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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정재영이 사랑한 영화들' <다른 나라에서>: 유준상 배우 2016-07-15(금)  - 시네마테크

<다른나라에서> 유준상 GV 01


7/15 <다른 나라에서>


* 게스트 : 유준상 영화배우

* 진  행: 옥미나 영화평론가

* 장  소: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 



<다른나라에서> 유준상 GV 02


(유준상)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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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안녕하세요. 등장만 하셔도 분위기가 좋은데요. 아까 상영은 못 보셨죠? 영화 보는 동안 관객분들이 굉장히 많이 웃으셨어요. 특히 유준상 씨가 영어를 하실 때마다 굉장히 반응이 좋았는데요. 사실 좋아하는 영화 목록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가늠을 하기 마련인데, 저희가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굉장히 천진하고 순수한 소년이 얘기한 거 같은 영화 목록이라는 얘기를 좀 했어요. 어떠셨나요? 목록을 작성하시면서 어떤 작품이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이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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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시기마다 제 마음을 움직여준 그런 영화들이에요. 저는 뮤지컬 배우로 시작했거든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봤을 때 나는 언젠가 뮤지컬 배우가 돼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토토의 천국>은 한 번 본 다음에 열 번을 계속 이어서 봤어요. 너무 재미있어서요. 그런 기억이 나고요. <러브레터>는 한참 전 제 생일 때 서울에 청담대교가 공사 중이어서 아직 사람들이 안 다니던 시절에 저 혼자 생일 맞으면서, 생일을 혼자 맞으면 좀 안쓰럽잖아요. 아무도 생일 축하한다는 얘기도 안 해주고, 그래서 거기 아무도 없으니까 저 혼자서 오겡끼 데쓰까외쳤어요. 혼자 밤 12시인가에 심야영화를 보고 너무 기뻐서 혼자서 그렇게 외쳤던 기억이 나요. 영화마다 그런 기억이 남아 있어요. 정말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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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 알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일단 홍상수 감독님 작품을 봤는데요. 저희가 사석에서 허문영 선생님이, 지금은 숨어버리셨지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 CF에서 보고 드라마에서 봐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가장 변신에 능한 배우가 유준상 배우인가 아닌가. 허문영 선생님은 유준상 씨는 정말 광대의 피가 흐르는 배우라는 굉장한 칭찬을 하셨던 적이 있었거든요. 동의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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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 동의해야 돼요? . 칭찬이죠. <다른나라에서>는 제가 왜 재밌느냐면 그때 제가 바닷가에서 촬영한다는 얘기만 듣고서 감독님, 바닷가에 가려면 텐트 같은 거 있어야 하지 않나요?” 하니까 텐트 있으면 좋겠다.” “감독님, 제 텐트를 갖고 갈까요?”라고 하니까 가져 오면 좋지.” 하셨어요. 그리고 감독님, 랜턴도 가져가면 어떨까요?”라고 하니까 랜턴도 갖고 올래?” 그리고 감독님, 제가 기타까지 챙겼습니다.”라고 했더니 감독님이 되게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챙긴 게 우리 영화에서 그렇게 좋은, 중요하게 쓰일지, 특히 랜턴은 생각지도 못했는데요. 그것들이 제일 중요한 소품이 됐어요. ‘, 내가 이걸 안 가져왔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 텐트는 던지면 펴지는 텐트거든요. 아직도 집에 있는데요. 제가 이 선생님, 제가 이자벨 위페르 선생님을 이 선생님이라고 그러거든요. (관객 웃음) 이 선생님이 처음에 공항 오셨을 때 감독님이랑 저랑 같이 갔거든요. 그래도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이신데 혼자 오셨어요. 마중 나간 사람도 저희 두 명밖에 없었어요, 감독님이랑 저랑. 그렇게 조촐하게 공항에서 모시고 촬영장에 갔어요. 제가 촬영이 좀 무르익었을 때, 텐트를 한 번 던져드렸더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어요. 어메이징, 뷰티풀, 원더풀외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걸 우리 아들이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계속 그 얘기를 들으면서 이건 하나 사달라는 얘기구나 생각하고, 제가 그런 걸 알아차리는 게 빠르잖아요. 그 얘길 몇 번씩 하셔서 이걸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주문을 했어요. 그 지역에서 주문을 했는데, 우리나라가 빠르잖아요. 4일 정도 만에 왔어요. 이 선생님한테 선생님, 선물입니다,’라고 했더니 기절을 하시더라고요. 이게 어떻게 온 거냐고 하셔서 제가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고 하니 인터넷으로 어떻게 이렇게 며칠 만에 오느냐, 자기 나라에서는 한 달이 넘어도 주문한 게 안 온다고 하시면서 원더풀, 그레이트를 막 외치시면서 행복해하셨던 기억이 나요. 이 영화 볼 때마다 그렇게 해맑게 외치셨던 이 선생님. 이 선생님은 식사를 간장에만 밥을 비벼 드셨거든요. 간장만 드렸는데도, 우리나라 간장을 밥에다 그냥 비벼서 드시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간장 달라고 하시고요. 안쓰럽잖아요. 그래서 텐트도 드리고, 많이 드렸어요. 왜냐하면 또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가셔야 하니까요. 제가 선생님이 우리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으시는 데 큰 일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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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제가 듣기로는 소품과 텐트뿐 아니라 자작곡도 만드셨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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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감독님이 노래를 하나 해보라고 하셨어요. ‘내일 촬영할 건데, 너 노래 하나 만들어볼래?’ 그러셨어요. 감독님이 계실 때 혼자 이렇게 치면서 “Anne, This is a song for you. Anne, you have a beautiful name.” 불렀어요. 감독님께 이거 어떤지 여쭸더니 그래, 내일 한번 불러봐.” 그래서 부르게 됐어요. 그게 또 그렇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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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진짜 영감을 많이 주는 배우신데요. 소품도 챙기고, 음악도 만드시고요. 그래서 영화가 끝난 다음에 그 곡을 완성을 하셨다는 소문도 제가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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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 아직 발표는 안 했지만 끝까지 완성을 했어요. 그래서 처음은 그렇게 영어로 시작하지만 우리말로 다 완성을 했어요. 언젠가 나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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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이 선생님도 한 번 끝까지 전곡을 들어볼 기회가 생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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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언제 이 선생님 한 번 들려 드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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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이 선생님께서 되게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유준상 배우님에게는 여러분들도 질문이 많으실 거라 생각이 돼서요. 