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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리뷰

거장의 예외적 영화들 <스트레이트 스토리> 2019-08-16
첨부파일거장의 예외적 영화들_리뷰.png (199 KBytes)
Review 8월 시네마테크 기획전 거장의 예외적 영화들 Their Unexpected Films 2019.8.16(금) - 9.1(일)

 

 

<스트레이트 스토리> :린치적인 것으로부터의 환유

 

심미성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린치의 이상한 영화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 데이빗 린치를 향한 무수한 말들 가운데 이 말 만큼은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정상적인 영화와 이상한 영화로 분류할 수는 없지만, 이상한 영화와 이상하지 않은 영화라는 구분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데이빗 린치는 두말할 것 없이 전자에 해당하는 감독이다. 그건 그가 주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름다움보다는 추함에 닿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린치는 우리가 보기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낸 추한 것들을 영상 안에 펼친다. 대개 이 형상은 악몽을 닮았다. 여기서 악몽은 단순히 찝찝한 꿈을 꾸는 일면을 넘어, 개인의 기억 속에 뿌리박혀 잘라내거나 외면한다 해도 이내 불쑥 솟아오르고 마는 사사로운 고통과 폭력의 무의식적인 혼재 상태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내밀한 심상들은 린치의 영화에서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각으로 드러난다.

 

 

린치적인 것

 

    웃음보다는 비명이, 온전함보다는 기형적인 것이 린치 영화에서 질료가 된다. 아름답고 선한 부류로부터 대적하는 무엇들. 이를테면 일상적인 대화는 린치의 영화 속에서 삐걱거리는 마찰음이나 괴성으로 변주돼 나타나며, 끙끙 앓는 소리, 가학적인 고함, 무시무시한 비웃음이 공간을 메운다. 시각적으로도 당연히 범상할 리 없다. 린치의 영화를 생각할 때 마음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개 잘려 나동그라진 신체, 축축한 구멍, 헝클어진 뿌리 다발, 전방위로 돌아다니는 개미 떼, 어둠뿐인 무한한 고속도로, 아무렇게나 부푼 혹 덩어리, 구토하는 머리, 하얗게 질린 얼굴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미스터리하고 음습한 감각들이 소위 린치적인 것이라는 이름으로 결부된다.

 

린치 영화 속 오브제들은 의미 발견을 강요하는 메타포와는 방향이 다르다. 외부에서 내부로 수렴돼 단일해지고 만 상징이 메타포라고 말해본다면, 린치의 오브제는 되레 인간의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던 것들을 외부로 길어 올린 쪽이다. 꺼내놓으면 너무도 끔찍할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꺼내놓는다 해서 분명해지는 편도 아닌 데다, 그렇다고 없는 존재는 아니고 분명히 있다고 느끼는 그 무엇들의 외부화다. 이때 개별적 인간으로서의 작가, 데이빗 린치의 뇌 속에서만 존재하던 사적인 이미지가 우리 눈앞에 목격된다. 이렇게 드러난 이물질은 린치의 자장에 은둔하던 것들이 린치의 옷을 입고 태어난 사실과 같다. 수수께끼 같은 린치의 영화가 쉬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이 개인성 때문이리라.

 

 

스트레이트 스토리

 

