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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리뷰

젊은 미국 작가들 <그녀들을 도와줘>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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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젊은 미국 작가들 2020.9.29.(화)~10.11.(일)

          

 

        <그녀들을 도와줘> :텍사스의 영향 아래 있는 여자들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그녀들을 도와줘>(2018)는 몇 마디 말로 정리가 가능한 영화가 아니다. (주로) 남성 영웅을 내세워 세계를 구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몇 마디 말, 몇 가지 아이디어로 요약 가능한 하이 컨셉트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있다면, 정 반대편에는 로우 컨셉트의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있다. 몇 마디 말로는 결코 요약되지 않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들 말이다. 그런 영화들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스타가 아니고 영웅도 아니며, 어느 언론에서도 어느 매체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평범한 혹은 그 이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삶은 정말 평범하고 시시한가? 굳이 영화로 찍지 않아도 될 만큼 가치 없는 것인가? 로우 컨셉트의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기 위해서 로우 컨셉트의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들을 도와줘> 역시 그렇다.

 

   이 영화의 배경인 식당 더블 웨미의 웨이트리스 근무 수칙 1조에 이런 말이 적혀 있다. ‘NO DRAMA’. 드라마 찍지 말라, 그러니까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튀는 행동을 하지 말라, 대충 이런 뜻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녀들을 도와줘>에는 드라마가 넘친다. 90분이라는 짧은 상영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드라마를 압축해서 우겨넣는 게 가능한지 실험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우리의 주인공, 식당의 매니저 리사(레지나 홀)에게는 관리하고 수습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그녀는 더블 웨미 라는 소우주의 슈퍼히어로다. 직원들과 손님들, 그들의 대소사, 거기에 얽힌 그들의 시시콜콜한 사정들과 감정들, 식당 안의 여러 문제들, 메인 빌런이라고 부를 만한 식당 주인(어느 일터이건 만국 공통인 것 같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리사 자신의 감정까지도 그녀의 관리 대상이다. 차 안에서 리사가 눈물을 닦으며 시작하는 영화는 그때부터 롤러코스터의 속도처럼 달려 나간다. 우리가 흔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하루라고 부르는, 분주하고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감각을 <그녀들을 도와줘>는 제대로 구현해낸다. 리사는 슈퍼맨처럼 초능력은 없지만 너그러움, 친절함, 공감 능력, 공과 사의 경계를 명확히 지키는 것, 선을 넘는 행동에는 강하게 대처하는 단호함,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애매하게 오가면서 짜내는 꼼수 등의 덕목으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 소우주의 무질서, 엔트로피는 점점 증대하고 그 끝에 남는 것은 리사의, 그리고 그녀를 지켜본 우리들의 탈진과 멘탈 붕괴다. 그리고 하나의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이 소우주의 문제는 무엇인가? 왜 저 동네는 저 지경인가? 나는 영어를 모르고 당연히 사투리도 알아듣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곳은 어디인가 알 수 없었지만 영화 속 자동차의 번호판에 적힌 단어를 발견하고는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TAXAS. 아아 텍사스구나...

 

   <그녀들을 도와줘>의 배경이 텍사스란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이 여러모로 우 편향적인 국가이긴 하지만, 텍사스는 미국 안에서도 특히 더 우 편향적인 지역으로 유명하다. 한국으로 치면 TK의 느낌? 개척자의 후손들, 노예제를 지지했던 역사, 공화당의 텃밭, 카우보이, 레드 넥, 총기소지 옹호, 잦은 사형집행, 거칠게 쌩쌩 달리는 차들, 수많은 교회들, 넘치는 동네부심(‘TAXAS’라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등등...

<그녀들을 도와줘>의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이런 텍사스의 중력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일단 더블 웨미의 웨이트리스들의 의상부터가 문제다. 미국의 웨이트리스라는 직업이 기본급 외에 손님들의 팁을 부수입으로 챙겨갈 수 있다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문제는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서 남자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와 웃음을 팔아야 한다는데 있다. 자연히 웨이트리스들은 성추행, 외모 비하 같은 상스러움이 넘치는 여성혐오적인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들을 도와줘>는 이런 환경이 있고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저학력과 저소득(닭과 달걀 중 뭐가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도 모른다. 그저 꼬리를 물고 돌고 돌 뿐이다)의 굴레에 빠진 노동계급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다. 소소한 저항의 순간들도 있지만(이는 그나마 영화 속의 웃음 포인트이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다) 대부분의 순간들에서 그녀들은 그걸 감내해야만 한다.

 

   더블 웨미 안에서의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가면, 그나마 휴식 같은 에필로그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들에게 주어진 직업 선택의 자유란, 더블 웨미 같은 개인 소유 자영업자의 그렇고 그런 식당과 맨케이브란 이름의 프랜차이즈화 되어 있는 그렇고 그런 식당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뿐이다. 리사와 웨이트리스 대니엘(샤이나 맥헤일), 마시(헤일리 루 리차드슨)는 맨케이브의 면접을 보는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옥상에 올라가 안주도 잔도 없이 깡술을 병째로 마셔댄다. 더블 웨미에서처럼 건물 밖으로는 분주히 지나가는 차들이 가득한 고속도로가 있고 차들의 소음이 들려온다. 하늘은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고 있다. 이 엔딩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한 마디로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다시 같은 직장에서, 자매애(Sisterhood) 속에서 울고 웃으며 일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아니면 가끔 연락이라도 하며 만날 수 있는 사이로 남을까. 그것도 알 수 없다. 이 옥상이라는 장소는 열린 공간인가, 닫힌 공간인가. 야외를 향해 탁 트인 환기의 의미를 가진 공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곳이기도 하다. 그녀들의 머리칼을 흩트리는 바람은 시원함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련인가. 흐린 하늘은 곧 갤 것인가, 아니면 비가 쏟아질 것인가. 마지막으로 그녀들은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는 해방감에 지르는 함성인가, 아니면 참다 참다 터지는 비명인가. 그것 또한 알 수 없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녀들이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이다. <그녀들을 도와줘>는 눈물을 닦(아야 하)는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소리를 지르는 여자들의 모습으로 끝난다. 감정의 억제를 요구하는 상황으로 시작해서 감정의 발산으로 끝을 맺는다. 희망이나 절망의 편 어디에도 서지 않으면서 관객들에게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지에 대해서 어떤 강요도 하지 않는 이 엔딩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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