제가 궁금한 것 몇 개만 조금 더 여쭤보고,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일단 굉장히 놀라운 소식을 인터넷에서 접한 것은 감독이 되셨다는 소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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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저도 놀랐습니다. 제가 그냥 음악영화를 하나 만들었거든요. 작년에 남해에서 45일 정도의 시간을, 정말 하루에 한 세 시간 정도만 자면서 촬영했어요. 그날 와서 음악 만들고, 그날 써서 만든 거를 그날 시나리오를 정리하고, 다섯 명이서 그렇게 만들었어요. 저랑 음악 하는 친구와 함께 음악영화를 완성해서, 오케스트라까지 써서 다 완성한 다음에 제천국제음악영화에 냈어요. 음악영화라서요. 근데 국제경쟁 부문에 저희가 초청 받았어요. 1350여 편 지원해서 150편이 뽑혔는데, 이거 약간 자랑입니다. 그중에 150편 뽑힌 것 중에 8편이 경쟁 부문인데, 우리나라에서 제 작품만 거기에 들어갔습니다. (관객 박수) . 감사합니다. 저도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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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그러니까요. 사실은 글도 쓰시고, 책도 내시고, 음반도 내셨고요. 뮤지컬도 하시고 연기도 하시는데, 이제 다음 번 제천영화제 땐 감독님으로 참석을 하셔서 인터뷰를 하시게 될 것 같아요. 정말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많고 열정도 많으세요.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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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아까 영화 소개하면서 이야기했듯이 순수란 그런 마음들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열정들을, 그리고 제가 나이가 들면서 어떤 책임감이 생기냐면 나이가 드는 것뿐이지 할 수 있다, 해보자. 그걸 보면서 젊은 친구들도 좀 힘을 냈으면 좋겠고요. 제 연배의, 아니면 저보다 어르신 중에서도 그래, 저 친구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어떤 그런 책임감이 어느 순간부터 들고요. 일단은 재밌어요. 재밌는 게 제일 중요해서요. 영화 또 하나를 최근에 만들었어요. 그게 이제 그런 이야기거든요. 제가 음악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제 음악 그만둘까 고민하는 이야기예요. 음악 그만두지 말고 천천히 해보자 해서 제목이 <아직 안 끝났어>거든요. ‘아직 안 끝났어, 천천히 하자.’라는 그런 의미로요. 한 내후년쯤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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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보시면 정말로 열정적이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상당히 많으시지만 정말로 즐기면서 행복하게 일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일지를 굉장히 열심히 쓰고 계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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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 사실은 남들이 봤을 땐 굉장히 즐겁게, 편하게 하는 것 같지만, 저는 사실 되게 힘든데, 그 힘든 걸 내색 안 하고 계속 똑같은 걸 반복해야 되거든요. 저희 직업이 되게 다른 걸 하는 것 같지만,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하는 훈련을 해야지 조금씩 느는 게 보이고, 그 반복 훈련을 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고요. 이런 감성들이 조금이라도 처지면 연기로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감성들을 계속 좋은 쪽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하게 되고, 보게 되고, 여행가면 항상 미술관에 가서 미술을 보고, 일지를 쓰고요. 제가 음악을 만드는 것도 다 그런 맥락이죠. 제가 음악을 되게 빨리 만든다고 얘기를 해주시는데, 그렇게 빨리 만들어놓고 그걸 완성하는 과정은 정말 오래 걸리거든요. 근데 그 빨리 만드는 게 빨리 만들어야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동안 제 스스로 생각했던 것들이 그 순간에 담겨지는 거라서요. 그런 과정들을 다 포함시키면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이 되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연기에 대한 공부도 계속 하는 거고요. 하지만 보이는 건 되게 즐겁게 보여서 보시는 분들이 편안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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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계속 부지런히 영감이 되는 것들을 기록하고, 누적시켜서 그것들이 재산이 되고,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배우님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질문이 있으시면 질문을 하나씩 받으면서 다시 자세한 얘기들을 다시 해봐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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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if]--><다른나라에서> 유준상 GV 05


(관객 1) 평일에 여기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멀리서 왔고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오늘 다시 보면서 느꼈던 게 우리 유준상 배우님의 몸매가 죽인다. (관객 웃음) 어떤 생각이 확 들었냐면 <007 닥터노>에서 우슬라 안드레스인가 하는 여배우가 비키니를 입고 007 앞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 같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어떤 천진난만함 속의 남성의 근육미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은데요. 그건 제 느낌이고요. 영화적으로 봤을 때, 이자벨 위페르는 캐릭터가 세 번 바뀌잖아요. 조금씩 미묘하게 바뀌는데, 유준상 배우께서는 그런 변화가 없으면서도 조금씩은 미묘한 변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천진난만함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첫 번째는 상당히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는 편이고, 두 번째는 좀 소극적으로 뒤따라가는 스타일이라는 느낌이었는데요. 어떤 캐릭터의 창조랄까, 그런 부분에 대해 한 번 듣고 싶고요. 저는 유준상 배우가 뽑으신 영화 중에서 <시계태엽 오렌지>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혹시 말콤 맥도웰의 연기를 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늘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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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 감사합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안에 ‘Singin' in the Rain’이 나오거든요. 그 노래가 나오는데, 참 폭력적으로 나와요. 그 노래를 하면서 사람들을 공격해요. <사랑은 비를 타고>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인데, 저 영화에 ‘Singin' in the Rain’이 나오는 거죠. 제가 원래 연출 전공으로 대학을 들어갔거든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영화연출 전공으로 시작했습니다. 원래 연출을 하려고 하면서 1학년 때 정말 많은 영화를 보고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그때 공부했던 영화들이 제가 연기를 하면서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됐거든요. 그 당시 영화 사조별로 ‘D. W. 그리피스는 영화의 아버지로 시작해서, 변증법적 유물론, 네오 리얼리즘 등 모든 사조들을 다 공부하고, 그 사조 안에 있는 영화들 다 찾아서 봤던 시간들이 제가 연기하면서 정말 많은 영향을 줬어요. 하여튼 <시계태엽 오렌지>‘Singin' in the Rain’이라는 노래 때문에 연결이 돼서 저 영화도 수십 번 보고, 최근까지도 갑자기 영화를 보고 싶을 때 한 번씩 찾아봐요. 얼마 전에 <대부1>를 봤는데, 어떻게 지금 봐도 저렇게 영화가 재밌는지요. 그렇게 영화들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 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이란 영화가 있거든요. ‘브라질이란 음악만 들어도, ‘빰빰빰이 부분만 들어도 그냥 너무 즐겁고 재밌고,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하게 되고요. 