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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리뷰

서머스페셜 2020 <이창> 20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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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스페셜 2020 2020.8.4. 화~ 8.26. 수

 

 

<이창>: 미장센의 콘티뉴이티

 

심미성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컬러영화의 도래는 단숨에 이뤄지지 않았다. 테크니컬러사가 영화계에 감법 프로세스를 소개해 색채 영화의 가능성을 연 때는 1920년대였다. 그러나 상업영화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의 첫 컬러영화가 1948년작 <로프>이며 그 후로도 여러 편의 흑백 필름을 남겼다는 사실로 미루어보건대, 이 시기의 컬러 영화와 흑백 영화는 공존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흑백의 열차가 도착하는 영상을 보고 혼비백산했던 관객들은 컬러 영화의 도입이 영화의 현실성과 몰입감을 극대화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실상은 그 반대였다. 영화 속의 컬러는 현실과 가까워지기보다는 사치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고, 내러티브의 몰입을 방해하는 기술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때문에 뮤지컬과 코미디 영화와 같은 스펙터클한 장르를 중심으로 색채 영화 기술이 채택되었다. 내러티브를 지켜내려는 할리우드의 가치에 부응하기 위해 컬러영화는 계속해서 기술을 보완했고, 마침내 컬러영화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했다(1979년 컬러영화로 제작된 미국영화가 96%에 이르렀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이 제작된 1952년은 컬러영화가 부흥하던 시기였다. 언급했던대로, 고전기 할리우드의 관습은 컬러를 이질적인 것으로 대했다. 과시적인 색채는 테크놀로지를 향한 찬양으로 여겨졌다. 그 때문에 단순히 색채만을 위한 색채 사용을 거부했고, ‘색채의 창조적인 사용이 강조되었다. 당시 상업영화 감독으로 이름난 히치콕의 <이창>은 테크니컬러의 기술을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을까?

 

어느 여름날, 사진 기자 제프리(제임스 스튜어트)는 사고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다. 6주간 꼼짝없이 집안에 틀어박힌 그의 불평에 근거해, 영화 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그가 깁스를 풀기로 한 일주일의 시간 사이에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제프리의 특출난 호기심과 의심하는 직업적 기질은 그를 이웃집 창문으로부터 살인사건을 유추하도록 만든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가 이끄는 긴장감의 종류는 무방비 상태의 관객을 깜짝 놀래키는 서프라이즈가 아닌 시각적인 단서로부터 촉발되는 서스펜스다. 한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 덕에 이웃집 창문들은 모두 활짝 열려있다. 훔쳐보기에 대한 경고는 영화 속에서도 수차례 언급되지만, 결국 제프리를 타박하는 두 명의 여자는 어느 시점 이후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조력자가 되어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이창>이 창의적인 화면적 구성을 이뤄냈다는 점은 이미 자명하다. 하나의 고정적 위치에 못박힌 주인공이 최소 7개가 넘는 이웃집 창문을 들여다보게 된 것. 이로 인해 카메라는 화려한 쇼트 편집을 사용하기는 어려워졌다. 제프리의 시선에 동참하게 된 관객은 오로지 프레임(영화의 프레임) 속 프레임(이웃집 창문)에 자리한 일방향적인 화각만을 얻게 되며, 정중앙 강박의 포커스가 사라진 사건의 일면만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은 되레 히치콕식 서스펜스에 이바지한다. 쇼트의 형태가 몇 가지로 단출해진 반면 관객들은 창문으로부터 7개가 넘는 다채로운 스크린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동시다발로 진행되는 여러 개의 개별 서사들은 하나의 주요 사건에 단서로, 또는 방해 요소로 작용하며 서스펜스를 쌓아가는 데 효과를 낸다.

