캐릭터의 표준에서 벗어나 있지 않던가. 노인과 관련된 회상과 향수적인 기운을 다루면서도 전반적으로 깊은 우울이나 상념에 빠지기보다는, 시종 경쾌하고 발랄한 리듬을 갖춘 듯한 이 영화의 인상은 바로 그 포레스트의 성격과 닮아 있지 않은가. 사소하게는 국내에서 번역된 제목마저 신경이 쓰인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원제인 '노인과 총'에서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제목으로의 변화를 가리키며, 그것을 포레스트의 미소가 배급업자에게 미친 영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그러니 <미스터 스마일>에 대해 말하게 된다는 것은 포레스트 터커라는 인물의 역장 아래 형성된 규범들 내지 그것이 구축하는 세계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아니 어쩌면 상술한 특징들을 굳이 곱씹지 않고도, 영화에 대해 나름의 애정이 있는 이들이라면 <미스터 스마일>의 주연배우를 떠올리게 된다. <내일을 향해 쏴라>(1969)를 통해 스타의 자리에 올라, 극 중 이름을 딴 선댄스 영화제로 이제는 빛나는 신예의 발굴지를 마련하기까지 한 노년의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한때 할리우드를 호령했던 배우인 로버트 레드포드의 포근한 인상이 데이빗 로워리의 모나지 않은 연출과 적절한 조화를 이룬 결과로 향하며, 그에 따라 <미스터 스마일>은 로버트 레드포드와 포레스트 터커라는 영화 안팎의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고별사이자, 무엇보다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헌사를 바친 영화로 주목받는다. 요컨대 <미스터 스마일>에서의 포레스트 터커가 힘을 뿜어내고 있다면, 그 힘의 근원은 터커를 연기한 배우가 다른 누구도 아닌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점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은퇴작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가 적극적으로 영화의 제작에 관여하였으며, 감독 데이빗 로워리 또한 신사다우며 기품 있는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말을 이곳저곳에서 숨기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그 사실들이 나에게는 문제가 된다. 개인적인 영화 관람의 기호와 세대적인 차이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배우는 그리 친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출연작 중 가장 대중적이라고 이야기되는 <내일을 향해 쏴라>, <스팅>(1973)을 보지 못했고, <위대한 개츠비>(1974)는 동명의 바즈 루어만 연출작으로 훨씬 익숙하게 다가오며, 케이블 채널에서 보았던 <라스트 캐슬>(2001)은 교도소 이야기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엉뚱하지만 나에게 로버트 레드포드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에서 잠시 등장했음에도 강력한 인상을 남겼던 인물인 알렉산더 피어스 국장으로 훨씬 가깝게 다가와 있는 배우다.

 

   나는 이 영화의 첫 머리에 뜨는 자막, "이 이야기 역시 대부분 사실이다.”(This story, also, is mostly ture)를 보며 <내일을 향해 쏴라>를 떠올리지 못하고, 형사 존과 터커가 만나는 장면에서 콧잔등을 치는 제스처를 보면서도 그것이 <스팅>의 오마주인지를 알 수 없으며, 영화의 말미에 제시되는 터커의 탈옥 장면들 중 하나가 로버트 레드포드가 출연한 <체이스>(1966)의 한 장면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다. 다소 고집스레 나열했지만, <미스터 스마일>을 본 관객들 중 나와 비슷한 감응을 받은 이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아리송함을 얼마간 불만 섞인 질문으로 바꿔볼 수도 있겠다. 만일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배우에 대한 기억이 없는 관객에게 <미스터 스마일>은 어떻게 다가올 수 있을까? 그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관객은 <미스터 스마일>을 즐길 수 없는 것일까?

 

   배우와 관련해서라면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터커의 온화한 품성을 돋보이게 해주는 쥬얼을 연기한 씨씨 스페이식 또한 오랜 경력을 가진 배우인데, 왜 그는 우리에게 로버트 레드포드와 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일까.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미스터 스마일>을 이끄는 힘은 극 중 인물인 포레스트 터커로부터 발생한다. 은행 강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느긋하고 품격 있는 터커의 범상치 않은 인상과 행보는 영화 속의 다른 인물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 차이의 간극이 너무나도 벌어져 있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의 관심은 모조리 터커에게로 집중될 정도다. 요컨대 영화 속 포레스트 터커의 힘이 그를 연기한 로버트 레드포드보다도 훨씬 강력하다는 것이다. 나는 포레스트 터커를 연기한 배우가 로버트 레드포드가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어떤 노년의 배우가 연기했더라도 영화를 보는 데 있어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포레스트 터커는 그를 연기한 배우가 로버트 레드포드라서가 아니라, 이미 영화 속에서 단순한 인물을 넘어 환상적인 캐릭터처럼 인식된다.

 

   종종 영화와 세상을 각각 환상과 실제로 구별하는 우리의 습관적인 판단을 빌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16번의 탈옥에 성공한 포레스트 터커는 누구보다도 영화처럼 사는 남자다. 이와 관련해 터커를 쫓는 형사인 헌트의 추적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헌트의 추적은 지도를 펼쳐두고 터커의 행적을 표시하는 것으로 출발해, 그가 지폐에 남긴 메시지를 보고, 그의 과거를 알고 있는 도로시의 증언을 듣고, 수사기록에 남은 그의 과거 초상 사진들을 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인상적인 것은 헌트의 점진적인 수사 과정에서 그가 터커의 흔적과 기억을 차근차근 쌓아올리며 무의식적으로 터커에 대한 낭만화 작업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우연한 계기로 터커를 만난 헌트가 그를 체포하지 않고 보내주는 상황은, 그저 하나의 인물을 뛰어넘어 우상적 존재로 각인된 터커의 위치를 시사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처럼 <미스터 스마일>에서 묘사되는 포레스트 터커라는 인물의 존재는 한때 상상과 환상으로 불리며, 우리를 끌어당기고 압도하는 힘을 지녔던 영화의 상태에 대한 은유를 환기시키는 구석이 있다. 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시대적 배경을 과거로 지정하고,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걸출한 이력을 지닌 배우를 기용해 향수적인 기운을 자아낸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가 노스탤지어를 수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배우의 고별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확장된 방식으로 영화 자체에 대한 원형적인 '한때'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까. 영화의 종반부에 터커의 탈옥 장면으로 나열되는 '고전영화'스러운 몽타주들과 중반부 노인 갱단의 거사 이후 출현하는 <수색자>(1956)의 도입부를 위시한 화면구도, 종종 끼어드는 고전영화 장면들은 바로 그러한 '한때'를 추억하고 있다. 그러니 터커가 권총을 소지함에도 결코 격발하지 않는 것은, 서부극으로 대표할 수 있는 영화의 '한때'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함을 은유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미스터 스마일> 안에 또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한때 특권적 위치를 점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영화의 사멸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이 영화는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오마주와 이력을 새겨 넣으면서, 동시에 한때 신화적이고 상상을 일으키는 환상으로 인식되던 매혹적 영화에 대한 향수병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니 터커가 쥬얼의 말을 듣고 17번째 탈옥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터커의 출소까지 감옥에서의 삶이 묘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신비스러우며 신화적 캐릭터인 터커에게 소위 '현실적인' 삶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출소 이후 곧장 '영화적인' 세계로 돌아간다. 변함없이 유쾌한 모습으로 은행에 걸어 들어가는 터커의 마지막 모습이 남긴 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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