특히 <토토의 천국>에 삽입된 주옥같은 뮤지컬 신에 나오는 노래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노래도 잘 만들까 생각하고요. 영화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다른나라에서>는 사실 제가 미세하게 바꾸려 했던 부분은 없고요. 그냥 촬영 현장에서 감독님이 짧은 시간 안에 되지 않으면 오케이를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냥 정말 집중해서 오직 이것만 신경 쓰는 거죠. 바닷가에서 헤엄칠 때도 사실은 헤엄칠 높이가 아니었거든요. 나중에 알았어요. 감독님이 더 뒤로 가라고 하셔서 계속 뒤로 갔는데, 더 뒤로 가면 위험할 것 같아서 이제 여기서 하겠습니다.’ 하고 수영을 막 했어요. 나중에 수영하고 일어났더니 제 무릎높이밖에 안 되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이 나중에 그걸 보시고서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거기서 그렇게 하고 나오니까, 진짜 열심히 수영하는데 일어나니까 무릎.(웃음) 그렇게 촬영 현장에서 계속 집중하고, 감독님이 오케이 하면 일단 다른 생각 안 하고 다른 신들을 준비해야 되니까요. 그날 적어서 그날 촬영을 하거든요. 그날 보통 세 개에서 많으면 다섯 개 정도 찍는데,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밖에는 없죠. 안 끝내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빨리 끝내지 하는 이런 생각 없이 그냥 하다 보면 하루가 끝나요. <다른나라에서> 같은 경우는 밤 되면 못 찍으니까요. 조명기 같은 게 많이 없어서 못 찍는데, 어떻게 또 찍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몰입해서 생기는 그런 미세한 차이들인 것 같아요. 정말 많이 집중을 해서 생기는 것. 그래서 감독님 영화들을 제가 그동안 하면서도 다 그런 식으로 했죠. 제가 <북촌방향> 할 때는 한 70번 정도 테이크를 가고, 그날 오케이가 안 나서 그 다음 날 40번 정도 더 찍었어요. 아직도 기억나는데, 컵을 이렇게 해서 이게 왜 떨어졌을까 하는 그런 신이에요. 그냥 중간에 뛰쳐나갔죠. 집에 가겠다고 혼자 마음먹고요. 이렇게 있다가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뛰쳐나왔어요. 감독님한테 얘기 안 하고 그냥 도망가려고요. 근데 그 앞에 우리 연출부, 많지도 않고 한두 명 있는 연출부인데, 그 친구가 눈 오는 날 쪼그려 앉아서 지키고 있는 거 보면서 내가 너 때문에 다시 들어간다고 하고 다시 들어가서 촬영을 하고 다시 그 다음날도 찍었어요. 다섯 시간도 넘게 찍은 것 같아요. 그 한 신을 계속. 근데 OK가 안 되니까 저도 너무 속상하고요. 근데 나중에 들으니까 한 일곱 번째 테이크를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백 몇 개 찍었는데, 앞에서 일곱 번째 것. 근데 그럴 정도로 감독님이 되게 집요하게, 오케이가 될 때까지 하는 것도 있고, 저도 어느 순간 오기가 생겨서 어떻게든 여기서 좋은 신이 나올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생각이 아예 안 나고, 어느 순간부턴 그 신에 대한, 이 사람에 대한 집중밖에 안 생기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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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supportEmptyParas]--> <!--[endif]--><다른나라에서> 유준상 GV 06


(관객 2) 안녕하세요. 일단 배우 유준상 님께 좋은 영화 추천해주셔서 고맙다는 말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배우님께 궁금한 건 배우님께서는 오랫동안 많은 작품을 해오셨잖아요. 뮤지컬, 영화, 드라마, 어떤 작품이든 많은 작품을 해오셨지 않습니까? 그렇게 작품을 하시면서 배우님께서는 그 배역을 할 때마다 정말 몰입하셔서 표현하시는 게 정말 많이 보였습니다. 그 몰입을 끝내고, 몰입한 캐릭터를 떨쳐내고 새로운 캐릭터를 하실 때 어려운 점이 없었는지요. 또 떨쳐내기 어려운 배역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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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그런 것들을 빨리 잊어버리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죠. 그래서 일지를 쓰는 것도 그렇고요. 또 여행을 많이 다닙니다. 여행을 힘들게 다니는 걸 좋아해서 일단은 엄청난 양을 계속 걷고, 그 지역에 가면 미술관 가서 보고 또 걷고요.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계속 그런 식으로 다니는 거죠. 그러면서 이런 생각들을 좀 떨쳐내고요. 그리고 일단 점점 나이가 들면서 금방 잊어버려요. 어저께 찍었는데 오늘 되면 다 잊어버려서 나중에 영화 보면서 , 맞아, 저기서 정말 힘들었지.’ 그렇게 되니까요. 빨리 잊어버리는 걸 예전엔 좀 괴로워했는데 요즘은 아주 좋아요. 금방 잊어버려서요. 아마 또 새로운 것에 집중하다 보면 이전 것들을 빨리 잊게 되거든요. 만약에 떨쳐 버리기 힘든 일이 있으면 새로운 어떤 것에 집중하면 어렵고 힘든 생각들을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삶에도 유용하게 쓰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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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두 번째 질문은 어려웠던 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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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잘 알지도 못하면서>란 영화를 찍었을 때, 홍 감독님이랑 처음 같이 작업했던 건데요. 사실 그 전에 감독님께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함께 있었던 주위의 연출부들은 유준상 씨는 이번 영화에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신 거나 마찬가집니다, 왜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오디션 보신 분은 유준상 씨가 처음이라고 해요. 한 다섯 시간 넘게 감독님과 낮술까지. 제가 술도 안 먹는데요. 백세주, 아직도 기억합니다. 낮술을 한 서너 병을 마시면서 이제 드디어 내 인생에 홍상수 감독님과 함께 작업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그게 아마 30대 중반 정도였는데요. 제가 액면으로는 아직도 30대 중반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어느덧 저도.(웃음) 아무튼 그래서 당시에 이제 되는구나 싶었어요. 왜냐면 연출부들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때는 연출부들이 좀 많았어요. 그 작품이 좀 크게 하는 작품이라서 많았는데요. 다 된다고 했는데. 그 다음날 기사에서 김승우 씨가 됐더라고요. <해변의 여인>. 아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지. (관객 웃음) 아니 그럼 왜 나한테 낮술을 그렇게 먹였지. 그 이후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란 영화에 많진 않지만 한 번 나와 줄래요?’라고 하셔서 , 그럼요.’ 했죠. 그때 그렇게 당한 것도 있는데,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하면서 제주도로 갔어요. 제주도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차에 타라고 하면서 바로 레디 액션을 외치시더라고요. 그 역할을 하면서, 다 찍고 나서, 그때 정말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매번 열심히 하지만, 약간 억울한 감도 있는 그런 열심히.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하는 오기 같은 것들이 발동해서 더 열심히 했는데, 다 찍고 나서 온몸에 있는 세포들이 막 일어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거 너무 즐겁다, 힘들지만. 몸은 너무 힘들었는데 너무 즐거워서 감독님께 언젠가 시간이 되면 또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정말 그 다음에 감독님과 여러 번 작업하게 됐죠. 그리고 저는 공포영화 안 좋아해요. 제일 무서워하는 게 공포영화예요. 제가 <가위>란 작품을 초창기에 찍었는데, 하지원 씨, 유지태 씨랑 찍었는데요. 찍을 땐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어요. 피 묻히고, 공포영화는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 하면서 찍는 게 너무 재밌어서 다음에 또 찍어야지 하고 영화를 보는데 너무 무서워 가지고, 그 이후로는 출연을 안 합니다. 공포영화는 사실 보지도 않고요. 목록에 없잖아요, 그런 무서운 영화들은. 스릴러는 볼 수 있어도 공포영화는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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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소년. 공포영화보다는 소년. 