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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리뷰

월드시네마 2020 -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대리석 인간>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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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영화사의 위대한 유산, 월드시네마 2020 2020.5.19.화~6.10.수 매주 월요일 상영없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와 떠나는 '세계영화사 오디세이'

 

 

 

<대리석 인간>

장지욱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안제이 바이다는 폴란드 현대사를 영화로 발언했던 감독이다. 공산주의에서 자유화로 이어지던 폴란드 역사의 큰 줄기에 승선한 그는 시대의 변화와 시절의 불합리를 영화로 그려 냈다. 특히 <대리석 인간><철의 인간>(1981)은 안제이 바이다의 메시지와 영화적 표현이 집약되어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대리석 인간>은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젊은 영화감독 아그니에슈카의 취재 과정을 따라간다. 그녀는 1950년대 노동 영웅으로 추앙 받은 비르쿠트의 행적을 쫓는 중이다. 어렵게 자료를 찾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노동 영웅이라는 영광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벽돌공 비르쿠트의 비현실적인 노동력과 도전은 당국의 기획하에 만들어진 이미지였고, (영화 속에서) 현재 폴란드 국민 영화감독이 되어 있는 부르스키는 당시 선전의 정점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안제이 바이다는 과거와 현재, 공산주의와 자유화와 같이 양극단의 지점을 매개하기 위해 두 명의 영화감독을 배치함으로써 역사를 고찰하는 것에 더해 또 다른 문제 제기로 나아간다.

 

  <대리석 인간>에서 먼저 느껴지는 것은 이념의 허상이다.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미남형의 남성, 비르쿠트의 순수하고 성실하며 약간의 낭만성도 드러나는 면모를 보면 무엇이 그를 영웅으로 이끌었는가에 대한 답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비르쿠트는 1950년대 폴란드 정부가 내세우고 싶었던 정치 아젠다를 이미지적으로 이상화한 대상이며, 당국은 그를 본뜬 대리석상을 세운다. 하지만 노동 영웅이 되고 난 이후의 비르쿠트의 삶은 동지와 사랑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인데, 이러한 그의 뒷이야기가 아그니에슈카의 취재 과정에서 소환됨으로써 비르쿠트는 이념의 선전에 누락된 모습마저 이미지화된다. 안제이 바이다는 <대리석 인간>에서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주인공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보여 주는 과거(라고 설정된)의 자료들은 과거에 드러나지 못한 실상을 환기시키며 이는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안제이 바이다는 시대와 이념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로 담론을 확장시킨다.

 

  <대리석 인간>에 등장하는 두 명의 영화감독은 관객에게 역사 위의 영화의 현장을 목격하도록 이끈다. 부르스키가 비르쿠트의 다큐멘터리를 찍는 장면에서 노동 영웅을 만들기 위한 작위적 시도가 나온다. 그는 당시 폴란드 정부가 시도한 영웅 만들기에 기획부터 동참한 인물이다.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권력이 용인한 총과 다르지 않다. 이는 카메라가 지닌 본연의 권력성과 조응한다. 비르쿠트가 벽돌을 다 쌓고 고통스럽게 성공을 마주하는 시점에 부르스키는 그에게 웃음을 주문한다. 부르스키가 그렸던 이미지를 요구하는 것이다. 카메라가 지닌 왜곡의 권력성은 당시 정부의 아젠다 세팅과 동일시된다. 현재의 아그니에슈카는 부르스키와 여러모로 대비된다. 그녀는 인터뷰 중에 결정적인 이야기를 꺼내려는 인터뷰이를 보호하기 위해 창문 밖에서 녹음을 시도하려는 음향 감독을 차단한다. 또 부르스키와는 달리 그녀는 영화를 완성하지 못한다. 대신 완성하지 못하는 영화를 찍어가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완결 대신 지속되는 질문을 남긴다.

 

  안제이 바이다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역사나 특정한 이념에 대한 비판에 조금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영화를 찍는다는 행위가 역사와 시대 위에서 진행되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소명이라든지, 카메라를 든다는 것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에 대한 것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마지막에 아그니에슈카가 비르쿠트를 찾아 떠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비르쿠트의 아들을 만나 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런데 아그니에슈카는 방송국으로부터 지원이 끊겨 카메라가 없는 상태다.

 

  한 시대는 종국을 맞이하고 영화는 완결되지만 그것들과는 무관하게 지속되는 가치가 있다. <대리석 인간>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제이 바이다는 카메라가 없는 영화감독의 빈손에서 역설적으로 카메라가 지닌 무게를 항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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