 

훔쳐보기가 어떤 죄의식의 상태를 동반하는 것이라면, 관객은 제프리의 공범이 된다. 그가 자신의 의심에 불씨를 지필 단서를 포착해 훔쳐보기를 끊을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면 몰입은 강화된다. 그는 본격적으로 망원경과 망원렌즈 카메라를 동원해 이웃의 수상쩍은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하고, 이러한 화면상의 변주(망원렌즈를 통해 보는 제프리의 시선을 비네팅 기법으로 보여주는 것)는 맨눈으로 불가능했던 클로즈업의 기능을 대신한다. 영화가 발표되던 당시에는 히치콕의 상업적 이미지에 가려진 작품이지만, 훗날 누벨바그가 재발견한 비평적 접근은 금세 <이창>을 마스터피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이창>의 훔쳐보기와 관객이 영화를 보는 방식의 유사성을 거론한 접근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창>의 독보적 성취다.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스토리와 함께 제프리와 리사(그레이스 켈리)의 로맨스라는 또다른 스토리가 진행된다. 거의 모든 히치콕 영화가 서스펜스와 로맨스를 결합하고 있지만, 이 두 가지 서사가 균등한 무게로 진행된 영화는 많지 않다. 그의 어떤 영화는 로맨스가 서스펜스의 부드러운 브릿지로 기능하기도 하며, 또 어떤 영화는 마치 이 모든 서스펜스가 결국 로맨스의 성공적 결말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창>이 시도한 제프리와 리사의 로맨스는 조금 다르게 살펴보고 싶다. 그것은 컬러영화의 장점을, 히치콕 자신이 목표로 한 서스펜스와 로맨스의 장르적 성취에 창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초반부 제프리는 리사와의 연인 관계에서 유일한 문젯거리가 다름 아닌 그녀의 완벽함이라 거듭 피력한다. 유능한 사진기자인 제프리는 자신의 직업적 열망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몸을 내던지는 인물이다. 다리의 상해도 거기에서 왔으며, 비록 해를 입었다한들 그는 자기 삶의 방식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그에 반해 리사는 빼어난 외모는 물론이고 매일 마다 아름다운 옷을 바꿔 입는 의상 디자이너다. 리사는 제프리와의 행복한 결혼을 꿈꾸며 그를 설득하지만 제프리는 자신의 거친 삶에 그녀가 절대 동행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토록 서로 다른 남녀의 가치관은 대사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명징하게 드러난다. 히치콕은 이 영화에서 리사의 세련미, 우아함, 아름다움을 위해 그녀의 의상 표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 결과 리사의 의상은 그 자체로 하나하나의 작품처럼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색채영화 <이창>에 풍부한 감수성을 불어넣는 장치는 첫째로 화려한 의상이었다.

 

드레스와 하이힐, 악세서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던 리사의 착장은 극의 중후반으로 향할수록 조금씩 단조로워진다. 이러한 시각적 표현은 당연하게도 제프리가 품은 의심의 세계에 그녀 역시 발을 들이게 되는 시점 이후에 도드라진다. 이웃집 창문이 스크린이라면 유일한 관객이던 제프리의 옆자리에 리사가 착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휠체어에 앉은 제프리 앞에 대각선으로 누워 함께 창밖을 응시하는 리사의 투 샷은 <이창>의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이때 리사의 가방에 편안한 잠옷과 슬리퍼가 준비된 사실 또한 의심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리사를 암시한다. 본격적으로 그녀가 대담성을 발휘해 이웃집에 잠입한 시점의 의상은 전과 확연하게 다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풀세트를 고수하던 이전과 달리 간편한 원피스 드레스와 진주 목걸이로 단순화되었는데, 이것은 제프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모험의 영역으로 그녀 스스로 진입하게 되었다는, 간과할 수 없는 시각적 단서다. (하물며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리사는 가장 편안한 차림새로, 그러면서도 여전히 세련된 채로 있다.)

 

   그녀의 모험정신으로 서스펜스는 정점에 이르렀고, 그와 함께 로맨스의 성공적 활로까지 열리게 되었다. 막연한 의심이 살인사건으로 기정사실화되는 순간에 제프리는 비로소 창문 밖에 있다. 창가에서의 범인과 실랑이 끝에 그가 다시 휠체어에 앉게 된 결말을 고려하면, 이 추락은 영화 속에서 단 한차례 이루어진 자리의 이동이다. 그것이 서스펜스의 해결과 동일한 지점에 놓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종전까지 쌓아올려진 긴장감이 이 구간에서 완전한 해방감으로 전치된다. 서스펜스와 로맨스 각각을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였던 서사는 이렇게 교묘히 얽혀 결합을 이룬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걷힌 블라인드가 다시금 내려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던 스펙터클한 여름날의 이야기가 끝났다. 평온한 사생활의 경계를 되찾은 블라인드 내부에서 제프리와 리사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며, 영화라는 무대의 가려진 커튼을 확인한 관객은 이제 객석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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