공포영화를 <가위> 때문에 안 하시는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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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3)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 유준상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손들었는데요. 제가 어느 매체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어떤 인터뷰 기사에서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중에 뮤지컬 할 때 다른 배우들은 춤도 잘 추고 다리가 쫙쫙 잘 찢어지는데, 배우님께서는 그게 한 번에 안 돼서 매일매일 다리 찢는 스트레칭을 했다는 걸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그래서 이 배우는 자기가 가진 것보다 더 노력을 해서 더 많은 걸 얻어내는 사람이란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 이후에 드라마나 다른 매체나 라디오 같은 곳에서 인터뷰하는 걸 봐도 그런 느낌을 되게 많이 받았어요. 노력을 하는 배우다. 지금보다는 내일에 더 집중을 하는 배우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혹시 지금 현재 뭔가 노력을 하고 있다든가 뭔가 더 발전을 하려고 하는 게 있으면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제가 그 인터뷰 읽으면서 엄청 자극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 게 있으면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언젠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라디오에 한 번 음반 제작자로 나오셔서 신인 가수분들의 음반 홍보를 엄청 열심히 했던 걸로 기억이 나요. 그 뒤에 키우고 있는 다른 후배나 음악활동은 더 하시는 게 없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짧은, 제가 말이 너무 길죠. 짧은 제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솔직히 배우님을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뮤지컬 공연 현장에서 더 익숙해서 영화에서 볼 때 되게 새로웠거든요. 앞으로 공연 외에 드라마나 영화 관련 계획들도 같이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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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지금 제가 뮤지컬 <그날들>이란, 김광석 씨 음악으로 하는 뮤지컬이 지금이 3연째인데요. 이번 8월에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하고요. 그걸 계속 연습하고요. 뮤지컬은 1년에 한 2편씩은 해야지 계속 찾아 주시거든요. 관객분들께서도 찾아 주시고요. 후배들이 너무 많이 치고 올라와서 힘듭니다. 영화도 물갈이가 다 되는 것 같아요. (웃음) 질문이 뭐였죠? 뮤지컬에 같이 출연했던 여자 배우들 세 명을 타우린이란 이름으로 한 거예요. 뮤지컬 배우들한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요.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친구들이 비주얼이 안 된다고 해서 힘들고, 잘하는 재능들을 썩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친구들한테 조금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리고 재밌는 건 다른 뮤지컬 배우들이 그 친구들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왜냐면 앙상블 하는 친구도 있어서 그런 친구들이 이렇게 음반 내는 게 쉽지 않거든요. 쉽지 않지만 할 수 있다는 걸 한 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도 활동은 많이 안 하지만, 그중에 한 명이 결혼했어요. 임신까지 하고, 나름대로 걸그룹인데요. 상관없다고 그랬죠. 어차피 사람들이 모르니까 결혼해도 괜찮아. 아기 낳고 다시하자. 얼마 전에 노래 들려줘서 새로 하나 나올 건데요. 그런 식인 거죠. 계속 그런 도전을 해보고 싶은 거죠.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거, 해보고 싶은 것. 제가 나름 배우지만 제가 고등학생 1학년 때 언젠가 음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마흔 다섯 정도 됐을 때 그 꿈을 실현했죠. 그 이후로 지금 4장의 음반이 나왔어요. 아무도 모르는데. (관객 웃음)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 듣겠지. 그리고 웬만한 가수보다 많은 앨범이 나오고 있어요. 왜냐면 요즘 앨범 안 만들거든요. 앨범 만들어도 사람들이 듣지 않아요. 음원으로 듣죠. 근데 그냥 앨범으로 만들고 싶어요. 누군가 나중에 들으라고요. 그리고 그걸로 조금이라도 위로와 위안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떤 분들이 그 노래를 듣고서 좋았어요,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았어요라고 하면 좋고요. 그 안에 일부러 5곡씩 연주곡을 넣거든요. 주무시라고요. 아는 노래 들으면서 이렇게 연주 들으면 그 노래 따라 하게 되거든요. 전혀 처음 듣는 생소한 연주곡을 들으면 개의치 않고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어느 날, 그 생각을 했죠. 내가 일기를 쓰거나 뭘 할 때 음악은 듣고 싶은데 아는 노래가 들리지 않으면 방해되지 않고 편하겠다. 내가 그렇게 노래를 만들자. 그래서 5곡씩은 연주곡을 만들어요. 전혀 방해가 안 돼요. 뭘 해도요. 잠도 잘 오고요. 나중에는 잠을 잘 잘 수 있는 그런 연주곡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 질문이 뭐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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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이전 인터뷰를 보면서 굉장히 열심히 하는 모습에 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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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최근에 계속하는 훈련은, 훈련이라기엔 그렇지만, 자기 성찰이에요. 그게 제일 큰 숙제인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찍은 영화도 자기 성찰에 대한 이야기고요. 내가 어떻게 하면 나이가 더 들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나이 들었다고 내색하지 않고 좀 더 유연하게, 그리고 좀 넓은 마음으로. 그게 사실 쉽지 않거든요. 인터뷰에서 좋게 얘기해도 다 그때뿐이지 일상으로 돌아가면 더 심하면 심했지 인터뷰한 것처럼 안 되고, 내가 글 쓴 것처럼 안 되거든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모든 것들을 하면서 제대로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결국 그게 제 연기에도 녹아드는 거고요. 제가 공연을 하면서 항상 얻는 것도 그런 거예요. 제가 20대 때 무대에 섰을 때 공연 3시간 전에 스탠바이 하고, 극장에 와서 3시간 정도 몸을 푸는데요.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어느 순간에는 몸을 너무 많이 풀어서 공연하기도 전에 지쳐버려요. 옛날엔 안 그랬는데, 예전에 그렇게 몸을 많이 풀어도 괜찮았는데요. 이제는 좀 안배를 하는 거죠. 몸을 풀어서 지칠 바에는 극장에 가서 아무 것도 하지 말자. 대신 이제 3시간 전에 가야한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에 가긴 가요. 일단 아침에 몸을 풀어놓고, 가서는 안 하죠. 근데 저도 모르게 또 하게 돼요. 그게 아마 계속 그렇게 습관이 돼서 그렇겠죠. 예를 들어, 제가 리허설을 할 때 정말 어려운 노래를 열 번을 불러야 될 때가 있었어요. 근데 제가 그 노래를 그렇게 안 해주면 조명 감독님이 맞춰줄 때 잘 못 맞춰주는 상황이 돼요. 설렁설렁하면 제 목도 아끼는데, 그 힘든 노래를 열 번을 했죠. 처음엔 열 번이 될 줄은 모르고 계속 했는데, 우리 앙상블 친구들이랑 계속 똑같은 노래를 열 번을 반복했어요. 내 뒤 친구들도 이렇게 하는데 내가 이걸 설렁설렁하면 이 친구들도 그럴 테고, 그러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돼버리니 좋은 그림도 안 나올 테죠. 그래, 그냥 똑같이 하자, 내일 공연인데 해야지. 그렇게 계속 열 번을 하니까 긍정적으로 바뀌는 거죠. 이걸 내가 열 번을 해서 목이 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열 번을 해서 이번 공연에서 이 곡만큼은 내가 정말 잘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계속 하면서 제 스스로 컨트롤을 하는 거죠. 이렇게 하니까 또 긍정적인 생각이 되는 거고요. 정말 긍정적인 생각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제가 작년에 어떤 스님을 만났는데요. 제 종교는 기독교인데, 절에도 가고, 성당도 가고, 다 가요. 절하고, 기도하고, 다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스님께서 저는 요즘 긍정적인 것을 계속 하려고 수도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시는데, 그 얘기를 딱 듣는 순간 내가 지금 하는 게 수도다. 