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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리뷰

월드시네마 2020 -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적과 백> 2020-05-18
첨부파일월드시네마 - 오디세이2.jpg (1 MBytes)
세계영화사의 위대한 유산, 월드시네마 2020 2020.5.19.화~6.10.수 매주 월요일 상영없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와 떠나는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적과 백>

한창욱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미클로슈 얀초의 대표작 <적과 백>(1967)은 헝가리와 옛 소련이 합작하여 러시아 10월 혁명 5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하지만 소련은 상영을 금지했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혁명 기념작인데도 불구하고 혁명을 기념할 만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러시아 정부군(백군)에 맞선 저항군(적군)의 입장에서 찍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정부군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다. 정부군은 저항군을 마치 놀잇감처럼 대하면서 그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그것은 혁명적 행위라기보다는 잔혹한 유희처럼 보인다.

 

  <적과 백>의 살육 현장은 러시아 서부에 위치한 볼가강을 사이에 두고 재현된다. 볼가강의 지류 중 하나인 그곳의 수심은 깊지 않고, 유속은 느리다. 강물의 얕고 느린 움직임은 빈번하게 출현한다. 그곳은 곧 무덤이기도 하다. 정부군은 저항군을 강물에 빠뜨린 뒤 총과 창으로 처형한다. 이 영화에서 처형 장소는 주로 성벽과 거리, 강인데, 성벽보다는 거리와 강이 처형의 주요 무대가 된다. 거리와 강은 사람과 사물의 이동 통로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 얀초는 사람과 사물이 흘러가는 곳을 폭력의 장소로 활용하는 것이다. 볼가강과도 같이, 얀초가 직조한 화면은 유동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흐름들 한복판에 정지되어 보이는 것들이 기입된다. 바로 죽음이라는 정지 상태가 담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지는 화면에 흐릿하게 새겨진다. 물에서 처형당하는 자들은 물에 잠겨 사라지고, 거리에서 처형당하는 자들의 모습은 카메라에 의해 가려진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그들의 죽음은 동적 상태와 정적 상태가 상상적으로 결합한 기묘한 사태로 남는다. 물에서의 죽음은 물의 흐름과 섞이고, 거리에서의 보이지 않는 죽음은 살려고 발버둥 치는 역동적 형상과 상상적으로 뒤섞인다. 얀초가 끌어내는 이러한 상상은 우리로 하여금 스크린을 유동적으로 바라보게끔 한다. 하지만 때때로 어느 순간에 그 흐름의 정지(, 죽음)는 너무도 선명히 화면 위에 현현한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드넓은 초원 위로 저항군이 정부군을 향해 행진하고, 그들의 행진은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전과 달리 어떤 흘러가는 운동이나 돌아보지 않는 시선과는 뒤섞이지 않은 그들의 죽음은 카메라가 멀리서 바라보는데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명징한 사태들로 스크린에 새겨진다.

 

  미클로슈 얀초는 자신의 영화가, 혹은 스크린이 물과 같은 물질이 되거나 물의 흐름을 담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그의 <붉은 시편>(1972)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화면은 좌우, 앞뒤로 움직이는 사물들로 인해 부산하다. 하지만 그 유동하는 사물들은 그 자체로 폭력으로 기능하거나, 폭력에 둘러싸인다. 전투기가 저항군을 쫓아가면 카메라는 전투기의 시점에서 초원을 달려가는 저항군의 흐름을 뒤쫓는다. 군인들에게 둘러싸인 여성들은 강제로 왈츠를 추며 자신들의 몸으로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말을 타고 이리저리 화면을 가로지르는 정부군은 살육의 실행자들이다.

 

  이러한 흐름들 속에서 여성들의 몸은 착취와 전용의 대상이 된다. 그들의 몸은 우리를 난처하게 한다. 그 몸을 착취하고 전용하는 것은 정부군이나 저항군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이 영화를 정부군의 폭압과 저항군의 저항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보게 되는 우리의 관점은 혼란에 빠진다. 어느 마을의 여성은 정부군에 의해 발가벗겨지지만, 또 다른 정부군 장교에 의해 구해진다. 저항군을 도왔던 여성 간호사들은 억지로 저항군의 키스를 받아 내야 하며, 결국 강제된 자백을 했다는 이유로 위기에 처한다. 미클로슈 얀초에게 폭력은 단지 진영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얀초의 카메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 놓인 인간의 착취적 속성을 반영한다.

 

  영화 마지막 숏에서 한 남자가 죽은 병사들을 둘러본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듯이 칼을 들어 자신의 얼굴 앞에 가져다 댄다. 얀초는 이 숏에 유동적 성질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그저 멈추어 버린 죽음만 있다는 듯이. 얀초의 화면은 정지한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흐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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