    그러나 1999년 만들어진 린치의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적잖이 당혹스럽다. 그동안 린치의 세계로부터 린치적인 것을 목격해온 사람들은, 지극히 이상하지 않은 영화라는 점에서 도무지 린치적이지 못한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엇을 말하고 있느냐는 사실보다 누구의 영화인가가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서서히 체감하는 한 노인 앨빈 스트레이트가 꽤 오랜 세월 동안 등진 친형을 찾아 떠나는 지난한 여행 이야기다. 영화 감상에 있어 그다지 특별한 예민함을 곤두세우지 않더라도, 혹은 얼마간 예리해진다고 해도 충분한 감정적 여진에 다다를 수 있는 영화. 로드무비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구태의연한 잔가지들을 쳐낸, 담백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다. 말하자면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이상한 영화인 셈이다. 게다가 몰랐던 사실 한 가지, 데이빗 린치는 이렇게 이상하지 않은 영화마저도 훌륭히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 생경한 경이로움이 일기도 한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선보인 칸영화제의 기자회견에서 린치는 말했다. “감정은 영화라는 매체가 잘 다룰 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그건 균형 찾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기도 한다. 아주 조금만 넘쳐도 감정은 날아가 버리고, 아주 조금만 모자라면 아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그 미묘한 균형을 찾고자 노력한 실험적인 영화였다.” 그의 말대로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린치 자신에게 실험적인 영화였다. 꽤 단선적인 플롯을 배우의 눈이 힘 있게 지탱한다. 주인공 앨빈 스트레이트를 연기한 리처드 판스워드는 스턴트맨으로 일생을 살다가 1977, 그의 나이 57세에 배우로 데뷔했다. 아주 늦은 데뷔 이래 수십여 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했고, <스트레이트 스토리>에 참여할 때만 해도 그는 말기 암과 싸우고 있었다. 견디고 버텨온 세월을 두 눈에 통째로 머금은 듯한 그의 존재감은 <스트레이트 스토리>에 가장 진한 설득력을 얹는다. 린치의 다른 영화들에서 마주친 혼란의 눈빛은 여기에 별로 없다. 여타 많은 로드무비에서 시도된 극적 서사를 배제한 채 고요하게 느린 시간이 흐른다. 잔디깎이에 커다란 수레를 연결한 어설픈 트레일러에 여생을 의지한 노인은 크고 작은 역경들마저 단순하게 견딘다. 노인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형을 만나는 일만이 여생의 마지막 과업일 뿐, 중요치 않은 일에 힘 빼지 않는 여유와 통찰이 스며있다. 여행길에 만난 낯선 이들은 알지도 못하는 노인에게 한없이 온정적이다. 마치 가늠키 어려운 그의 인생에 경의를 표하듯, 앨빈의 단순한 행동과 간결한 몇 마디로부터 감화를 느끼기도 한다.

 

 

린치의 실험

 

    감정의 미묘한 균형을 찾고자 했던 린치의 실험이 <스트레이트 스토리>를 통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면, 그의 영화를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린치의 인장을 찾는 소명이 남는다. 예상치 못한 따뜻함을 발견한 <스트레이트 스토리> 속에도 린치의 영혼은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활한 도로와 논밭을 훑던 카메라가 집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여자를 비추면서 영화는 시작했다. 여자가 벌이는 일련의 행위를 무심히 따라다닌 카메라가 안이 보이지 않는 창문 하나 앞에 멈춘다. 창 안쪽에서 찰나의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영화적으로도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효과음이다. 몇 장면 뒤 쓰러진 앨빈의 노쇠한 몸이 나타나 금세 의문은 풀리지만, 결코 평범한 장면은 아니다. 게다가 앨빈의 딸 로즈는 언어장애를 갖고 있어서 완결된 문장을 내뱉기까지 몇 번의 일시 정지 상태를 겪는다. 정상과 비정상의 흔한 이분법에서 린치는 후자의 캐릭터를 선택하는 감독이다. 그는 아마도 불편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따뜻함을 가진 영화에 더 예민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밖에 브레이크 고장으로 비탈길을 위험하게 질주하는 장면, 7주간 열세 마리의 사슴을 친 여자의 절규 장면 등 다분히 린치적인 구석은 드물게 그러나 분명히 발견된다.

 

그중 영화의 리듬은 린치적인 것이라 명명할만한 여러 가지 단서들 가운데 주로 간과되기 쉬운 점이다. 그의 영화들에는 단순히 느리다고 말하기엔 어려운 특유의 편집점이 존재해 왔다. 장면 전환이 있어야 할 시점에 그의 영화는 머무르기를 택하고, 그 머무름의 지속은 너무도 희한한 지점에서 끝맺는다. 일반적인 롱테이크와 비견하기엔 기괴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리듬이다. 관객에게 어딘가 불균형적이고 불안한 감각을 발생시키는 린치 영화의 리듬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트레이트 스토리> 전반을 관통한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앨빈의 눈에 선연한 회한이 여백을 메울 때도 데이빗 린치의 리듬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린치 자신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린치적인 것으로부터의 환유의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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