스님이 하시는 그런 훈련처럼 내가 이렇게 긍정정인 생각을 하는 것도 큰 훈련이구나. 그리고 스님이 매번 저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하신다는 얘기를 듣고서 나도 그걸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생각이 나서 여러분들에게 그 얘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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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으시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풀어내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면서도 짧게 대화하는 동안 계속 반복해서 나오는 말은 어떻게 나이를 들 것인가, 또 후배에게 어떤 선배가 되어줘야 할 것인가, 어떤 방향과 길을 제안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계속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선배라고 생각되는 분이나, 혹은 나이 들면 저런 배우가 돼야지, 저런 감독이 돼야지 하는 영감을 받게 되는 인물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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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정말 주위에 선배님들도, 후배님들도 다 그렇죠. 노력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걸 서로가 알기 때문에요. 근데 그중에서도 윤여정 선생님은 <넝쿨째 굴러온 당신> 때 엄마로도 나오셨고요. 참 재밌는 것 같아요. 원래 제가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하기 전에 원래는 갑자기 까먹었는데, 이병헌 씨 나온 <광해>. 원래 <광해>에 정재영 씨랑 제가 캐스팅이 됐었어요. 그래서 광해가 정재영 씨고, 류승룡 씨가 맡은 역할이 뭐였죠? 허균, 그 역할. 강우석 감독님께서 준비를 하셨던 작품이었는데, 그걸 하기로 한 상태에서 윤여정 선생님한테 연락이 와서 준상아, 너 나 드라마 하는 거 같이 해야 되는데.’라고 하셔서 드라마 제목이 뭐예요, 선생님?’ 하니까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야. 너 이거 해야 하는데.” 그래서 선생님, 제가 시간이 안 돼서요. 선생님이랑 작품 해야 되는데, 선생님 아들로 나와야 하는데.’ 그러고 있다가 영화를 안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그날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선생님께 다시 한 번 연락이 온 거예요. “준상아, 너 이거 진짜로 안 할래?” 그러셔서 선생님, 이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관객 웃음)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 아들로 하겠습니다.’라고 했죠. 근데 이 드라마가 너무 잘 됐죠. 다행히 <광해>도 잘 됐고요. 제가 그 드라마를 하면서 선생님이랑 연을 맺고, 여러 작품 같이 하면서 저 선생님처럼 늙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어떨 때는 다가가기 힘든 면이 있을지 몰라요. 근데 속마음을 알면 후배들, 같이 하는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도 그렇게 연세가 있으시지만, 말씀이나 이런 것들이 전혀 거리끼는 게 없죠. 전혀 감성이 늙지 않으셨고요. 그래서 저렇게 돼야겠구나 생각을 하죠. 선생님한테 그렇게 글도 쓰고, 좋은 얘기도 많이 듣고요. 그런 질문은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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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넝쿨째 굴러온 당신> 때도 제가 듣기로는 점점 캐릭터가 유준상 씨의 진짜 캐릭터를 많이 닮아가서 말투나 그런 게 변했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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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그러니까 저도 진짜 신기한 게, 지금도 제가 아버지 제사를 지낼 때 글을 쓰거든요. 난 같은 거 몇 개 치고, 붓글씨를 아버지 보고 싶어요그런 식으로 크게 글을 쓴 다음에 다시 태우는데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제가 그런 신이 나온 거예요. 제가 글을 써서 그걸 읽는 장면. 이건 개인적인 거라 모르잖아요. 작가 선생님이 그냥 그렇게 한 번 써본 거라고 하셔서 저도 놀랐죠. 저도 사실 평상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어떻게 아셨냐고 할 정도였어요. 그런 신들이 되게 많았어요. 그 작가님이 또 엄청 잘 되셨잖아요. 최근엔 안 불러주시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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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아까 관객분께서 선생님이라고 부르셨는데, 아직 현장에서 선생님 레벨은 아니시죠. 아직 젊으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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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제가 얼마 전에 <프랑켄슈타인> 공연을 했을 때, 제 상대역 남자, 여자 친구들이 저랑 띠띠동갑인 거예요. 24살 차이. 저도 놀랐어요. 제가 그 친구들한테 너무 고맙다고 했죠. 너희들이 내 상대역을 해주다니 진짜 고맙다. 24살 차이인데 연인이고 친구니까 미안하면서도 고맙고요. 할 수 있구나, 무대에서는 24살 차이 나는 친구들과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 친구들에게 되게 고마워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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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4) 90년대 때 TV에서 먼저 만나 뵀었는데, 실제로 뵙게 돼서 너무 반갑고요. 부산에 이런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감사드리고요. 저는 이 영화 처음 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수영한다고 고생하신 이야기도 재밌었고요. 질문 드리고 싶은 건 아까 옥미나 평론가님께서 얘기하실 때 연출을 시작하셨다고요. 저도 처음 들었어요. 배우를 할 때와 감독으로 연출을 할 때는 팔로우십이나 리더십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상황에 맞춰야 하고, 또 완전히 역전될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건 어떻게 조율하시는지 궁금하고, 개인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7월에 나오는 <고산자>인데요. 거기 등장하시잖아요. 가능하면 그 얘기도 조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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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내가 만약 영화를 만든다면 음악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영화 만들기 바로 직전에 한 거예요. 원래는 연출에 대한 생각이 있었죠. 예전에 연출 전공으로 있었기 때문에. 근데 연출이 사실 정말 어려운 거라서요. 근데 음악영화라면 재밌게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장에 전부 다섯 명 있었거든요. 촬영하는 친구, , 저와 함께 음악하는 친구, 제 매니저. 이 매니저가 스틸까지 찍었죠. 스틸을 되게 잘 찍었어요. 그 친구는 손이 흔들려요. 흔들리는데 초점이 맞아요. (웃음) 흔들리면서 맞는 거죠. 그 친구 있었고, 정리해주는 친구 한 명. 그렇게 다섯 명이서 여행을 다니면서 찍었죠. 최근에 네 명이서 같이 또 여행 가서 찍었고요. 일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할 수도 없고,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니까 순간순간 생각나는 대로 찍고, 커트, OK, 이동. 이런 식으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장면들을 담아야 해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들을 찍고, 또 이게 연결이 돼야 하니까 머릿속으로 정말 그 생각밖에 안 하는 것 같아요. 시간 잘 가는 걸로는 최고인 것 같아요. 계속 그 생각만 하니까요. 중간 정도 촬영이 이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전개를 시켜야 할까 고민하죠. 제가 시나리오를 써놓은 게 아니라 그날 찍으면 숙소에 와서 정리하면서 시나리오도 나중에 다 찍은 다음에 완성이 됐거든요. 그런 식으로 계속 머릿속으로 그러가면서 찍고, 상황들을 만들어 가면서 찍고요. 앞으로는 음악영화는 한 두 편정도 찍었으니까 한 편 정도 더 찍어 보고, 그 다음에 계속 할지 말지 판단해 보려고요.

또 하나가 뭐였죠? 영화 <고산자>는 강우석 감독님의 스무 번째 작품이라서 스무 번째 작품은 꼭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불러주셨어요. 제가 흥선대원군 역할을 했어요. 아주 재밌게 촬영했죠. 정말 많은 지역들을 가서 찍었고, 영화 찍으면서도 우리나라 지도를 그 당시에 어떻게 그렸을까 놀랄 정도였어요. 그리고 흥선대원군을 연기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대단한 분이셨다는 생각을 했고요. 난 치는 장면이 있어서 우리나라 수묵화의 대가이신 소산 박대성 선생님, 지금 경주에서 활동하고 계신데요. 그 선생님을 만난 게 제 인생에 축복이 됐어요. 그 선생님께 수묵화 레슨을 받으러 계속 경주에 내려갔거든요. 선생님이 경주에서 안 올라오셔서 만나려면 경주에 가야 해요. 선생님께 가서 한 23일 있다가 다시 서울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식으로 선생님한테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선생님 역시 지금 일흔이 넘으셨는데, 생각하시는 것들이 너무 대단하신 거예요. 선생님께서 네 살 때, 6.25전쟁 때 선생님 바로 앞에서 아버지께서 칼로 돌아가셨는데, 그때 선생님이 아버지를 부르면서 내민 왼쪽 팔이 잘린 거예요. 그 트라우마를 안고, 네 살 때부터 팔 하나로 그림을 그리신 거죠. 지금은 우리나라 수묵화의 대가가 되셨고, 경주에 지금 선생님을 위한 미술관이 생겼어요. 엑스포 안에 솔거미술관이라고 있고, 거기에 선생님이 작품 800점 정도를 기증했어요. 작품을 보면, (스크린을 가리키며) 이만한 작품이 있어요. 이런 대작들이 엄청나게 많죠. 그 작품을 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 이번 영화에서 제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죠. 그러면서 흥선대원군을 많이 알게 됐고요. 선생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셨죠. 왜 흥선대원군이 이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것들도 공부를 했고요. 그런 역할을 맡을 때 제일 좋은 건 자료들을 다 볼 수 있잖아요. 자료들을 보고, 미술관에 가고요. 김정호 선생님의 지도가 수원에 있거든요. 거기 애들 데리고 가서 가서 절하고, 동상에 절하면서 영화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 드리고요. 지도 같은 걸 애들이랑 같이 보고, 흥선대원군 묘가 있는 지역에 가서 보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가 있는 데 가서도 보고요.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 되게 재밌거든요. 그런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연기로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죠. 그냥 연기만 하는 것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보고 얻은 것들이 연기에 담기는 거죠.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제가 그 묘에 가서 얘기하고 그 길을 걷고, 그 아버지 묘를 가서 보고, 책들을 사서 보는 그런 과정들이 연기에 담겨있는지 모르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것들을 하면서 그것들이 연기에 담긴다고 생각을 하니까 또 너무 재밌는 거죠.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인물을 연기할 땐 그런 재미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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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배역 하나 맡으실 때마다 연기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연구도 하시고, 영감도 얻으시고, 자기 것으로 만드시는 것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지평이 넓어지는, 나이가 들수록 훨씬 더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는 그런 자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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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그렇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되게 오래 걸리거든요. 뭘 하나 잘 되는 것도 진짜 오래 있다가 잘 돼요. 그래서 잘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할 때는 끝이 안 보이는데, 언젠가는 되겠지 하고 생각하죠. 그걸 그만큼 하려면 훈련을 계속해야 되니까요. 근데 지금 잘한다고 앞으로 더 잘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요. 제가 아마 공연을 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공연을 하면 관객분들이 기립박수를 쳐주시거든요. 그러면 그게 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죠. 공연 끝나고 기립박수 받고, 무대 나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냐면 오늘 이렇게 기립박수 받았다고 해서 내일 또 받으란 법은 없으니까 내일 또 열심히 해야지. 한 달 뒤에, 일 년 뒤에 기량이 안 나올 수도 있으니까 계속 레슨 받아야지. 이런 마음이 계속 들죠. 그래서 제가 쉰이 얼마 안 남았는데, 쉰부턴 뭔가 더 잘 될 거 같다는 주문을 계속 스스로 걸어요. 오십부터 시작이다. 오십부터. 그래서 이제 오십을 준비하는 나이가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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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거 본 것 같아요. 제가 마흔이 넘어서 이렇게 잘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하고 말씀하신 인터뷰를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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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웃음) 계속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오십이 됐을 때 잘돼야지. 근데 또 잘 된다는 게 여러 가지 기준이 있는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번다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잘 된다는 기준을 본인 스스로 잘 잡으면 그 기준에 맞게 소소한 행복을 느껴야 하거든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좋은 행복함을 못 느끼고 지나가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자기성찰을 한다는 게 그런 식인 거죠. 내가 지금의 이런 작은 행복, 부산에 이렇게 기차 타고 아무 일 없이 오는 순간들. 부산역에 내려서 사진을 계속 찍었어요. 오늘 하늘이 너무 예쁘더라고요. 부산역의 유리거울 있잖아요. 그 유리거울 안에 비친 풍경이 그렇게 근사한지 몰랐어요. 유리거울 안에 풍경이 비치는지도 몰랐어요. , 내가 나이를 잘 먹어가는 구나. 그 안의 풍경이 보이더라고요. 그전까지 부산에 그렇게 많이 오면서도 유리거울 안 풍경을 못 봤는데요. 오늘은 이렇게 보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죠. 그리고 오늘 부산 하늘이, 여러분들은 안에 계셔서 모르셨겠지만, 오늘 하늘이 또 그렇게 좋았어요. 그런 걸 제 스스로 계속 생각하는 거죠. 그런 작은 행복들을 계속 모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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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일상의 순간들에 무뎌지기 쉬운데, 여행을 하시면서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한 감각들을 계속 갈고 닦으면서 유지를 하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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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 그래서 여행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힘든 여행. 몸이 힘든 여행. 계속 걷고 또 걷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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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아까 잠깐 얘기하셔서 여쭤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좋은 선배가 되고,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고,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말은 뒤집으면 본인의 20대 때 그런 것들이 간절하고 필요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요. 대학 진학하고 전공 선택하실 때나 혹은 20대 초반에 일을 할 때 분명히 갈등과 고민의 순간이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떤 것에서 힘을 얻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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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그땐 사실 다 반대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연극영화과에 간다고 하면 왜 연극영화과를 가냐고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진짜 반대가 심했죠. 그때 당시는 누구든 연극영화과를 간다고 하면 다 반대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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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거기다 대원외고를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더더욱 연극영화과가 아니라 좀 더 뭔가 굉장한 곳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받으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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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Foreign Language High School. (관객 웃음) 근데 제 담임선생님이 이만희 선생님이셨어요. 찾아보시면 극작가이신데, 원래 윤리 선생님이셨거든요. 지금은 아주 유명한 극작가이시고, 선생님이 쓰신 작품으로 영화도 많이 나왔고요. 당시는 그냥 학교 윤리 선생님이셨거든요. 근데 수업시간이 남달랐어요. 수업을 듣다 보면 철학 수업이 어려운 건데도 재밌게 가르쳐 주셔서 윤리 수업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어요. 근데 그 선생님이 3학년 때 제 담임선생님이 되신 거예요. 그러면서 그런 영향들을 알게 모르게 받고, 그러다가 연극영화과로 진로를 정했죠. 아까 후배들에 대한 얘기를 하셨잖아요. 근데 결국은 제가 보여줘야, 요즘은 보여줘야 따라오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로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요. 내가 어떻게 보여줘야할지 고민하면서 제가 스스로 약속들을 잘 지키고, 무대에서 좋은 모습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저 스스로도 배워 가는 게 계속 반복되는 거죠. 그런 반복을 대학교 때 한 훈련을 지금도 하는 거죠. 그러면서 어느 순간 느꼈어요. 이 직업이, 꼭 내 직업 뿐 아니라 어떤 직업들이라도 반복된 훈련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얻어가는 거구나. 특히 내가 배우를 하면 끊임없는 반복 훈련에서 조금씩 바뀌는 미세한 차이를 내가 느껴서 좋은 연기를 할 수 있게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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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supportEmptyParas]--> <다른나라에서> 유준상 GV 07


(관객 5) 팬입니다. 이 영화를 굉장히 재밌게 봐서 꼭 여쭙고 싶은 게 있었는데, 다른 장면보다 편지가 끊기는 장면이 있잖아요. 그 다음에 영어를 못해서 편지를 해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원래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너무 궁금했고요. 두 번째로는 여러 영화들을 홍상수 감독님과 같이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제가 생각나는 것 중엔 <하하하>라든지 <북촌방향>에서 주연을 하셨는데요. 많은 영화들 중에서 <다른나라에서>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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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다른나라에서>는 감독님이 만들면서도 지금까지 남자 캐릭터 중에 이런 해양구조원 같은 캐릭터는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하시면서 저 덕분에 밝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고 하셨어요.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해주시는 게 되게 좋았어요. 어떻게 해양구조원 같은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 하시면서 감독님이 저한테 되게 고마워하셨던 기억이 나요. 저 옷도 실제 해양구조 하시는 분이 주신 거거든요. 옷을 입었는데 저한테 너무 잘 맞아서 지금도 제가 갖고 있거든요. 하여튼 저런 캐릭터가 감독님 영화에서 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또 더 특별하고요. 또 제가 선정한 영화들과 비슷한 맥락이고요. , 저때 하늘이 또 그렇게 예뻤어요. 정말 사진을 많이 찍었거든요. 저 지역이 너무 아름다웠고요. 그리고 이 선생님과 같이 했기 때문이고요. 이 선생님과 함께 연기한 그 순간들이 지금도 기억이 나고요. 제가 해수욕장에서 이렇게 돌잖아요. 그게 대본에서 정해져 있던 게 아니었거든요. 어쩌다 돌게 됐는데 선생님도 같이 따라 도는 거예요. 그 순간 너무 재밌는 거예요. 내가 뭘 하면 이 분이 다 따라 하시는구나.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다 해봐야지 하면서 다 해본 거예요. 근데 다 따라오시니까. 이 분이 3대 영화제에서 다 상을 받으신 분이시거든요. , 베를린, 베니스. 대단하신데, 혼자 오신 것도 너무 멋있었고, 많이 배웠어요. 사실 3대 영화제에서 다 상 받고, 특히 여배우시고요. 나이가 있으셔도 티내거나 할 수 있었을 텐데, 간장에 밥 비벼 드시고, 텐트 던지면 놀라시고, 다 똑같아요. 아들 걱정하시고요. 아들이 축구를 너무 좋아한다고 하시고요. 그래서 제가 축구 선수가 사인한 공도 드렸어요. 너무 좋아하셔서요. 그때는 정조국 선수가 해외에서 활동하고 계실 때, 아들이 정조국 선수를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그 얘기를 굳이 저한테 안 하셔도 될 텐데. (관객 웃음) 그래서 제가 정조국 선수가 다행히 김성은 씨 남편이라서요. 제가 성은이랑 같이 작업한 적이 있어서 연락해서 사인 받아서 드렸더니 선생님이 어메이징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아들이 너무 좋아하겠다고 하시면서 정말 좋아하시고요. 그런 모습들 보면서 영화제에서 상을 엄청나게 받으셨고, 자국 내에서도 상을 엄청나게 받으셨더라고요. 근데 다 똑같구나. 또 연기할 때 감각이 너무 살아 있으세요. 왜냐면 제가 이렇게 움직였을 때, 안 움직일 수도 있거든요. 안 받을 수도 있는 건데, 그럼 또 저는 안 받는 것만큼 바뀔 수밖에 없거든요. 그걸 다 받아주시니까 너무 재밌었죠. 선생님도 너무 재밌어 하시고요.

편지 내용은 저도 너무 궁금했는데요. 딱 거기까지만 감독님이 써주셨어요. 그 밑에는 감독님이 그냥 생각 해하셔서 감독님께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몰라이렇게 얘기하셨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지금 생각해봐도 되게 유쾌했던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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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사진 많이 찍으셨으면, 사진전은 아직 안 하신 거 아니에요? 할 게 남아 있네요. 사진전 하시면 되겠네요. 음반 틀어 놓고, 사진전 하시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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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제가 함께 했던 여배우들을 사진을 잘 찍어주거든요. 일반적인 사진작가들은 워낙 여배우들 예쁘게 찍어주잖아요. 그런 사진들 말고 내가 함께 작업했던 순간들을 담아내는 현장의 사진이 남겨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찍어 둔 게 있어요. 그 친구들 사진을 나중에 언젠가 사진전으로 하면 재밌겠다고 생각해서 계속 찍어 놓고 있죠.

(옥미나) . 사진전으로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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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6) TV에서 유준상 배우님을 보면 활기가 넘치시고, 무대인사를 할 때도 그렇겠지 생각했는데, 의외의 모습이에요. 약간 차분하시고요. 오늘 더운데 긴팔 입고 앉아 계시고요. 라이브로 유준상 배우님의 노래를 듣고 싶은데요.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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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이게 여러 가지가 있어야 되거든요. 제가 원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요. 사람들 잘 안 만나거든요. 제가 술을 안 좋아해서요. 술 잘 마시고 싶은데, 술 마시면 얼굴이 금방 빨개져요. 다행히 제가 술을 안 마시는 게 제 개인적으로, 뮤지컬을 하고,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게 술을 안 마시는 시간들이 있어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 있는 시간들이 좀 많아서요. TV에서 보셨을 때의 그런 모습들을 보면 되게 얘기도 많이 할 것 같다고 느끼실 수도 있는데, 조용하게 앉아 있는 시간들이 많아요. 그리고 추위를 많이 타서요. 점점 추위를 많이 타는 것 같아요. 오늘 에어컨을 너무 많이 틀어주셔서 추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노래는 공연장으로 한 번 와주세요. 제가 잘하면 부산에 콘서트로 한 번 올지 몰라요. 제가 뮤지컬 콘서트로 오게 되면 꼭 와서 봐주세요. 나중에는 제 음반 콘서트로도 오고 싶은데,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뮤지컬 콘서트로는 불러주시는 데가 많아서요. 짧게나마 안느 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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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저희는 그래도 가장 잘 부르실 수 있는 조건으로 음악을 청해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데, 여기 기타 가지고 계신 분은 안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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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안느 송은 이렇게 읊조리는 거라서요. Anne, This is a song for you. Anne, you have a beautiful name. It’s rainy, rainy. 그날 비가 왔었어요. 여기까지. (관객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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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7) 오늘 좋은 말씀 많이 들었고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건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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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요. 제가 20대에 군대 갔다 오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게 항상 한이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요. 젊었을 때 가장이 되는 바람에 그 시기들에 제가 너무 막막했었거든요. 갑자기 가장이 돼서 내가 어떻게 엄마를 먹여 살려야 하고, 내 동생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들이 너무 많았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너무 아빠가 보고 싶은 거예요. 상당히 엄하셨던 분인데, 그런 엄한 것조차도 지금은 제가 긍정적으로 바뀌어서 제일 보고 싶은 사람, 소중한 사람이세요. 그런 아빠가 저의 삶의 원동력이 될 정도로요. 그래서 생각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힘들 때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요. 그런 소중함들. 그리고 제가 스무 살 때부터 써온 일기장이 매년 한 권 씩 있어서 스물 몇 권 되잖아요. 일 년에 한 권씩은 써야지란 생각을 하는데, 이걸 매일 쓰려니까 어느 순간 안 써지더라고요. 매일 쓸 수도 없고요. 그래서 일 년에 한 권씩은, 그게 꽉 차건 안 차건 일 년에 한 권 씩 계속 써야지 생각하는데요. 지금까지도 계속 쓰다보니까 그러면서 얻어지는 게 정말 많더라고요. 글을 잘 쓰건 못 쓰건 20년 넘게 쓰다보니 좋은 문장, 좋은 생각들이 계속 그 글에서 나오고, 그걸 실천할 때 힘이 되고요. 또 하나는 긍정적인 생각인 것 같아요. 긍정적인 생각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처지고 지치려고 할 때마다 주위 친구들한테 처지면 안 된다고, 처지면 금방 힘이 싹 빠져서 여러 가지 영향을 주니까 힘들어도 잘 견디자, 참자고 하는데요. 왜냐면 여기도 어르신들 계시지만 바로 느끼거든요. 몸이 30대 때 다르고, 40, 50, 60대 다 다르거든요. 윤여정 선생님이 저번에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얼마나 힘들겠니, 준상아.” 진짜 그 말씀만 들어도, 그 한마디만 내가 얼마나 힘들겠니.” 이 말만 들어도 진짜로 힘드시겠구나. 내가 이러저러해서 힘들다는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힘들겠니.” 이 얘기만 들어도 진짜 힘드시겠단 생각이 들어요. 근데도 그렇게 내색 안 하시고, 그 한 마디로 끝나잖아요. 근데 그 한 마디에서 너무 힘든 게 느껴지니까요. 나이 들수록 정말 힘들거든요. 우리 아이들은 10대인데 계속 힘이 든다고 하니까요. 저희 어머니 70대이신데 계속 힘들다고 하시는데. 그래서 제가 어머니께 어머니 연세에 힘들지 않으면 거짓말이라고, 그냥 받아들이시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저도 그래요. 힘든 걸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잘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거죠. 그런 소중한 것들을 활용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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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8) 배우님이 말씀하시는 게 사람들에게 즐거운 기분을 주시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멀리서 봐서 그런지 20대처럼 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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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웃음)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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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8) 아까 말씀하실 때, 홍 감독님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찍으면서인가, 영화 마치고 나서 온몸에 있는 세포가 다 살아나는 느낌이 들 만큼 즐거웠다고 하셨는데요. 그것이 어떤 건지 궁금하고요. 홍 감독님과의 작업이 어떻게 좋은 건지, 그런 것과 연관되는 건지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하고요. 영화 속에서 얼굴이 보이는 장면도 좋았지만, , 뒷모습이 보이는 부분에서 거의 몸이 막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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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등 근육이 좀 살아 있었나요? (관객 웃음)

(관객 9) 이자벨 위페르 선생님과 걸어갈 때도 뒤가 보이는데, 뒷모습으로 연기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건지 궁금하고요. 그 다음에 스님으로 나오신 도올 선생님과의 에피소드가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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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제가 저 영화 찍을 당시에 다른 영화 <알투비>라는 영화에서 비행기 조종사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거기서 제가 정지훈 씨랑 싸우는 신이 있어서 몸을 좀 만들고 있던 중이었어요. 근데 홍상수 감독님이 제 몸을 보시더니, “네가 우리 작품을 위해서 몸을 만들었구나.” 하셨어요. 감독님께서는 몸 만드는 걸 제일 싫어하시거든요. 왜 몸을 만드느냐고 하시는데, 그때는 우리 작품을 위해서 몸을 만들었다고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고는 빨리 없애라고 하셨죠. 그 세포가 깨어난 건 요즘 말로 하면 탈탈 털린다는 표현처럼 저를 다 털어 버리는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진짜 너무 힘들게 그 한 신, 한 신에서 원하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이 생각만 하게 되니까 제가 지금 영화 촬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 인물만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제가 다른 영화를 찍을 때도 상당히 도움이 됐어요. 또 워낙에 제가 하는 뮤지컬이란 장르가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 그런 것들이 감독님이 하는 작품과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 영화를 찍을 때, 제가 공연을 하는 동안의 마음가짐이라든가 그런 패턴들이 감독님 영화를 할 때랑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집중을 많이 해서 제가 탈탈 털리는 그런 순간을 맞이하게 되니까 다 끝나고 나서는 몸은 너무 힘들고 지치지만 세포가 다 살아나는 느낌이 들어서 또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하면서는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란 생각을 하고, 또 다 끝나면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제가 공연할 때도 그렇거든요. 이 공연을 2시간 반 동안 무대에서 24살 어린 친구들이랑 하면 지치거든요. 하다 보면, 노래도 한두 곡 부를는 게 아니라 계속 노래 부르고요. 제가 <프랑켄슈타인>이란 공연을 얼마 전에 마쳤는데, 그 공연은 보셔야 알거든요. 내일이 없는 공연을 무대에서 하거든요. 여러 사람이 죽어나가거든요.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막 이렇게 분출해야 되거든요. 또 한 사람 죽어 나가고, 제 부인, 누나, 다 죽어나가니까 그 울분을 토해내려면 무대에서 거의 소진해야 하거든요. 그러고서 제가 그렇게 하면서 마지막에 내가 이 공연을 내일 또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순간에는요. 근데 또 하게 되거든요. 그런 것들이 계속 저를 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계속 그렇게 세포들이 깨어났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더 노력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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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미나) 전 한 시간이 지났다는 사인을 받고서야 시간이 흐른 걸 알았는데요. 말씀 너무 재밌게 잘하시죠? 아쉬워서 어떡하죠? 정말 다양한 영감, 그리고 긍정적인 에너지, 그리고 미래가 훨씬 더 기대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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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 미래를 좀 기대해주세요. 저는 사실 여기 이렇게 오면서 부산이 정말 축복 받은 도시구나. 이런 영화들을 틀 수 있는 극장이 있고, 이렇게 여러분들이 와서 이런 영화를 보면서 함께 얘기할 수 있고,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게 너무 행복한 것 같아요. 사실 서울에선 이런 시간들을 맞이하는 게 쉽지가 않고, 이렇게 많이들 오시지도 않고요. 그리고 사실 대단한 열정이 없으면 여기 와서 영화들 다 못 보잖아요. 저녁도 드셨는지 걱정이 될 정도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렇게 영화도 다 보시고, 또 영화에 대해서 얘기도 나누시고요. 앞으로도 불러 주시면 또 오고 싶어요.